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살고 싶은데 지방에만 분양 허용…늙고 병들면 받아주는 곳도 없어
고령자 10명 중 7명 도시 살고 싶다는데 지방만 규제 완화
“도심 공급시 내 토지·용적률 인센티브 등 유인책 있어야”
늙고 아파도 쭉 살 수 있는 시니어주택에 대한 수요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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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지애 기자] 지방에 거주 중인 80대 임씨는 서울에 사는 자식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어 서울과 수도권의 실버타운의 입소를 알아봤지만 모두 입소 불가 통보를 받았다. 나이가 너무 많고 초기지만 암 수술 이력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70대 김씨는 서울 내 유명 A 실버타운에 입소한 후 1년쯤 지나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됐다. A 실버타운은 자체 의료분과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중병에 의한 퇴소는 위약금을 받지 않는다며 김씨를 반강제로 퇴소시켰다. 자식들의 돌봄을 받을 처지가 아니었던 김씨는 결국 요양병원에 들어갔다.
빠른 속도의 고령화로 우리나라의 시니어주택에 대한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선택의 폭은 굉장히 협소하다. 자산이 많아야 들어갈 수 있는 초호화 실버타운이나 저소득층 일부만 들어갈 수 있는 노인복지주택이 전부다. 이마저도 공급이 적어 경쟁률이 높은데다 80대 이하의 건강한 고령자들만 받아주는 곳이 대부분이다.
대다수의 고령자들은 병원이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도심에 있는 시니어주택을 원한다. 또 늙고 병들어도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의 시니어주택을 원하지만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사업자들이 나서서 시니어주택을 짓고 싶도록 도심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추가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23일 희림종합건축사무소와 부동산 투자자문 알투코리아가 공동 발간한 ‘2025 노인주거상품의 현황과 개발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도에 거주하면서 시니어주택에 입주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55~79세 시니어 307명을 대상으로 일대일 면접 조사(2024년 3~4월)를 한 결과 68.1%가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시니어주택에 살고 싶다고 답했다. 2.6%만이 지방의 시니어주택에 살고 싶다고 답했으며 29.3%는 특별힌 선호하는 지역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서울과 수도권을 선호하는 이유로는 △의료시설 △편의시설 △공원 등 자연환경 △교통편리 등을 꼽았다.
하지만 정부는 도심 속 시니어주택 건설 유인책에는 여전히 인색한 상황이다. 정부는 2015년 이후 금지됐던 분양형 실버타운을 올해부터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했지만 그 지역을 인구감소지역(87곳)으로 제한했다. 사업자들이 실버타운을 짓고 수익을 내려면 수요가 많은 도심에 지어야 하지만 정부가 지으라고 한 인구감소지역에선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이윤이 남지 않는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나마 도심에 공급이 가능한 장기민간임대인 실버스테이의 경우도 사업자가 부담할 초기 투자비가 커서 20년간 임수대익으로는 투자금 회수가 어려울 것 같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 의견이다.
김동진 알투코리아 이사는 “고령자들은 접근성이 좋고 인프라가 좋은 도심에 살기를 원하는데 정부는 반대로 지방에 지으라며 분양 규제를 지방만 풀어주고 있다”며 “도심에선 민간 임대로 공급하려 하니 도심의 토지가격이 너무 비싸 수지가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업자가 많다”고 전했다.
때문에 사업자들을 유인하기 위해선 수요가 몰리는 도심 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단 지적이다.
이승왕 희림 수석은 “민간이 시니어주택을 짓고 싶게 만들려면 우선 도심 내 토지를 용도 변경 등을 통해 저렴하게 제공해 주는 게 관건”이라며 “또 추가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정비사업(재개발)을 할 때도 임대주택만 일정 비율을 강제할 게 아니라 시니어주택도 넣을 수 있도록 시행사들에 다양한 선택지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선진국들도 수요가 많은 도심에 시니어주택을 짓는 추세다. 김 이사는 “일찍부터 노령화를 경험한 유럽국가들은 500m 이내 병원, 편의시설을 이용 가능한 곳에 시니어주택을 짓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수년간 연구한 결과 노년의 삶의 질은 시골이 아닌 도심에서 더 만족도가 높다는 결론을 내기도 했는데 우리는 반대로 가는 형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늙고 병 들어도 살 수 있는 시니어주택 제공돼야”
시니어주택을 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속적으로 운영할 방법을 찾는 것도 과제다. 고령자들은 각종 집안일을 해결해주고 다양한 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치료와 요양서비스 까지 가능한 시니어주택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수억의 보증금고 수백만원의 관리비를 내는 민간 운영의 실버타운에서조차 80세 이하로 입주를 제한하고 있으며 중증 진단을 받아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할 경우 자체적으로 의료분과위원회의를 통해 퇴소 여부를 결정한다
이 수석은 “우리나라 시니어주택은 임대든 분양이든 결국 지속적인 관리를 위해선 시행나사 운영사가 전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구조”라면서 “그러다 보니 고액의 사용료를 지불하는 실버타운마저도 질병이 생기면 퇴소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우리보다 초고령화를 먼저 겪은 선진국들은 ‘집에서 죽을 권리’(AIP·Aging in Place)를 보장하며 집에서 치료와 요양 서비스를 받을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1~5단계로 고령자들의 건강상태를 구분하고 이를 주기적으로 진단해 각 건강단계에 맞는 돌봄 서비스를 집에서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일정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 밖에도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의 경우 보험상품과의 연계로 집에서의 돌봄 서비스 비용을 충당하기도 한다.
김 이사는 “우리 사회는 그 어떤 국가보다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단계에 진입하고 있기에 수요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시니어주택 공급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정부도 수요가 없는 지역에 대한 규제 완화보단 유연한 접근으로 수요가 많은 도심 내 공급을 늘리고 법과 제도 개선으로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박지애 (pja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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