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희생을 희망으로 변주한 엄마 삶이 쓴 대서사시

아이즈 ize 최영균(칼럼니스트) 2025. 3. 2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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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최영균(칼럼니스트)

사진제공=넷플릭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가 마지막 장만을 남기고 있다.

총 4막의 여정이 매주 금요일 1막씩 공개돼 지난 21일 3막을 지났다. '폭싹 속았수다'는 오애순(아이유)을 중심으로 제주도 출신 3대(혹은 앞으로 공개될 4막에서 4대까지 이를 수도 있어 보인다) 모녀 이야기를 1960대부터 현재까지 다루고 있다. 가족의 사랑과 한국 여성의 삶을 감동적으로 다뤄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폭싹 속았수다'는 크게 세 줄기의 스토리 라인이 서로 얽혀 있다. 가부장제 남존여비 시대 핍박과 차별 아래 여성의 삶,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의 내리 사랑, 그리고 척박함과 설움을 견딜 힘이 되는 연인 혹은 가족 간의 사랑이다.

어려서 조실부모한 애순은 시인을 꿈꾸며 제주에서 서울 소재 대학으로 진학을 갈망하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찍 결혼해 엄마가 된다. 첫 딸인 금명(아이유 1인2역)만은 자신과 다르게 본인의 꿈을 이루도록 삶을 모두 바쳐 희생하는 지난한 모성의 여정이 대하 드라마로 펼쳐진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이 과정에서 '착한 어미가 착한 딸을 낳아 서로를 내내 애틋해하고 속상해하게 했다'라는 내레이션처럼 사랑하면서도 엄마에게는 투덜거림과 날선 말들로 먼저 속을 긁어 후회가 반복되는 딸의 복잡한 심리도 공감을 더 한다. 평소에는 부모의 안부 전화도 잦다고 투덜대다 큰일을 당하면 본가를 찾아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삶을 이어나갈 힘을 얻기도 한다.

애순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지만 스스로의 삶을 한탄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 자식을 키우는 일에, 그리고 (남편과 함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매 순간 모든 노력을 다한 자신의 삶을 존중하고 존중받기를 원한다.

'폭싹 속았수다'는 시인이 되길 포기한 애순의 삶이 대서사시가 되는 어떤 역설을 보여준다. '폭싹 속았수다'가 신화 속 영웅이나, 전쟁 같은 역사 속 거대한 사건을 다루지는 않지만 애순의 한 개인사는 대하 드라마가 되고 서사시가 된다. 사람은 우주고 엄마는 바다일 수 있는 것처럼 애순의 일생은 서사시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이는 임상춘 작가와 김원석 감독, 그리고 아이유를 비롯해 드라마를 현실로 만들어주는 훌륭한 배우들 덕이다. 임 작가는 서민들의 삶을 현실감 있게 포착해 그 희로애락을 문학적 대사들로 진하게 풀어내는데 탁월하다. 김 감독은 감정선을 잘 살리는 연출로 전작 '나의 아저씨'처럼 공감과 위로를 불러일으키는 섬세한 디렉팅을 선보이고 있다.

아이유는 이번 작품으로 '가수 출신'이라는 수식어를 완벽히 떼어내도 되는 '배우' 그 자체가 됐다. 이미 드라마 히트작도 여러 편인 스타 배우였지만 보편적 캐릭터의 일상 연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숙제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나의 아저씨' 같은 극강의 호평을 들었던 작품에서도 지안이라는 역할은 어두움과 슬픔이 대부분인 극단적 캐릭터였다.

하지만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우리 주변에 있을 듯한 인물을 자연스럽게 구현하고 시청자들이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연기로 꽉찬 배우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폭싹 속았수다'에 엄청나게 등장하는 신스틸러 배우들과도 연기 합도 잘 어우러진다. 이미 레전드에 진입한 가수 경력과 견줄 수 있는, 향후 배우 활동 결과를 기대하게 만든다. 

물론 '폭싹 속았수다'에도 찬사만 있지는 않다. 양관식(박보검)의 무쇠 같은 순애보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고 '아빠가 선주면 넉넉할 텐데 왜 애순이 유학가기 위해 집을 팔고 어려움을 겪어야 하냐'처럼 고증에 대한 아쉬움 제기 사례도 있다. 다소 부정적 의미가 있는 신파라는 단어를 붙이는 평도 있다.        

하지만 예술 영화나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판타지가 기본인 드라마 장르에서 사랑에 지고지순한 남자 정도의 드문 현실은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배를 갖고 있다고 해서 모두 수입이 넉넉하지 않고 작은 배는 소규모 자영업 정도의 수입이라는 의견도 있으니 고증도 문제로 곧바로 단정짓기는 애매하다.

신파도 젊은 연인의 불치병처럼 상대적 희소 상황으로 슬픔을 자극하는 설정 경우에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될 수 있을 듯하다. 반면 한국인에게 보편적 감성으로 작동하는 모정을 다룬 내용에 뒤따르는 눈물까지 신파라 한다면 다소 무리스러운 느낌이다. 

설령 지적들이 맞더라도 '폭싹 속았수다'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데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듯하다. 시청자들이 애순의 세상살이를 매주 금요일마다 기다리는 것은 애순 삶에 공감하고 위로받으며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충만해지는 순간을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아저씨'가 도청 설정이 무리수라는 의견이 거의 정설이 됐음에도 걸작으로 남은 것은 드라마를 통한 공감과 위로, 그리고 세상에 사라진 인간미와의 재회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의 아저씨'는 한국 드라마 사상 손꼽히는 완벽 엔딩으로 걸작 등극에 방점을 찍었다. 

이제 '폭싹 속았수다'도 엔딩을 남겨 놓고 있다. 모처럼 시청자들의 마음을 위로한 대서사시 같은 드라마로 평가가 잘 마무리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엔딩이 남겨져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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