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경련하며 눈 풀린 8개월 딸…온 가족이 울었다[40육휴]

최우영 기자 2025. 3. 22. 07:00
타임톡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0대 아빠의 육아휴직기] < 4주차 > 소아응급실 방문
[편집자주] 건강은 꺾이고 커리어는 절정에 이른다는 40대, 갓난아이를 위해 1년간 일손을 놓기로 한 아저씨의 이야기. 육아휴직에 들어가길 주저하는 또래 아빠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아기를 키우면서 당황했던 적이 많지만, 그리 위험한 순간은 없었다. 대부분 상황 자체를 처음 맞닥뜨리는 데서 온 당혹감에 그칠 뿐이었다. 그런데 아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아파하고, 정신을 못 차리는 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경험이었다. 자칫 입에 담기도 힘든 일이 생길까 봐 겁이 나고 부모의 몸까지 덜덜 떨린다.

일요일 자정, 잠들려던 아기가 갑자기 온몸에 강한 경련을 일으켰다. 깨워서 말을 걸어도 반응이 시원찮다. 초점이 풀린 눈동자는 부모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숨소리도 평상시와 다르게 가늘었다. 울음을 터뜨리면 호흡이 돌아온다던데, 아무리 등을 두드려도 울지 않는다. "제발 울어보라"며 아기 등을 연신 두드리던 장모님이 먼저 울었다.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병원 응급실 운영이 어렵다는 뉴스가 생각났다. 구급차를 탄 채 응급실을 뺑뺑이 돌다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도 떠올랐다. 주말 밤, 갈 수 있는 병원을 찾아볼 여유도 없었다. 남은 선택지는 119 신고뿐이었다.
다급한 마음, 야속했던 119
119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이 구급차를 가리키며 "시체나 중환자들이 타는 차"라며 아기의 탑승을 만류했다. 실제 위생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진=뉴시스
곧 119에 신고해 아기의 상태를 설명하고, 아기 진료가 가능한 응급실을 알려주거나 구급차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119 상황실에 전했던 아기 상태를, 구급대원에게 전화로 재차 설명하고, 집 앞에서 만나서 또 상황을 설명했다. 구급대원은 매뉴얼에 따른 질문을 반복하는데, 당황한 부모 마음은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아기가 팔과 다리를 갑자기 심하게 떨고, 눈이 풀려서 초점이 안 맞아요. 호흡도 약하고 몸에 힘을 못 줘요. 열도 나기 시작했어요."

"아기가 경련을 했나요?"

"팔다리를 평상시와 다르게 부르르 떨었는데 지금은 멎었어요. 이게 경기인지 경련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아기가 경련을 했다는 거예요?"

여기서 아내도 울기 시작했다.

"저도 애를 처음 낳아보고 이런 상황이 처음이다 보니 이게 경련인지 아닌지 판단을 못 해서 상황을 설명하는 거예요. 판단이 안 서니까 전문가 도움을 받으려고 119 전화를 한 건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요."

5분 가량이 지난 뒤 서울 송파소방서 산하 한 안전센터에서 구급차를 보내줬다. 아기를 안고 아내, 장모님과 함께 구급차로 다가섰다. 구급대원 중 한 명이 아기 체온을 잰 뒤 고열을 확인했다. 구급차에는 보호자 1명만 탈 수 있다길래, 아내나 장모님이 동행한 뒤 나머지 두 명은 자차나 택시로 따로 이동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이때 또 구급대원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다른 차로 이동할 수 있으면 그렇게 가시죠. 이 차는 아무래도 시체나 중환자들 태우고 다니는 거라서요."

이번에는 내가 울고 싶었다. 최대한 좋게 해석하자면 "우리 구급차는 위생 상태가 좋지 않으니 어린 아기를 태우기 부적절하다"는 뜻이었을까. 그런데 당장 갈 수 있는 응급실이 어딘지 모르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에 뼈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혼자 택시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다가 의료진 부족하다며 퇴짜 맞고 뺑뺑이를 돌았던 기억도 떠올랐다. 구급대원에게 응급실까지만 제발 넣어 달라고 사정사정을 하고 장모님과 아기가 탄 구급차를 보냈다.
한밤중 아기들 바글바글한 소아응급실
심전도 측정 기기를 몸에 달고 누워있는 아기. 응급실 조명 조절이 어려워 점퍼로 얼굴을 덮어 놓았다. /사진=최우영 기자
다행히 첫 번째로 도착한 서울아산병원 소아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기 주민등록번호를 외우지 못한 장모님한테 문자메시지를 보내 접수를 도왔다. 밤중에도 소아응급실은 의료진과 아기들, 보호자들로 인산인해였다. 아기에게 심전도, 혈액검사 등을 진행한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한 뒤 아기의 호흡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못 쉬었던 숨을 몰아서 쉬려는지 헐떡거리면서 우는 모습에 온 가족 마음이 또 무너졌다. 정신없는 와중에 아기가 대변을 눠서 기저귀를 가지러 집에 다시 다녀왔다. 응급실 안에도 보호자 1인만 동행할 수 있어 장모님과 밖에서 대기했다.

이후의 상황은 아내를 통해 나중에 전해 들었다. 새벽녘에 아기가 울다 지쳐 잠드는데 응급실 조명이 너무 밝아 점퍼로 얼굴을 가려줬다고 한다. 검사를 위해 온몸에 주렁주렁 측정기기들을 달아놨는데 아기가 울면서 그걸 떼어내면, 간호사들이 능숙하게 다시 달아놓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아기는 아파서 우는 와중에도 간호사의 휴대폰을 탐하며 손을 뻗었지만, 간호사가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사수했다는 것, 아기 발바닥에서 채혈할 때도 간호사 2명이 달라붙어 최대한 덜 울게 도와줬다는 얘기도 들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2시간 가량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스마트폰 검색으로 아기들이 겪는 열성 경련 증상 등을 찾아보며 마음을 다잡고 있을 뿐이었다. 아산병원 동관 1층 로비에는 소아응급실에 들어가지 못한 보호자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었다. 저마다 근심 걱정 가득한 표정이었다.

기다리던 검사 결과는 의외였다. 8개월 아기의 코로나19 확진이었다. 코로나 초기 증세로 열이 오르면서 경련과 고열이 왔던 것이었다. 해열제를 사용하며 며칠간 지켜보고, 또 경련이 일어나면 응급실을 다시 찾으라는 말을 들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 대신 아플 수 있다면…
응급실 실려갔다 온 지 4일만에 혼자서 놀기 시작한 아기. /사진=최우영 기자
퇴원하기 전 간호사가 아내에게 해열제 복용 교육을 해줬다. 경황없는 보호자가 제대로 듣지 못할까 봐 즉석 퀴즈까지 내고, 안내지까지 챙겨줬다. 내용은 코로나19 시기에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한창 홍보하던 것과 같았다.

열이 심할 경우 부루펜 등 이부프로펜 계열 해열제와 타이레놀, 쳄프 등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해열제 두 가지를 번갈아서 먹일 수 있다는 것. 같은 계열을 연달아 먹이지 말고, 다른 계열 간에도 최소한 2시간씩 복용 간격을 지키라는 것 등이었다.

3~4일이 지나자 아기의 열은 상당 부분 떨어지고 다시 웃으며 놀기 시작했다. 다만 입맛이 안 돌아왔는지 분유도 적게 먹는다. 원래 하루 180g씩 먹던 이유식도 한두 입 먹고 안 먹으며 운다. 밤잠도 잘 못 자다가 다시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른들이 죄다 코로나에 걸렸다. 나는 후각을 잃었고 아내는 기침을 시작했다. 장모님은 목이 잠기셨다. 그래도 셋 다 입을 모아 얘기하는 건, 아기 아픈 것보다는 차라리 어른들이 아픈 게 낫다는 것이다. 자식 대신 아프고 싶다던 다른 부모들의 말, 이제야 알 것 같다.

끙끙 앓다가 잠든 모습. 언제나 자는 모습은 사랑스럽다. /사진=최우영 기자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이 뉴스에 대해 의견을 나눠보세요.
톡방 종료까지 03:07:16 남았습니다.

타임톡 참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