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아무도 없어요?” 끈 잡고 30분 버텨 장애인 생명 살렸다 [따만사]

김수연 동아닷컴 기자 2025. 3. 21. 14: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도구 바닷가에서 물에 빠진 낚시객 구한 김태현 씨
AI가 그린 이미지 (출처=챗GPT)

“거기 아무도 없어요? 도와주세요!”

그날 부산 영도구 동삼동 바닷가에서 김태현 씨(28)는 지나가는 한 사람이라도 듣기를 간절히 바라며 도와달라고 소리 질렀다.

낚시가 취미인 김 씨는 1월 21일 한밤중 집 근처 바닷가에서 낚시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인근에서 낚시하던 60대 남성이 바다로 곤두박질쳤다. 지체 장애가 있던 남성의 휠체어가 돌진한 것이다.

김태현 씨 제공

김 씨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남성에게 낚시 도구인 ‘두레박’을 던졌다. 물고기를 담아둘 때 쓰는 긴 끈이 달린 바구니였다. 김 씨는 남성에게 두레박을 잡으라고 외쳤다. 김 씨는 남성이 떠내려가지 않게 끈의 끝을 잡고 버텼다.

“익수자가 제 눈을 보면서 ‘선생님 놓지 말아주세요’라고 계속 말했어요. 손을 놓치면 한순간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손으로 끈을 잡은 김 씨는 주위를 둘러봤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신고를 부탁하고자 했다. 물살이 세서 한 손이라도 놓았다간 그대로 떠내려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가 밤 11시로 늦은 시간인 탓에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김 씨는 누구든 들을 때까지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쎈 물살에 흔들리는 익수자를 끈 하나로 지탱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 씨는 뒤로 드러누워 양발을 고정하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텼다. 잡고 있던 김 씨의 손은 빨갛게 부어올랐다.

사고 위치, 김태현 씨 제공

그렇게 기다리던 끝에 사람이 나타났다. 김 씨를 구조 신고를 부탁했다. 하지만 행인은 그 지역이 어딘지 잘 몰랐다. 결국 김 씨가 스피커폰으로 경찰에게 정확한 위치를 설명했다.

이후 경찰이 도착해 남은 상황을 수습했다. 30분 동안 끈을 놓지 않았던 김 씨 덕분에 익수자는 어두운 바닷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김 씨는 익수자를 구조해 낸 뒤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렸다.

“구조 후에도 익수자가 정말 심하게 떨었어요.” 김 씨는 구조된 사람이 회복했다는 말을 경찰에게 전해들은 뒤에야 안심했다.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김 씨에게 경찰은 “다친 곳은 없냐”고 물었다. 그제야 김 씨는 손이 붓고 상처가 난 사실을 알았다. 김 씨는 “너무 힘들고 정신이 없다보니 한 시간 가량 혼자 멍하니 그곳에 있었다”고 떠올렸다.

영도경찰서는 김 씨의 의로운 행동을 높이 사 감사장을 전달했다.

감사장을 받은 김태현 씨 (사진=부산 영도경찰서 제공)
“처음 아니었다”…과거에도 강에 빠진 사람 목숨 구해
김 씨는 그 시간 후로 종종 악몽을 꾼다고 했다. 경찰의 감사장을 본 김 씨의 부모는 칭찬하면서도 나무랐다. 어머니는 “잘한 일이지만, 수영도 못 하는데 너도 위험해질 뻔했다”고 걱정했다.

“저도 위험했죠. 어떻게 보면 무모했던 거 같아요. 근데 저는 구할 수 있는 조건이 되잖아요. 그 상황에 적절한 도구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한 거예요.”

김 씨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해 여름, 김 씨는 이미 경남 양산시에서 강에 빠진 익수자를 구조한 일이 있었다.

당시 여행 중이던 김 씨는 강에 빠진 남성을 발견했다. 비가 많이 내린 뒤 강물을 건너려던 남성이 돌에 미끄러진 것이었다. 남성은 미끄러진 위치에서 순식간에 2m 정도 떠내려가고 있었다.

김 씨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물에 뛰어들어 익수자를 구했다. 김 씨는 “보고만 있을 순 없지 않냐.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두 사람의 생명을 구한 김 씨는 “작은아버지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관인 김 씨의 숙부는 김 씨가 어릴 적부터 항상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라”고 말했다.

김 씨는 “제가 안 하면 그분들은 죽을 수도 있는 거다. 제가 그런 상황을 목격했고,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은 많이 위험하다. 바다든 민물이든 한순간에 위험해질 수 있다. 시야 확보가 어려운 밤에는 특히 위험하니 물에서는 언제나 조심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김수연 동아닷컴 기자 xunnio410@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