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가 아닌 '승부'에서 의미를 찾았던 영화

강해인 2025. 4. 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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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강해인 기자] 특별한 사제지간의 대결이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영화계의 전통적인 비수기에 등장해 승부수를 던진 영화가 있다. 지난달 26일 개봉 이후 6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순항 중인 '승부'가 그 주인공이다. 사실, 이 작품은 개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21년 촬영을 마친 이 작품은 2023년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자와 만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연 배우 유아인의 마약 논란과 함께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 예정보다 2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승부'는 한국을 넘어 세계 바둑계를 평정한 조훈현(이병헌 분)과 그의 제자 이창호(유아인 분)의 몇 차례 대결을 담았다. 세계 바둑 대회에서 우승한 조훈현은 바둑 신동이라 불리던 이창호를 제자로 맞는다. 이창호는 조훈현의 가르침 아래 무섭게 성장한다. 그리고 전 국민 앞에서 스승을 이기며 바둑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충격적인 패배 후 슬럼프에 빠진 조훈현은 다시 한번 정상의 자리에 도전하고, 그 길목에서 이창호와 다시 붙게 된다.

'승부'는 개봉 전부터 차분하다는 인상을 줬다. 개봉과 함께 적극적인 홍보를 했어야 했지만, 영화의 한 축을 이루는 유아인을 적극적으로 보여줄 수가 없었다. 무거운 논란이었기에 웃으며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런 차분함은 영화 속 대국에서도 볼 수 있었다. '승부'는 한국 바둑계를 흔들 뜨거운 승부를 담았음에도 조훈현과 이창호가 맞붙는 장면의 온도는 높게 올라가지 않는다. '승부'는 절제 속에 무드를 만들고 메시지를 전한다.

바둑의 특성이 그렇다. 대국을 펼치는 기사들의 내면은 몇 수 앞을 내다보며 누구보다 분주하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답답할 정도로 고요하다. '승부'는 이런 바둑의 성격을 살리기 위해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소화했고, 인물도 액션이 크지 않다. 대신 카메라가 인물에게 천천히 다가가 그들의 내면에 요동치는 감정을 느껴보라 권한다. 동시에 팽팽한 긴장감을 전할 수 있는 사운드에 공을 많이 들였다. 특히, 바둑돌을 놓을 때의 소리는 총성처럼 들린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이 전쟁을 펼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런 절제는 영화가 예고했던, 그리고 마지막에 준비한 대결에서도 돋보인다. 이는 제자에게 패한 조훈현이 바닥에서부터 올라와 다시 정상에 도전하는 대국이다. 그리고 '승부'의 카메라는 조훈현을 중심에 두고 움직여 왔기에 관객도 자연스레 그가 승리하기를 바라게 된다. 역경을 딛고 마지막에 승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꽤 많은 영화에서 이 순간을 위해 극적 장치와 음악을 활용한다. 하지만 '승부'는 이 마지막 대결을 무심하게 시작하고, 조훈현의 승리로 무던하게 마무리한다.

'승부'는 왜 폭발할 수 있는 시점에도 관객의 감정을 끌어올리지 않았을까. 고난을 이겨낸 영웅의 승리에서 조금 더 통쾌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선택을 했다면 이 작품의 메시지와 바둑이 추구하는 가치는 온전히 담기지 못했을 거다. '승부'는 '승리' 자체엔 큰 관심이 없다. 대신 조훈현과 이창호의 대국을 통해 서로의 바둑을 완성하고 더 성숙한 인간이 되는 과정에 집중했다. "바둑은 내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말이 '승부'가 추구했던 메시지다. 그리고 바둑과 인생이 닮았다는 점에서 이는 관객의 삶에도 닿을 수 있는 대사였다.

'승부'의 개봉과 함께 축제를 즐겼어야 했을 제작진 및 배우들이 유아인 이슈에 맘껏 웃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또한, 유아인이 이겨도 맘껏 웃을 수 없는 이창호의 복잡한 심리를 얄미울 정도로 잘 표현했고, 그래서 그의 부재가 더 원망스러웠다. 영화 속 이창호가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는 장면은 유아인이 스크린 밖의 관객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동시에 그를 향해 "내가 그렇게 가르쳤냐"라고 화내는 이병헌의 대사가 관객의 마음을 대변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영화 '승부'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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