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봄실무사, 수습기간 지났는데 계약해지 가능할까요?” [뉴스 물음표]

김원진 기자 2025. 4.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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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해 4월4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사우초등학교 늘봄학교를 방문해 스포츠맨십과 놀이규칙을 주제로 한 인성교육을 강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오후 2시 넘어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다른 업무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했더니 이번에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문자메시지를 나눈 이력을 보니 지난달 취재과정에서 짧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어느 A교육지원청의 자문을 맡은 노무사로 착각하고 보낸 문자메시지로 보였습니다.

“노무사님, A교육지원청 채용담당자입니다. 긴급하게 문의사항이 있습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 A교육지원청 채용담담자(2025년 4월8일)

곧이어 사진이 한 장이 문자메시지로 왔습니다. 두 번째 문자메시지에는 ‘A교육지원청장’ 직인이 찍힌 근로계약서 일부가 담겼습니다. 근로계약서의 직종명에는 ‘늘봄실무사’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해당 교육지원청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한 늘봄실무사의 근로계약서로 추정됐습니다.

A교육지원청 채용담당자의 고민은 다음 문자에서 드러납니다. 이 담당자는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한 늘봄실무사를 ‘계약해지’할 수 있는지 노무사에게 검토를 부탁했습니다.

노무사님, (늘봄실무사의) 수습평가 기간이 경과되었습니다. (수습)기간 경과 후에도 평가를 통해 계약해지가 가능한 방법이 있는지 검토 부탁드립니다.
- A교육지원청 채용담담자(2025년 4월8일)

A교육지원청 채용담당자가 보내온 근로계약서를 보면, 늘봄실무사의 수습기간은 지난해 12월 초부터 지난달 초까지 90일이었습니다. 또 근로계약서에는 ‘※수습시간: 취업규칙에 따라 채용 후 90일 동안은 수습기간을 둘 수 있으며, 수습기간 만료 전 수습평가를 통해 본 계약기간 동안의 계속 근로 여부를 결정한다.(평가 결과 부적격자는 계약 해지)’라고도 쓰여 있었습니다. 계약기간은 수습시작일인 지난해 12월 초부터 ‘정년 시까지’였는데, 수습기간 이후에도 계약해지가 가능한지 궁금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A교육지원청 채용담당자가 노무사와 상의를 한 날짜는 지난 8일. 이미 수습기간 종료일부터 한 달 가량 지난 시점입니다. 수습기간이 한 달 가량 지난 상황에서 계약종료를 하는 것은 가능할까요. 노무법인 시선의 김승현 노무사는 통화에서 “수습기간이 지난 무기계약직의 근로계약을 종료하려는 것은 사실상 해고와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김 노무사는 “수습에서 무기계약직 전환을 하지 않을 때에도 구체적인 평가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A교육지원청은 “특정 늘봄실무사와 계약해지하려는 계획은 전혀 없다”며 단순 검토 차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담당자의 착오로 늘봄실무사의 수습기간이 끝나기 전 수습평가를 마치지 못했고, 이에 따라 수습기간 이후 진행한 수습평가를 토대로 계약해지를 할 수 있는지 가능성만 타진했다는 것입니다.

A교육지원청은 단순 해프닝이라고 하지만, 뒷맛이 씁쓸한 것은 사실입니다. 학교에는 정규직 교사 외에도 늘봄실무사와 같은 다양한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직군이 존재합니다. 지금도 전국 시도교육청의 채용공고를 보면 1년 안쪽의 단기 계약을 제시하는 기간제 특수교사, 조리실무사 등의 일자리가 수백개에 달합니다. 여러 계약형태의 다양한 직군이 공존하는 학교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에 놓인 직원의 채용 번복을 손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 때문입니다.

교육부의 ‘2025 늘봄학교 운영 길라잡이’ 중 단기계약직 행정직 관련 사항.

늘봄실무사는 지난해 1학기부터 정부가 운영비를 전액 지원하는 방과후학교인 늘봄학교를 실시하면서 생겨난 직군입니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펴낸 ‘2025 늘봄학교 운영 길라잡이’를 보면 늘봄실무사는 무기계약직인 교육공무직이나 단기계약직으로 뽑습니다. 교육부는 늘봄실무사의 업무를 ‘늘봄과정 편성과 운영, 행정 업무 등 실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채용하여 배치된 인력’으로 규정합니다. 늘봄실무사는 각종 행정업무 외에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교문 밖까지 귀가를 안내하는 일도 맡습니다.

교육부가 ‘2025 늘봄학교 운영 길라잡이’에서 단기계약직 행정인력 채용과 관련해 ‘계약기간이 1년 이상인 경우 퇴직금이 발생됨에 유의’하라는 문구를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넣은 점도 정부의 인식을 가늠하게 합니다. 교육부는 “늘봄학교 운영에 공무원만이 아니라 돌봄전담사, 늘봄실무직원, 기간제교사, 프로그램강사, 단기계약직 행정인력, 자원봉사자 등이 필요하다”(교육부 2024년 3월24일 설명자료)고 하면서 퇴직금 지급에는 인색한 것일까요. 늘봄학교에 추가 투입된 인원 중 공무원을 제외한 대부분이 계약직이나 비정규직입니다.


☞ ‘늘봄학교’ 보조원, ‘퇴직금’ 안 주게 단기 계약하라고요?[뉴스 물음표]
     https://www.khan.co.kr/article/202403240800021


☞ 홍보 ‘올인’ 늘봄학교, 강사들 처우는 뒷전? ‘3주’ 계약에 강사료는 ‘찔끔’
     https://www.khan.co.kr/article/202404021549001/?kref=rta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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