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을 화폐로 만들려면?...엉뚱한 시험문제로 화제 ‘서울대 경제학 교수’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지유진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jyujin1115@korea.ac.kr) 2025. 3. 2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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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서 얼음을 화폐로 도입하는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서울대 경제학과 강좌에서 제시된 시험 중 하나다. 으레 복잡한 수식과 어려운 그래프, 숫자가 가득한 시험지와는 대조적이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강의는 이처럼 접근 방법이 달랐다. 최근 정년퇴임한 그는 수업 시간 내내 엉뚱하지만 창의성을 자극하는 문제를 출제해 학생들의 창의력을 자극했다.

사실 그는 서울대 학사와 석사, 시카고대 박사, IMF 선임 이코노미스트, 그리고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런 경제학자가 창의력 교육에 매달린 이유는 뭘까. 김 교수는 미국 증시를 주도하는 ‘매그니피센트7’ 기업들처럼 노동과 자본이 아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기업과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진단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지식을 외우는 능력보다 남들이 하지 않은 생각을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창의력이 최고의 생산 요소라는 것이다. 이런 교육 철학을 반영해 그는 실제 수업에서도 매주 정답 없는 문제를 던지고 학생 스스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훈련을 시켜왔다.

그 결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그의 수업을 들은 모든 수강생이 창의력이 향상됐다고 답했고 수업 전 10점 만점에 4.9점이던 창의력 자가 평가 점수는 수업 후 7.4점으로 뛰었다. 약 50% 상승이다. 송치형 두나무 회장도 학창 시절 김 교수의 수업 덕분에 남다른 사업모델을 떠올릴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창의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쓸수록 자라는 근육”이라고 강조하는 김 교수가 20년간 서울대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실천해온 7가지 훈련법이 담긴 책, ‘어웨이킹(awaking)’을 출간했다. 개인에겐 AI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올라탈 방법을, 기업에겐 혁신적인 기술을 창출할 전략을 제시한다.

김세직 교수의 저서 <어웨이킹>.
다음은 김세직 교수와의 일문일답.

Q. AI 시대에 창의력이 왜 최고의 생산 요소인가?

지금 기업과 국가에 가장 중요한 생산 요소는 노동이나 자본이 아니다. 핵심은 ‘창의력’, 즉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매그니피센트 7’ 기업들은 기술기업으로 분류되지만, 그 기술의 중심에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있다. 예컨대 애플의 시가총액은 2024년 말 기준 3조9000억달러다. 한국 GDP의 두 배를 넘어서는 규모다. 스티브 잡스의 ‘손 안의 컴퓨터’라는 오리지널 아이디어 하나가 수천만명의 노동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AI의 발달은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챗GPT와 같은 ‘지식 기계’를 활용해 창의적인 기업은 이전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더 강력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반대로 창의성 없이 기존 방식을 반복하는 기업은 AI를 활용한 경쟁자에 밀려 도태될 수밖에 없다.

Q. 창의력 개발의 첫 단계로 ‘비현실적 상상하기’를 제시했다.

대학원 시절, 미국 시카고대 루카스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 사람을 한번 직접 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유학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고, 교수라는 직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카고대에서 장학금 제안이 왔고, 주변의 도움으로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이후 루카스 교수 아래에서 논문을 쓰고 그의 제자가 됐다. 불가능해 보이던 상상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일단 비현실적 상상을 하는 일이 현실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책 <어웨이킹>의 저자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Q. 비현실적인 상상을 현실에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논리적 상상하기’를 해야 한다.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연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처럼 낮과 밤이 동시에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그림을 보여주고 그 상황이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을 상상하게 한다.

‘각주구검’ 같은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이 실은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가정을 던지고 그 논리를 고민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고정관념을 깨고 논리적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Q. 수업을 들은 학생들 대부분이 창의력이 향상됐다고 답했는데, 그 비법이 무엇인가.

수업 방식의 핵심은 매주 정답 없는 문제를 던지고 학생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구조다. 처음엔 비슷한 답이 많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이 창의적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마지막 강의 때 학생들에게 수업 듣기 전과 현재의 창의력을 스스로 평가해보도록 하는데, 대부분의 수업에서 95% 이상이 자신의 창의력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10~15주라는 짧은 시간 만에 창의력이 크게 향상되는 건, 모두 창의적으로 사고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의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 아래서 그것을 끄집어 낼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방법만 터득하면 짧은 시간에도 얼마든지 내재된 창의적 잠재력을 끄집어낼 수 있다.

Q.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AI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글쓰기와 번역이다. 과거 출간한 저서 『모방과 창조』를 영어로 번역할 때도 챗GPT를 활용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전문 번역가 없이도 매끄럽고 정확한 번역이 가능했다. 이처럼 AI를 이용해 언어의 장벽을 이제는 쉽게 넘어설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국어가 무엇이건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다면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에게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쉽게 팔 수 있다.

또 오픈AI의 ‘Sora’와 같은 영상 생성 도구는 영상 제작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비전문가일지라도 창의적 아이디어만 있으면 영화를 쉽게 제작할 수 있다. 영화, 음악, 콘텐츠 전반에서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Q. 한국 경제성장률 하락의 원인이 모방형 인적자본이라고 분석했는데, 창의력이 실제 해법이 될 수 있나?

우리의 경제성장이 멈춘 이유는 명확하다. 시카고대 로버트 루카스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우리가 교육 등을 통해 머릿속에 집어넣은 지식과 기술을 의미하는 인적자본(human capital)이다. 그런데 그동안 남이 만든 지식을 외우는 데만 인적자본을 투자해왔다. 이미 1990년대부터 인터넷과 검색엔진의 발달로 클릭 한번이면 온갖 지식을 바로 찾을 수 있고 AI의 발달로 모방형 지식이 무용지물이 된 시대에 엉뚱한 인적자본에 투자해온 것이다.

천문학적 지식을 내장한 지식기계인 AI에 의해 대체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능력인 ‘창조형 인적자본’, 즉 창의력에 투자해야 한다. 국민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대신 총수요 부양만 해서는 성장률은 제고되지 않는다. 이제라도 국민들의 창의력을 키워 주기 위해 나라의 제도를 환골탈태해야 한다.

Q. 지금의 교육 시스템에서 가장 시급히 바뀌어야 할 것이 있다면.

첫째는 교육 방식이다. 현재 초·중·고부터 대학까지 주입식, 모방형 교육이 여전히 주류다. 남이 만든 지식을 외우고 정답이 정해진 문제를 푸는 구조에서는 창의력이 자라기 어렵다. 열린 문제를 자기 스스로 생각하며 스스로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창조형 수업’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

둘째는 대학 입시 제도다. 바람직한 대학 입시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입시는 얼마나 많이 외웠는지를 측정하는 전형적인 모방형 시험이다. 초중고 교육은 대학 입시에서 무엇을 평가하는지에 맞춰서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에 교육이 근본적으로 변하려면 대학 입시부터 바꿔야 한다.

Q. 국민 전체의 창의력 제고를 위해 현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책은?

제도적 개혁이 필수적이다. 첫째, 창의적 아이디어에 대한 재산권 보장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국민 아이디어 등록제’와 ‘아이디어 절도 방지법’ 같은 구체적 제도를 제안한다. 둘째, 창의적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국민이나 기업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셋째, 주입식, 모방형 교육 제도를 창조형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간 ‘열린 문제 창조형 수업’, ‘창의성 평가 대입제도’ 등을 제안해왔다.

그러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개혁을 해야 할 정치적 지도자들이 창의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나라의 성장 엔진을 멈출 수 없기에, 국민 스스로라도 창의력을 키워야 한다. ‘어웨이킹’ 책을 집필한 것 또한 국민들이 창의력을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Q. AI가 계속 진화하면서 어떤 변화가 펼쳐질 것이라 예상하는가? 앞으로 기업은 어떤 대처를 해야하는가?

AI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하는데 비용이 크게 낮아질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AI로 모방형 지식 노동자 대부분을 대체할 것이다. 창의력을 갖추지 못한 많은 근로자들은 직장을 잃고 소득원이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제 전반에선 유효수요가 줄어들고 GDP가 감소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된다.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기업들 스스로도 이 시대 최고의 자산인 오리지날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혁신 조직, ‘창조형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가장 먼저 기업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제학자 슘페터도 기술 혁신의 주체로 ‘기업가’(entrepreneur)를 꼽은 만큼, CEO들이 먼저 창의력을 키워야 한다. 창의적이지 않은 기업가 밑에서 혁신적인 기업조직이 나올 수 없다.

이와 동시에 기업조직 자체가 혁신적 아이디어를 계속 창출할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한다. 방법은 기업 내 한 두사람의 임원이 아니라 전사원이 오리지날 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토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 과학적 원리가 있다. 통계학적 법칙에 따르면 어떤 아이디어가 성공할 확률이 10%일 때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낸다면 성공 확률은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30명이 각각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이들 중 적어도 하나가 성공할 확률은 통계적으로 100%에 가까워진다. 많은 아이디어가 제시될수록 성공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이를 위해 전사원을 대상으로 창의력을 교육하고, 사내에 창의적 아이디어에 대해 명예와 재산권 보장을 해주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Q.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믿어야 도약할 수 있다’를 인용하며 창의력 발휘에 믿음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창의적 도전을 해야 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나.

창의적인 도전을 할지 안 할지를 결정해야 할 때, 세가지 결과를 생각한다. 창의적인 도전을 해서 성공하는 경우, 창의적인 도전을 해서 실패하는 경우, 창의적인 도전을 하지 않는 경우. 이 세가지 중 가장 나쁜 결과는 도전해보지도 않는 것임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창의적인 도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서 실패해도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생각을 하면 창의적인 도전은 그 기대값이 무조건 양이다. 창의적 도전을 하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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