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100도'보다 뜨거운 '학씨 아저씨' 최대훈의 체온
아이즈 ize 신윤재(칼럼니스트)
넷플릭스를 보는 외국인들은 한국에 '김씨' '이씨' '박씨'가 아닌 '부(夫)씨'가 있다는 사실에 이미 놀랄 터인데, '학씨'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랄 듯하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의 이야기다. 또한 탄탄한 대본과 유려한 연출에 가지각색의 연기력까지 제주바다처럼 넘실거리는 이 작품에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단단히 들어앉은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의 배역은 '학씨 아저씨' 부상길, 배우는 바로 최대훈이다.
현재 총 4막 중의 3막, 16회 방송분 중에 12회를 공개한 드라마는 넷플릭스치고는 이례적인 휴먼드라마 장르에 한국의 시대상이 담뿍 배어있는 시대극으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국내 드라마 순위를 평정했을 뿐 아니라, 해외 특히 부모자식의 정이 강조한 동양문화권에 속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성적이 좋다.
전광례(염혜란)에서 오애순(아이유·문소리) 그리고 양금명(아이유)으로 내려오는 모녀 3대 질곡의 역사를 다룬 작품에서 부상길은 두고두고 주인공들의 발목을 잡는다. 1막 후반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해 야반도주에 실패한 오애순을 식모처럼 영입해 재혼하려다 실패하고, 중년의 오애순과는 어촌계장을 놓고 겨룬다.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곧추세운 그는 자녀 세대에서 또다시 오애순과 '잘못된 만남'을 맺으며 시청자들을 머리 아프게 한다.
따지고 보면 '폭싹 속았수다'의 배경이 1970년대부터 2020년대. 부상길이 활개 치던 1970년대, 특히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섬은 전근대적인 남성상이 꽃피기에 십상인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부상길은 조금 더 권위적이고, 조금 더 속물적이며,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다. 배우 최대훈은 이 부상길 캐릭터로 본의 아니게 '월드 스타'로 올라설 기세다. 극의 전반에 넓게 퍼져 있는 '빌런' 캐릭터 가운데 가장 큰 존재감을 발산한다.
그런데 이 배우, '폭싹 속았수다'에서만 활약한 것이 아니다. 올해 공개된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트리거'에서는 국회의원 조진만 역으로 분했다. 극 중 탐사보도팀 '트리거'가 쫓고 있던 차성욱 살인사건의 키를 쥔 조해원(추자현)의 남동생이다. 그는 8회부터 본격화되는 전개에서 탐욕과 부정의 화신으로 분한다.
극의 9회에서 맞붙는 최대훈과 추자현의 연기는 연출을 맡은 유선동 감독마저도 넋을 놨으며, 마치 극의 제목을 '트리거'에서 이들의 그룹 이름인 '한주'로 바꿔도 될 정도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최대훈은 이 작품에서 부상길보다 몇 배는 극악무도하며 선악의 경계가 무너진 사이코패스를 연기했다.
이렇게 2025년 들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최대훈이지만, 그 연기의 뿌리는 깊었다. 2002년 단편영화 '자반 고등어'로 데뷔했지만 주로 연극이나 뮤지컬 등 무대연기로 경력을 다졌다. 드라마로는 주로 단막극이나 아침 드라마 위주로 출연하는 배우였다. 하지만 2017년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매체 연기'에 매진해 '각시탈' '육룡이 나르샤' '사랑의 불시착' '악의 꽃'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의 작품에서 얼굴을 알렸다.
특히 지난해 방송된 tvN '세작, 매혹된 자들'에서는 조정석이 연기한 이인의 이복 형인 이선 역으로 출연해 동생을 향한 열등감과 불안감을 광기와 살기로 덧칠해버린 군주의 모습을 보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어 방송된 SBS '지옥에서 온 판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극 중 노봉경찰서 형사로 알고 보니 지옥에서 온 재판관 '파이몬'이라는 설정을 더한 윤태하 역을 연기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때도 그랬지만 그는 특별출연으로 짧은 배역 기간 동안 연기를 뿜어내는 몰입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치를 보였다.
'트리거'에서 조금 더 분량이 많아진 그는,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주연들에 비길 만한 분량에 연기력을 보인다. 그는 곧 공개될 넷플릭스의 드라마 '더 원더풀스'에서도 진상력이 있는 캐릭터로 하자있는 초능력을 가진 '빌런' 느낌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최대훈의 연기인생은 길었지만, 부평초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떠다니는 시간이 많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누가 뭐라 하던 짧은 연기 그리고 악역 느낌을 다채롭게 풀어낸 연기로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그러한 요소가, 어쩌면 집대성된 것인지도 모르는 부상길 역으로 드디어 처음의 '르네상스'를 열어젖혔다.
1980년생, 그의 나이 마흔다섯. 처음으로 얼굴을 알린 연기자라고 말하기엔 겸연쩍은 나이인지 모른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시간 최대훈은 아래에서부터 자신을 다졌고 어떤 형식의, 어떤 캐릭터의 연기에도 자신을 갖다 바쳤다. 그 모습이 켜켜이 쌓여 우리는 오늘날 디즈니플러스 '트리거'의 조진만이 보이는 악의 카리스마 그리고 비열하면서도 웃기고, 어딘가 딱한 '폭싹 속았수다'의 부상길 캐릭터를 볼 수 있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늘 "학!씨"를 달고 다니는 부상길의 모습은 주인공 3대 모녀의 삶을 더욱더 해학적으로, 안타깝고도 찬란하게 몰아간다. '부씨'의 모습을 한 '학씨' 최대훈의 성공은 그 스스로 그늘에서 자라나 기어코 밝은 곳을 더욱 밝게 비추는 '조연'으로서의 더할 나위 없는 드라마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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