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의 최소 절반은 깎아 버려야 고급”…일본 젊은이는 싫어하는데 한국서 인기몰이중인 ‘이 술’ [푸디人]

안병준 기자(anbuju@mk.co.kr) 2025. 3. 2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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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인-63] 사케 (feat. SG다인힐의 로스옥)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면 바로 일본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전통술을 흔히들 ‘사케’, 청주라고 부르죠.

그러나 일본에서는 사케가 일반적으로 모든 술을 의미하니 일본 관광가서 사케 달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다반사일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사케를 드시고 싶다면 일본에서는 ‘니혼슈’를 달라고 얘기하셔야 합니다. 여기서는 이해를 쉽게 사케라고 부르겠습니다.

일본에서 사케 양조장 면허 수는 2022년 기준 약 1550개, 실제적으로 사케를 만들어 판매하는 양조장은 1100여개 정도라고 합니다. 양조장마다 평균 10종의 술을 만든다고 하니 사케의 수만 1만종을 넘는 셈입니다.

그러나 일본 젊은이들은 사케를 ‘할아버지 술’ 정도로 옛 것으로 치부해 거의 마시지 않는 편이죠. 그래서 그런지 가업을 잇는 전통이 강한 일본에서도 양조장 경영 승계는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한국 젊은 사람들이 사케에 눈을 뜨고 있습니다. 내수 판매가 갈수록 하락하는 상황에서 일본 사케 양조장 입장에서는 가뭄 속 단비 같은 소식이죠.

한국의 늘어나는 사케 사랑은 숫자로도 증명됩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사케 수입액은 2635만 달러로 2023년 기록했던 사상 최대 수입액인 2475만 달러를 훌쩍 뛰어 넘어섰습니다. 2년 연속 역대 최대치를 경신한 것이죠.

이처럼 사케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을 향한 여행객들이 매년 늘고 있고 외국인데도 불구하고 식문화가 한국인에게 전혀 어색하지 않고 찰떡궁합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에서 마셔본 사케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조차 안 되는데 일본 현지서 숨어있는 보석 같은 명주들을 다양하게 만나볼 기회가 많아지다 보니 사케에 대한 견문이 트이고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사케는 아직 한국에서 눈에 보이지 않은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일식집이나 이자카야에서나 어울리는 술이라는 선입견이죠. 그러다 보니 육류 소비가 훨씬 많은 우리나라에서 사케의 절대적인 판매량은 아직 미미한 수준입니다.

이런 선입견을 깨고자 ‘닷사이’, ‘쿠보타’ 등을 수입하는 니혼슈코리아가 삼원가든을 뿌리로 둔 대표적인 외식기업 SG다인힐의 ‘로스옥’과 손잡고 고깃집에서 사케를 판매하는 시험을 해보기로 했다네요.

차분하면서도 유연한 게 매력인 사케
전통적으로 마스라는 나무로 만들어 놓은 틀안에 잔을 넣거나 넣지 않더라도 넘치도록 따라주는 것이 사케를 따르는 방법이다. 네이버 블로그 ‘도쿄특파원-일본은 지금!’
사케에 대해 간단히 알려드리고 넘어가는데 이해하시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케는 쌀, 물, 누룩, 효모를 발효시켜 만든 일본 전통술입니다. 한국의 막걸리와 비슷하죠. 일반적인 도수는 12~16도로 와인과 비슷한 수준인데 물을 섞지 않은 오리지널 겐슈는 20% 정도의 강렬한 맛을 내기도 합니다. 와인처럼 과일, 견과류 등 다양한 향을 뿜어내고요. 막걸리처럼 생으로 즐기기도 하고 걸쭉하거나 톡 쏘기도 하는 등 스타일도 천양지차입니다.

심지어 온도도 차갑거나 뜨겁게 해서 마실 수 있는 유연한 술이죠. 예를 들어 긴조 같은 고급 사케는 차갑게 마셔야 그 섬세한 풍미를 느낄 수 있고 준마이는 상온이나 따뜻하게 데워서 마시면 깊은 맛이 살아납니다. 겨울이 되면 꼭 따끈한 사케가 생각나는데 그건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네요.

정미율에 따른 사케 명칭. 세상의 모든와인 유튜브 캡쳐
사케는 쌀을 깎은 정도인 정미율과 제조 방식에 따라 나눕니다.

먼저, 쌀의 겉 부분은 발효에 적합하지 않아 깎아내는데 이 비율에 따라 이름이 붙습니다. 정미율이 낮을수록 더 섬세한 맛을 냅니다.

혼조조는 쌀을 70%까지 남기고 긴조는 60% 이하로, 다이긴조는 50% 이하로 도정합니다. 다이긴조 같은 경우 쌀의 절반을 깎아 버리는 셈이죠.

또한 쌀과 물, 누룩으로만 만드는 사케를 준마이, 여기에 양조용 알코올을 혼합한 사케를 혼죠조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생으로 즐기는 나마자케, 걸쭉하고 크리미한 니고리자케, 스파클링 와인처럼 톡 쏘는 스파클링 사케 등이 있습니다. 사케를 잘 모르신다면 준마이가 붙고 이름에 붙은 숫자가 낮을수록 좋은 술이라고 생각하시면 쉬울 것 같네요.

“법카로는 쿠보타 만주, 개카로는 쿠보타 센주”
니혼슈코리아와 로스옥의 사케 페어링 리스트. 왼쪽부터 닷사이39, 코시노칸바이 아마네, 쿠보타 만주, 블랙잭 극가라구치, 쿠로에몬 야마하이준마이 아카이와오마치 나마, 쿠보타 센주. 안병준 기자
이제 본격적인 사케와 육류의 마리아주 시간입니다.

먼저 오늘의 미식 가이드를 소개해드리자면, 일본 공인 사케테이스터 자격인 사카쇼(酒匠 No.000416)를 보유한 김정한 니혼슈코리아 부장입니다. 2019년부터는 대한민국 주류대상 사케부문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고 하네요.

김 부장은 피규어 관련 일을 하며 일본을 자주 왕래하던 중 지난 2000년 사케를 맛보고 그 매력에 빠져 수많은 주류판매점과 양조장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다양한 사케의 경험을 모아 사케전문서적 ‘知、사케’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열처리하지 않은 나마자케(生酒)가 2011년 전후로 일본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국내에 사케의 한 카테고리로서 나마자케를 알리고자 나마자케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수입사를 공동창업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공인 사케테이스터 자격인 사카쇼를 보유한 김정한 니혼슈코리아 부장. 안병준 기자
니혼슈코리아와 로스옥의 첫 코스는 김밥육회와 ‘닷사이39(獺祭 39)’ 입니다.

김밥육회는 신선한 육회와 가자미 식해, 충무김밥이 어울려 은은한 단맛을 내는데요. 여기에 페어링된 닷사이 39는 닷사이 시리즈 중 미들급으로 최고의 주조미 야마다니시키를 39%만 남기고 깎아내 빚은 준마이 다이긴죠 입니다. 화려한 향과 입에 머금을 때 느껴지는 산뜻한 단맛과 깔끔한 감칠맛이 목 넘김 후에도 은은한 여운으로 남습니다.

주조미의 제왕, 야마다니시키만을 고집하여 빚어내는 닷사이 시리즈는 전통적인 감칠맛과 차분함 위에 단정하나 화려한 향과 기품을 섞어내어 수많은 사케 마니아들을 감탄케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특유의 경쾌한 맛과 터치는 수많은 초심자, 여성들을 사케의 세계로 입문시켰습니다. 브랜드네임은‘수달의 제사’라는 뜻으로, 수달은 잡은 먹잇감을 물가에 늘어놓는 습성이 있습니다. 학자들이 글을 지을때, 수많은 자료서적들을 펼쳐 놓는것이 그와 비슷한 모습이라 ‘닷사이’라 부르는데, 좋은 술을 빚기 위해 연구와 노력을 아낌없이 투자하겠다는 신념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닷사이를 만드는 야마구치현 시골 깊숙히 위치한 아사히(旭酒造) 주조는 생산하는 모든 사케를 준마이다이긴죠 등급으로 내기 시작하여 일개 작은 양조장에서 일약 일본 사케시장의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첫 코스인 김밥육회와 ‘닷사이39(獺祭 39)’. 안병준 기자
두 번째 코스는 모듬수육과 우설구이, 그리고 ‘코시노칸바이 아마네(越乃寒梅 天音)’입니다.

소의 혀인 우설은 일본에서도 미식 부위로 손꼽히는데 개인적으로는 살짝 굽는 것보다는 미디움으로 구워 고소한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코시노칸바이 아마네는 로컬 사케 붐을 견인한 전설적인 브랜드인 코시노칸바이가 선보이는 모던한 긴죠입니다. 고급스러운 멜론향 베이스 긴죠향에 달지도 드라이하지도 않은 담백한 감칠맛과 단정한 곡물감, 크리미한 터치가 어우러져 산뜻하게 마무리됩니다.

코시노칸바이는 지금은 흔한 개념이 되어버린 ‘지자케’, 즉 로컬 사케의 여명기를 견인하여 전국적인 지자케 붐으로 연결시킨 선구자입니다. 품질 최우선과 소량생산을 고집하여 처음으로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된 사케이기도 하죠. 깔끔 쌉쌀함이라는 니가타 사케 특유의 바탕에 지나치지 않되 존재감 가득한 감칠맛을 곁들여 일찍부터 그 어느 양조장도 따라올 수 없는 고품질을 선보여왔습니다.

최근에는 고집스레 지켜오던 오랜 전통에 서서히 변화하는 현대인들의 미각을 자체적으로 해석한 결과를 더하여 무려 45년만에 신제품을 발매해 일약 화제에 올랐습니다. 2011년 까지 전국 신주감평회에서 늘 금상을 수상하였으나, 2012년부터 각 지역별 대회로 바뀌게 됨에 따라 현재는 출품을 중단하고 소비자들을 위한 술빚기에 집중하는 중입니다.

로스옥의 우설구이. 안병준 기자
세 번째 코스는 생등심로스와 ‘쿠보타 만주(久保田 萬壽)’ 입니다.

생등심 로스는 마블링이 상대적으로 적어 생각보다 기름지다는 느낌은 적었고 괜찮았지만 안타깝게도 주인공 자리는 쿠보타 만주에 뺏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쿠보타 만주는 170년 전통을 지켜온 쿠보타 브랜드의 최고봉으로 국내외에서 절대적인 인지도를 자랑합니다. 사케 문외한 제게도 쿠보타 만주는 첫 맛은 매끄러우면서도 뒤로 갈수록 중후한 감칠맛과 긴 여운이 남았습니다.

쿠보타는 ‘처음으로 니혼슈를 접한다면 쿠보타를 마셔라’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사케 마니아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까지 폭넓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브랜드입니다. 맛이 달고 무겁던 사케들이 주류를 이루던 1970년대 깔끔하고 쌉싸름한 타입이 유행할 것이란 판단에 ‘쿠보타’ 시리즈를 선보여 본고장인 니이가타는 물론이고 전국에 그 맛과 명성을 떨쳤습니다. 현재는 일본내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그 맛을 선보이는 중입니다. 쿠보타 브랜드 뿐 아니라, 지역에서 사랑받는 ’아사히야마‘를 시작으로, 프리미엄 라인인 ’추구(繼)‘, ’도쿠게츠(得月)‘를 비롯해서 준마이 라인인 ’엣슈(越州)‘ 시리즈 등으로 다양한 맛을 소비자들에게 선보이는 중입니다. ’상 타기 위한 술빚기가 아닌, 소비자들이 부담없이 마실수 있는 술빚기‘ 라는 이념하에 콘테스트 등에는 출품하지 않는 점이 특징입니다.

로스옥의 생등심 로스. 네이버블로그 스시홀릭의 맛있는 여행
네 번째 코스는 한우차돌삼합과 ‘블랙잭 극가라구치(ブラックジャック 極辛口)’ 입니다.

차돌은 얇지 않아 적당히 두툼해 식감이 좋았고 야빙에 차돌과 모듬 젓갈을 싸 먹는 것도 이색적이었습니다. 거기에 쑥갓무침을 살짝 넣어주면 살짝 느끼함을 잡아줘서 더 좋았습니다.

​블랙잭 극가라구치는 나가사키현에서 절대적 인기를 자랑하는 ‘히란’의 스페셜 라인업입니다. ‘카라구치 그 이상의 카라구치’를 목표로 하여, 단순히 드라이한데 그치지 않고 은은한 과실감과 키모토 특유의 산미를 적절히 담아내면서도 단맛은 극도로 억제한 맛으로 완성했습니다.

특히 대항해시대의 중요한 항구였던 히라도(平戸) 인근에 양조장이 위치해 지역의 떼루아를 술에 불어넣는데 최선을 다하는 곳입니다. 볼륨감 풍부한 키모토 양조법이 강점인 곳으로 히란, 블랙잭 등이 최근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로스옥의 한우차돌삼합. 안병준 기자
다섯번째 코스는 정말돼지갈비와 주꾸미볶음, 그리고 쿠로에몬 야마하이준마이 아카이와오마치 나마 (黒右衛門 山廃純米 赤磐雄町 生)입니다.

쿠로에몬 야마하이준마이 아카이와오마치 나마는 매니아 팬층이 존재하는 오마치 중에서도 고품질로 유명한 아카이와 오마치를 사용하여, 야마하이 제법으로 빚어낸 나마자케입니다. 나마자케는 열처리를 전혀 하지 않은 사케를 의미하는데요.

김정한 부장은 이 술을 좋아한다고 하네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이 술을 왜 좋아하냐면 샤케 안에는 기본적으로 유기산이 들어 있는데, 얘는 그 유기산 중에서 젖산이 굉장히 풍부하거든요. 제가 치즈를 좋아해 치즈 베이스 요리에 이거를 같이 곁들여 먹었을 때 그 치즈의 풍미를 굉장히 잘 살려줍니다. 고기 같은 경우에도 육즙의 풍미를 누르지 않고 뭉글뭉글하게 같이 가는 그런 느낌입니다.”

열대과일 계열 아로마와 야마하이 특유의 쥬시한 산미, 오마치의 감칠맛이 잘 어우러져 입 안에 부드럽게 퍼집니다. 정말돼지갈비는 일반적인 돼지갈비에 비해 많이 달지 않은 편이었으나 주꾸미볶음은 살짝 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쿠로에몬과 키소지를 만드는 유카와(湯川)주조는 나가노 현에서 1650년 부터 술빚기를 시작한 유서깊은 곳입니다. 최근 새롭게 각광받는 양조방식인 키모토, 야마하이 제법과 다양한 주조미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다채롭고 강렬한 임팩트를 가진 제품을 속속 선보이는 중입니다.

마지막 코스는 접시만두와 ‘쿠보타 센주(久保田 千寿)’ 입니다.

쿠보타 센주는 본고장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부동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사케입니다. 은은하며 투명한 감칠맛이 음식의 맛을 방해하지 않고 입 안을 깔끔히 씻어주어 다음 잔을 재촉합니다. 니가타현 지사케의 본질인 ‘탄레이 카라구치(담백하고 드라이한 맛)’를 가장 잘 표현하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다만 센주 보다는 역시 만주가 좋은 건 어쩔 수 없네요. 비싼 건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니혼슈코리아와 로스옥의 사케 페어링 리스트. 왼쪽부터 닷사이39, 코시노칸바이 아마네, 쿠보타 만주, 블랙잭 극가라구치, 쿠로에몬 야마하이준마이 아카이와오마치 나마, 쿠보타 센주.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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