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 금융위원장의 소신…영끌 대신 '지분형 모기지' 쏘아올렸다

김근욱 기자 2025. 3. 27.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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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없으면 집 사기 어려운 사회…"정부·개인, 집값 나눠 부담"
김병환 '부채의존 경제 탈피' 강조…취지는 좋지만, 번번이 소비자 '외면'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월례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5.3.26/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지난 26일 '지분형 모기지' 도입을 공식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금융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분형 모기지는 정부와 개인이 주택의 소유 지분을 나눠 갖는 방식으로, 주택 구매자의 초기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 핵심 장점으로 꼽힌다.

'엘리트 관료'인 김 위원장은 10년 넘게 전세살이를 하고 있는 무주택자다. 부동산 매물을 보러 다니는 '임장'이 흔한 취미가 될 정도로 부동산 투자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대한민국에서 집에 대해 '투자'보다는 '거주'에 방점을 찍고 살아온 소신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국인들의 재산목록 1위인 집이 없다보니 공개된 재산도 7억 원대 정도에 그친다. 재산공개 대상에 이름을 올린 금융당국과 금융공기업 고위 공직 23명의 평균 재산이 29억 원에 육박하는 것과 대조된다.

김 위원장은 인사청문회 시절부터 "금융위원장으로 임명된다면 우리 경제가 과도하게 부채에 의존하는 문제를 완화해나가려고 한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영끌'해 마련한 집 한채에 전 재산이 쏠려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정책도 김 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밝힌 '금융시장 안정성 강화'의 연장선에 있다. 김 위원장은 금융 시장의 근본적 불안 요인으로 '부채 의존형 구조'를 지목하며, 지분금융(Equity Financing) 확대 방안을 적극 모색하겠다고 밝혀왔다.

다만 정책 실효성에는 의문도 제기된다.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부터 유사한 형태로 도입됐던 '공유형 모기지'가 시장에서 외면받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집값 상승 시 정부와 이익을 나눠야 한다는 구조적 거부감이 컸고, 매각·상속·이전 등의 복잡한 절차도 발목을 잡았다.

금융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부동산 투자 심리가 강한 한국 시장에서는 맞지 않는 정책이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김 위원장이 과거 정책 실패의 원인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만큼, 금리·손익 구조 등 세부 설계를 어떻게 보완하느냐에 따라 시장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정부·개인, 집값 나눠 부담하는 '지분형 모기지' 검토"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대출에 대해 정부가 지분형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며 "앞으로 관심을 갖고 추진해야 할 큰 과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집값이 계속 오르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까지 강화되면서 현금을 충분히 보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내 집 마련에 큰 제약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부동산 구입 비용을 금융기관 대출로 충당해야 하는 구조는,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의 거시건전성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지분형 모기지'를 제시했다. 지분형 모기지는 주택 구매자가 주택의 일부 금액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정부가 지분 투자 형식으로 지원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5억 원짜리 아파트를 구매할 경우 소비자가 3억 원을 부담하고, 정부가 2억 원을 투자해 해당 지분을 보유하는 식이다. 이후 주택을 매도할 경우 가격 변동에 따른 손익을 지분 비율에 따라 분담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주택금융공사(주금공)를 활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주금공이 일정 금액을 투자하고 해당 지분만큼의 소유권을 갖는다. 소비자는 주금공이 보유한 지분에 대해 '렌트비(임차료)'를 지급하며 거주하게 되고, 이 렌트비는 시중 대출금리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이 정책의 핵심으로 거론된다.

향후 주택 구매자는 주금공의 지분을 사들이거나, 반대로 자신의 지분을 다시 주금공에 매각하는 방식의 선택권도 제공될 예정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2024.7.5/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취지는 좋지만…번번이 소비자 '외면'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발표에 대해 "김 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밝힌 '지분금융(Equity Financing)'의 연장선이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7월 취임 직후 "부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가 시장 불안의 주요 원인인 만큼, 지분금융이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전통적인 의미의 지분금융은 주로 기업의 성장에 투자하는 개념에 가깝다. 하지만 지분형 모기지도 주택을 구매할 때 전액을 대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지분금융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개인 입장에서는 원리금 상환 부담이 줄어들고, 적은 자금으로도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지분형 모기지는 집을 살 때 드는 초기 부담을 덜어주는 유용한 아이디어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수요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과거 2013년에도 유사한 방식의 '공유형 모기지'가 도입됐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집값이 오르면 그 이익을 정부와 나눠야 하는 구조가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내가 산 집인데 왜 이익을 나눠야 하는가"라는 정서적 거부감도 적지 않았다.

복잡한 절차 역시 걸림돌이었다. 정부와 지분을 나눠 갖는 구조이다 보니 집을 팔거나 상속할 때 정부와 협의가 필요하거나, 지분 비율에 따라 수익을 나누는 과정이 번거로웠다. 일반 대출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이후 2018년 국토교통부가 '신혼희망타운' 공급 계획과 함께 '수익공유형 모기지' 도입 방침을 발표했지만, 시장 반응은 역시 미온적이었다. 당시 수익공유형 모기지를 선택할 수 있었던 평택 고덕 신혼희망타운(A7 블록)에서는 891세대 중 단 한 세대도 해당 상품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빼고 다 집값 떨어지는데?"…금리·손익 구조 살펴봐야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집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이 빚을 내서 집을 샀다면 당연히 100% 지분을 갖기를 원한다"며 "정부가 돈을 냈다고 해서 수익을 나누자는 발상 자체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울과 경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의 집값이 떨어지고 있지 않느냐"며 "집값 하락에 따른 손실을 정부와 어떻게 나눌 것인지도 분명한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집값 변동성이 크지 않은 나라에서는 지분형 모기지가 일정 부분 실효성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처럼 부동산 가격이 요동치는 시장에서는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다만 구체적인 금리·손익 구조에 따라 시장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물론 공유형 모기지가 예전에도 나왔는데 시장에서 호응을 받지 못한 것은 맞다"면서도 "김 위원장이 과거의 정책 실패 사례를 수정·보완하겠다고 밝힌 만큼, 새롭게 나올 상품은 구조가 어떻게 될지 나와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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