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원본 없는 녹음파일도 증거능력 인정될 수 있다"
진술·감정결과·심리경과 등 종합적 판단 필요
대법 "증거 검토 없이 무죄 선고 오류" 파기환송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녹음파일의 원본이 없어도 관련자의 진술, 감정인의 소견, 녹음파일 검증 결과, 수사 및 공판 심리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 판단에 있어 중요한 의미가 있다. 기존에는 디지털 증거의 원본이 없을 경우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어려웠으나, 이번 판결로 원본 제출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다양한 정황과 관련자의 진술, 감정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이들은 2018년 5월 피해자에게 “주식매매 대금의 20%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지급하면 액면가인 500원에 보유 주식을 양도하겠다”고 속여 2억7000만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았다. 또한 B씨는 변제 의사 없이 피해자에게 차용금 명목으로 3000만원을 편취하고, 피해자에게 빌려준 3000만원을 변제받았음에도 변제받지 못한 것처럼 피해자를 사기죄로 고소해 무고한 혐의도 받았다.
1심은 피해자가 제출한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녹음파일이라는 분명한 증거가 있음에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며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면서 A씨에게 징역 2년 6개월, B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CD에 저장된 파일 중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파일은 원본이 현존하지 않는다”며 “원본 파일이 복사 과정에서 편집되는 등 인위적 개작 없이 원본의 내용 그대로 복사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녹음파일 및 이를 풀어쓴 녹취록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같은 2심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사인(私人)이 복사한 녹음파일의 원본을 제출할 수 없을 때에는 법원이 관여한 사람의 진술, 감정 결과, 수사 및 공판 심리 경과 등을 종합해 동일성 증명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대법원은 “대화 내용을 녹음한 파일은 그 성질상 작성자나 진술자의 서명 또는 날인이 없을 뿐만 아니라 녹음자의 의도나 특정한 기술에 의하여 내용이 편집·조작될 위험성이 있음을 고려해, 대화 내용을 직접 녹음한 원본이거나 혹은 원본으로부터 복사한 사본일 경우에는 복사 과정에서 편집되는 등 인위적 개작 없이 원본 내용 그대로 복사된 사본임이 증명돼야 한다”면서도 “원본 제출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해 원본과 사본을 직접 비교할 수 없는 때에는 법원이 녹음파일 생성과 전달 및 보관 등의 절차에 관여한 사람의 증언이나 진술, 녹음파일에 대한 검증·감정 결과, 수사 및 공판 심리의 경과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사본의 원본 동일성 증명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녹음파일 생성부터 제출에 이르는 전 과정에 관여한 피해자가 피고인들의 음성을 복사 과정에서 인위적 편집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점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또한 일부 녹음파일에 관해서는 이러한 진술에 부합하는 감정결과와 감정인의 진술이 있다는 점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반면 피고인들은 ‘녹음파일이 자신들의 음성인지’와 ‘인위적 개작 여부’에 관해 막연히 부인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편집·조작됐는지 특정하지 못했다. 기록상으로도 녹음이나 복사 과정에서 내용이 편집·조작됐다고 의심할 만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 녹음파일은 적어도 일부는 그 원본 동일성이 증명됐다고 볼 여지가 많다”며 “이 녹음파일은 이 사건의 핵심 증거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은 물론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한 유·무죄 판단을 좌우할 수 있는 증거”라고 봤다.
특히 “디지털형태의 정보는 일상생활에서 자유로이 생성·복제·이전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수사기관에 제출되기 전 단계에서의 무결성을 엄격히 요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디지털 증거의 특성을 고려한 현실적인 증거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성주원 (sjw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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