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구건서의 은퇴사용설명서] 은퇴지옥을 벗어나는 방법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퇴직 또는 은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정년연령이 법적으로 60세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60세가 되는 12월 말일이 정년퇴직일이 된다. 이렇게 정년을 채우는 직장인은 그래도 행복하다. 대부분 명예퇴직, 희망퇴직, 자발적 사직, 해고 등으로 정년 이전에 그만두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퇴직 또는 은퇴를 하고 나면 은퇴가 즐거운 시기(은퇴 허니문), 은퇴가 지겨운 시기(은퇴지옥), 스스로 적응하는 시기(회복기)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강제적으로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 희망퇴직, 경영상 해고를 당한 사람들은 즐거운 시기를 건너뛰고 분노의 시기(왜 나인가?)를 먼저 겪게 된다. 이 분노의 시기를 잘 버티지 못한 사람들은 은퇴지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세상이 싫고, 내가 밉고,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은퇴지옥을 빨리 탈출하지 않으면, 행복한 노후는 물 건너간다.
1단계가 즐거운 시기가 될 것인지, 분노의 시기가 될 것인지는 마음먹기 달렸다. 구조조정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즐거운 생활을 한다면 은퇴 허니문 기간이 될 수 있다. 정년퇴직을 하거나 자발적 퇴직을 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 단계에서는 여행, 쇼핑, 골프 등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일들을 한다. 대체로 이런 만족감은 1~2년 정도 지속된다. 분노의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은 집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직장을 구하러 다니거나, 알콜에 의존하거나, 친구를 만나 하소연하면서 시간을 때운다. 은퇴지옥이 일찍 시작된 것이다. 출근할 직장이 없어지면 시간을 죽이는 일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은퇴 허니문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도 일단 하고 싶었던 일 목록에 있던 일을 마치고 나면 이때부터 은퇴지옥이 시작된다.
2단계는 은퇴지옥이다. 분노의 시기를 보낸 사람들은 이미 은퇴지옥을 경험했지만, 은퇴 허니문을 보낸 사람들은 대부분 인생무상을 느낀다. 오랫동안 꿈꾸던 취미와 여가 생활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특히 일로써 내면의 욕구를 충족시키던 사람들은 일을 통해 얻었던 만족감과 성취감을 그리워하며, 무기력하고 우울한 상태에 빠진다. 왜 사는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철학적인 화두를 던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앞으로 얼마나 살 것인지 고민하며 벌어놓은 재산으로 죽는 날까지 버틸 수 있을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퇴직연금 등 연금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자격증이라도 취득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3단계는 회복기로 은퇴 지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시기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빠르게 해결책을 찾지만, 은퇴 지옥에서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강제적으로 구조조정을 당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은퇴지옥에 빠져 영영 빠져나오지 못하고 노후를 불행하게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은퇴를 긍정적으로 보면 일에서 해방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물론 생활비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은퇴지옥이 계속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은 삶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으로 즐겁게 받아들인다면 은퇴지옥을 벗어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은퇴 지옥에 빠지지 않기 위해 미리 관리해야 할 3가지 항목은 경제적 독립, 인간관계 정립, 목적이 있는 삶이다. 첫째, 경제적 독립은 자신에게 맞는 노후 자금을 준비다. 경제적 독립은 은퇴의 필수 요건이다. 경제적 독립은 더 이상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은퇴 시점에는 어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할까? 재무설계 전문가들은 최소한 연간 지출의 25배 수준의 자금을 확보했을 때 경제적 독립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은퇴 전 1년 동안 지출을 모니터링하고, 그에 맞는 노후 자금을 확보해 두는 것이다. 만약 자금이 부족하다면 은퇴 후에 계획을 수정해 필요한 노후 비용을 줄이거나 파트타임으로 추가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 은퇴 후에도 적게나마 꾸준히 소득을 창출하는 것이 가장 좋다.
둘째, 인간관계를 새로 정립해야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은퇴 후에는 부부의 결혼 만족도가 일시적으로 대폭 하락한다. 황혼이혼이 늘어나는 시기가 된다. 은퇴 전에는 각자 일을 하고 자녀를 키우느라 많은 시간을 독립적으로 보내다가 은퇴 이후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곪았던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은퇴 후 사이가 안 좋아지는 부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소통이 잘 안된다. 상당수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생각하고 배우자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른다. 그리고 배우자에게 너무 의존하는 것도 문제다. 직장에서 일만 하느라 어떻게 자기 자신을 돌보고 여가 시간을 활용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퇴직 후 의지할 사람은 배우자뿐이다. 그래서 배우자를 졸졸 따라다니거나 배우자의 영역에 침범해 모든 시간을 함께하려 한다. 그러나 배우자 역시 그동안 독립적으로 꾸려온 생활이 있기 때문에, 은퇴 후 당신을 위해 일상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노후에는 부부 사이가 건강과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부부 모두 최선을 다해 서로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목적이 있는 삶이 즐겁다, 아침에 눈 뜨고 싶은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일을 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던 사람들은 아이들이 독립하고 대출금을 상환하면 삶의 목적이 사라진다. 목적이 없는 채로 살면 빠르게 은퇴 지옥으로 진입한다. 매일 아침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게 하는 삶의 목적을 되찾아야 한다.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서는 어릴 적 꿈을 곱씹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삶의 목적을 찾았다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연구에 따르면, 일을 계속하는 것이 60대 초반 남성의 5년 내 사망 확률을 32%나 감소시켰다. 일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제공하며, 성취감과 더불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은퇴 후는 가장 일하기 좋은 타이밍이다. 풀타임으로 일할 필요도 없고, 회사에서 일할 때와 같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전만큼 많은 돈을 벌지 못해도 상관없다. 돈이나 지위는 더 이상 주된 목적이 아니다. 이제는 자신이 잘하고 즐길 수 있는 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꿈꾸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구건서 심심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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