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인사이드] ‘을질’과 회사의 힘겨루기…법원은 어떻게 판단했나?
이 기사는 2025년 3월 23일 오전 6시 00분 조선비즈 RM리포트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직장에서 부하 직원이 상사를 괴롭히는 행위를 ‘을(乙)질’이라고 부른다. 요즘에는 상사가 부하를 못살게 구는 ‘갑(甲)질’만큼 문제가 되고 있다. 갑질과 마찬가지로 을질도 정도가 심하면 해고 사유가 되거나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갑질하는 상사와 을질하는 부하가 충돌하면서 양쪽 모두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 또 을질하는 직원이 상사뿐 아니라 회사를 상대로 힘겨루기를 벌이기도 한다. 이런 경우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조선비즈가 실제 재판 사례를 살펴봤다.
◇“업무 지시 거부에 사내 규정 위반도 했다면 해고는 정당”
자동차 제조·판매 회사에서 근무하던 A씨는 ‘보고서 오류가 잦으니 함께 검토하자’는 소속 팀장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는 “팀장이 사원이랑 보고서 검토하는 건 처음 들었다. 무슨 권리냐”고 했다. 또 업무와 관련한 소통 과정에서도 팀장을 향해 “업무 경험이 전혀 없는 직원의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고 했다.
금융회사에 근무한 B씨는 같은 팀 동료와 함께 상급자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대화에서도 배제했다. 상사의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고, 업무 과정에서 상의도 하지 않았다. B씨는 동료에게 “고개를 돌려 한숨도 푹푹 쉬어줘라”며 상사를 압박하라고 했다.
A씨와 B씨는 각각 업무 지시 거부와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해고됐다. 이들은 해고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해고는 정당하다”고 했다. A씨는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내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판단을 받았다. B씨는 성희롱 가해자로 인정되기도 했다.
인사 업무 경험이 많은 한 사내 변호사는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징계재량권을 남용하면 안 된다’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어 하나의 징계 사유만으로는 감봉이나 정직, 경고에 그칠 수 있다”며 “업무 지시 거부나 따돌림 조성뿐 아니라 사내 규정 위반과 성희롱 등이 추가로 인정되면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퇴사하면서 업무 데이터 삭제한 직원, 업무방해로 처벌
을질은 재직 중에만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최근 일부 기업에서는 직원이 퇴사하면서 회사 업무 관련 중요 데이터를 삭제하는 ‘신종 을질’도 하고 있다고 한다. “노트북 데이터를 모두 지우고 반납하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핑계를 대거나, 자신이 데이터 원본을 따로 보관하면서 회사와 ‘거래’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온라인 쇼핑 회사에서 근무한 C씨도 1년을 채 근무하지 않고 회사를 떠났다. 애초 판매 업무로 일을 시작했으나 회사 규모가 작아 온라인 홍보 업무도 맡게 됐다고 한다. C씨는 근무 중 자신의 명의로 회사 직거래 플랫폼 계정을 만들었는데, 퇴사하면서 이 계정을 삭제했다. 자신의 명의로 가입한 계정이므로 삭제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일로 회사는 2000명에 달하는 회원 명단을 모두 잃었다.
이에 회사는 C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법원은 C씨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다른 직원들도 해당 계정을 활용해 업무를 수행했다”며 “C씨는 계정을 삭제하는 행위로 회사의 업무가 방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상급자와 하급자 간 주먹다짐, 양쪽 모두 처벌될 수도”
기계 부품회사에 근무하는 D씨는 거래처에 물품을 받으러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인 사정으로 직속 상사가 대신 가기로 결정됐다. 상사가 “저 새X 때문에 일찍 출근해야 한다”고 하자, D씨가 “욕은 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면서 다툼이 벌어졌다. 상사가 먼저 이마로 D씨를 들이받자 D씨는 상사 가슴을 밀치고 목을 조르며 “계급장 떼고 한 번 붙자”고 했다. 동료들이 말리면서 싸움은 끝났지만 D씨는 폭행 혐의로 법정에 섰다.
법원은 D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상사가 먼저 폭행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D씨의 행위는 고의가 있었고 정당방위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이라고 판단했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이 사건은 상급자도 폭행으로 기소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서로 고소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싸우더라도 양쪽 모두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中 이민자 급증에…日 전역으로 퍼지는 ‘차이나타운’
- 보스턴다이내믹스 몸값 정말 30조?… 현실화시 정의선 체제 단숨에 구축
- 헌재, 국무총리 탄핵 ‘기각’… 한 총리 87일 만에 직무복귀
- “후발 업체 못 따라와”… 석유화학 업계 효자 된 합성고무
- 대한항공, ‘하늘 위 와인 대전’에서 진땀… 일등석 서비스 경쟁력 하락 ‘경고등’
- ‘돈맥경화’ 건설사들, 지난해 못 받은 돈 2조 넘게 늘었다
- [의료최전선 외상센터]⑨ 남극부터 아프리카 전쟁터까지…환자 구하러 지구 누빈 외과의사
- 초고액 자산가 잡겠다는 메리츠證… 이미지 개선이 관건
- 中 선박에 수수료 매길까… 해운업계, 24일 美 공청회 촉각
- 샤넬·구찌·디올도 빠졌다... 百 명품 15개 중 11개 역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