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내 강제추행…학교는 분리조치 않고, 교수는 2차 가해

배시은 기자 2025. 3. 2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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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대학생 “벌금형 받은 가해자 매일 마주치는 고통”
규정 없어…상담 교수는 “남자는 원래 그러니 참아라”

남자 대학생이 같은 학과 여학생을 강제추행해 벌금형을 받았는데 학내 분리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고, 교수가 피해 학생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학교 측이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분리조치 등을 하라고 권고했지만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전북 익산시의 한 대학교에 재학생 A씨(22)는 같은 학과 학생인 B씨(20)와 지난해 5월 한 달간 사귀었다. A씨는 B씨가 성적인 집착을 보이며 강제로 추행하려 해 헤어졌는데 B씨는 이별 후에도 전화를 걸어 폭언을 하고 집 앞에 찾아와 다시 만나자고 요구하며 위협했다. B씨는 A씨가 피해 사실을 학과 동기들에게 말하자 “A가 있지도 않은 일을 말하고 다닌다” “A를 죽여버리고 싶다” 등 폭언을 하기도 했다.

B씨와의 일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공황장애 등으로 약물치료를 받던 A씨는 지난해 12월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경찰에서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지난 13일 B씨에 대해 강제추행 혐의 등으로 벌금 300만원 구약식 처분을 했다.

사건은 이대로 끝나지 않았다. 학교 인권센터가 A씨의 의견서를 받아 B씨와의 분리조치를 내렸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인권센터는 ‘A씨가 이용하는 화장실과 교내 식당 이용 금지’ ‘강의실에서 A씨보다 앞자리에 앉을 것’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A씨는 “B씨가 내가 있는 공간에 침입해 정수기를 이용하고, 강의실 뒷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 등 분리조치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매일 가해자와 마주치는데 경찰이나 학교가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권고’에만 그치는 학내 인권센터의 분리조치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B씨가 분리조치를 위반한다고 해도 제재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이 대학 인권센터 관계자는 “인권센터의 결정은 일반적으로 강제성이 없다”며 “인권센터의 목적 자체가 (징계가 아닌) 보호 취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교·직장 등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에서의 가해자·피해자 공간 분리는 피해자 보호의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법률로 명문화된 규정은 없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인 서혜진 변호사는 “학내 인권센터가 가진 실질적 권한 등이 제한적이라 분리조치를 내렸을 때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인권자문위원)는 “현 상황에서는 공간분리 등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임시적 보호조치 위반 시 징계 담당 기구에 가중징계 사유로 고려되거나 별도의 징계 사유로 삼을 수 있도록 관련 자료를 넘기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가해자·피해자 분리조치를 분명하게 법률로 규정하면 피해자가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 등을 할 때 더 쉽게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피해를 학과 교수에게 알렸다가 2차 가해도 당했다. A씨는 C교수가 상담하면서 “나도 아들이 있는데 남자들은 원래 다 그래”라며 “좀 더 성숙한 여성들이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C교수는 고소 취하를 권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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