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폭싹 속았수다' 시청을 포기하려 한 까닭
[유정렬 기자]
모두의 인생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막을 내렸다. 미리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에게 있어서 적어도 인생 드라마는 아니었다. 중반부 이후, 시청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다.
마지막 회까지 꾸역꾸역 봤다. 아마 아내가 이 드라마의 사생팬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작품이 엉망이라서가 절대 아니다. 올해 최고의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많은 이들의 찬사에는 나 역시 동의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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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
| ⓒ 넷플릭스 |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생겨나 소멸할 때까지의 여정을 사계절의 형태로 보여준 전개는 특히 돋보인다. 각본과 연기, 연출까지. 근래 보기 드문 명작이다. 혼란하고 어려웠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기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어지간해서는 싫어할 수 없는 작품이다.
드라마 속 등장하는 인물들 중 어느 누구 하나 그저 행복하기만, 사람도 마냥 불행하기만 한 사람도 없었다. 물론, 작위적인 설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 드라마는 특히 연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부분에서 유독 '우연'을 찾는다.
현실에서도 마치 '드라마'와 같은 사랑을 하는 연인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에 이마저도 마냥 판타지 같은 느낌을 주지 않았다. 게다가 명색이 드라마인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남녀의 사랑을 드라마틱하지 않게 그릴 재량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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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쇠같은 아버지 관식(박해진 배우)와 문학소녀 애순(문소리 배우) |
| ⓒ 넷플릭스 |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속 좁은 아이처럼 괜히 트집 잡고 싶었다. 인물들의 이야기와 내가 살아온 삶을 어느 순간부터인가 비교하면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샘이 났다. 부러웠다.
수 틀리면 자신에게 무조건 빠꾸 하라는 무쇠 같은 아버지, 여자라는 이유로 딸이 꿈을 이루지 못할까 봐 걱정하지만 그런 자신의 인생도 괜찮았다고 말할 줄 아는 어머니. 그리고 부모 못지않게 챙겨주던 그들의 친척과 이웃들까지.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나는 이 드라마 속 주인공들, 특히 아이유가 연기한 '금명'이 마냥 부러웠다. 다만 말 그대로 정말 폭싹 속은 것처럼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내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 단단하게 박힌 결핍을 건들기 시작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은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가정을 돌보지 않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애정 없는 계모 밑에서 자라난 나에게 끝까지 보기 힘든 장면들이 많았다. 감동적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드라마 '처돌이'임에도 나의 아픔을 마주하게 만드는 '폭싹 속았수다'를 도무지 인생 드라마로 삼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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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
| ⓒ 넷플릭스 |
다들 인생드라마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쩌면 나도 이 드라마가 나의 인생 드라마가 되어주길 바랐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더 속이 꼬여버렸나 보다. 괜히 심술부리는 어린아이처럼, 드라마 회차가 늘어갈수록 외면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만 이런 건 아니겠지?' 하며 애써 담담한 마음을 먹어본다. 나만큼, 아니 나보다 훨씬 더한 아픈 가정사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 사람들도 나와 같이 이 드라마 보기가 어려웠겠지. 되뇌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드라마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나의 삶, 더 나아가 우리네 인생은 아직 방영 중에 있다. 많은 감동과 위로를 선사해 준 배우들은 물론, 작가와 모든 제작진들에게 '폭싹 속았수다'(정말 수고했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혹시라도 나와 같은 슬픈 가정사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위로를 전한다. 이 작품이 아직 우리들의 인생 드라마는 되지 못했을지라도 괜찮다고. 우리가 써가는 인생의 드라마야말로 결국 좋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당신과 나, 우리의 삶도 '폭싹 속았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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