‘축! 서울대 19명’ 현수막 걸었다 내린 서울시

김송이·김원진 기자 2025. 4. 1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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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외벽에 지난 13일 2025학년도 대학 입학 실적이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강윤중 기자
교육격차 해소 사다리
시 ‘서울런’ 실적 자랑
대학 서열화 문구 사용
수능 성과 취약층 대상
‘사설 인강’ 지원 전략
사업 성과 검증 안 돼

서울시가 지난 4일부터 시청 외벽에 ‘서울런 대입합격 782명’ ‘서울대 19명’ 등 2025학년도 진학 실적이 적힌 현수막을 걸었다가 논란이 되자 철거했다.

‘교육 격차 해소 사다리’를 표방하며 도입된 서울런이 대입 실적을 주요 사업 성과로 내세우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교육 공공성을 담보해야 할 지방정부가 대학 서열화 논리를 그대로 수용할 뿐만 아니라, 서울런의 실제 효과 역시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4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는 서울런 이용자 중 대학 합격 인원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사업 실효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시는 지난해 수능에 응시한 서울런 이용자 1154명 중 68%가 대학에 합격했다며 전년보다 합격자가 100명 늘었다고 했다. 서울런은 취약계층 청소년에게 사교육 인터넷 강의 수강권과 1 대 1 상담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2021년 도입됐다.

대입 실적이 사업 성과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되다 보니 지원 대상도 성적 상위권 학생에게 초점이 맞춰지기도 했다.

실제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서울런 집중지원반’을 운영했다. 학습 열의가 있고 성적이 잘 나오는 학생 194명을 대상으로 교재비를 추가 지원했다. 서울런 이용자 3만3000여명 중 0.59%다. 서울시는 “고3과 n수생을 중심으로 집중지원반을 운영하면 ‘서울런 대입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도 했다.

집중지원반 성과분석 보고서를 보면 서울시는 “n수생 중심의 정시 전형 학습에 효과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이는 유명 인터넷 강의를 제공하는 사업 특성상 정시와 n수 준비생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인과관계를 거꾸로 해석한 측면이 있다. 결과적으로 기초학력이 부진하거나 자기주도학습이 어려운 이용자보다 ‘수능 성적’이란 성과를 낼 수 있는 이용자들이 주 지원 대상이 됐다.

서울시는 현수막뿐 아니라 각종 공문과 홍보자료에서도 대학 서열화를 부추기는 ‘최상위권·상위권 대학’ ‘서울 11개 주요 대학’ 같은 표현을 썼다. 서울시 내부에서도 현수막 게시를 두고 ‘대치동 학원 이미지’를 시가 조장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서울시는 “지원을 받는 대상자가 중위소득 60% 이하로, 현실적으로 학원 등 적절한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이 온라인 강의 지원을 기회의 사다리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조치였다”고 했다.

서울런으로 계층 간 교육 격차가 줄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서울시는 소득수준에 따라 서울런 이용 전후 학업 성취도가 변했는지 보여주는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시가 발표한 이용자들의 월평균 사교육비 절감액은 35만원이지만, 소득이 적을수록 절감 비용이 큰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서울런을 이용하지 않는 학생들과 비교해야 이용자들의 성적·진로의식 변화가 나타나는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 유수의 대학에 간 소수 사례만으로는 저소득층이나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보편적인 학습 지원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서울시는 서울런이 대학 입시를 위해 사교육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의 현실적 욕구를 충족시켰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적 자원을 사교육에 직접 투입하는 정책 방향이 장기적으로 공교육을 더욱 약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청소년단체 ‘아수나로’ 수영 활동가는 “서울런이 사실상 대형 사교육 업체 인터넷 강의를 무료로 듣게 해주는 사업이기에 EBS 등 공적 교육 방송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도와 의존도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김송이·김원진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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