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하면 떠오르는 작가인데 예사롭지 않습니다
한강 작가가 2024년 10월, 국내 역사상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고 환호하는 많은 독자들이 있었는데요. 그 열기가 다른 국내 작가들에게도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민기자들이 직접 '2025년 내가 응원하고 싶은 작가'를 써봤습니다. <기자말>
[장순심 기자]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특히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우리 작가들의 소설을 좋아한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우리말이 가진 깊이와 원초적이면서도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표현은 외국 작가의 작품이 번역된 것과는 다른 감동이 있다. 마치 끈적하면서도 진한 핏줄로 뭉쳐 결속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쁘고 반갑다.
소설을 좋아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묻는다. 여기서 잠시 주춤한다. 나는 그도 좋도, 저도 좋다. 소설에 대한 취향이 나름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 것 하나를 꼽을 필요가 없이 두루 다 좋기도 하다.
한때는 역사소설에 심취하기도 했고 요즘은 판타지나 SF소설에 끌리기도 한다. 대체로 구구절절한 생이지만 구질구질하지 않게 자존심을 살려주면 좋고, 어렵지 않은 어휘를 나열해서 삶의 희로애락을 깊이 통찰하면 좋다. 아무리 평범한 삶이라도 뭉뚱그리지 않고 각별하게 연출하면 나는 문턱 낮은 관객이 되어 쉽게 감동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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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지은이) |
ⓒ 한겨레출판 |
바로 딱 그런 평가를 받는 작가가 바로 권여선 작가다. 소설가지만 내가 가장 최근에 읽은 작가의 책은 <술꾼들의 모국어>라는 제목의 에세이다. 처음 접한 작가의 작품이 <안녕 주정뱅이>라는 단편집이었는데, 첫 작품과의 연결선상에서 보면 주정, 술꾼 등의 단어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른바 '술꾼'(실례가 될까 걱정스럽지만)으로 유명한 작가 권여선은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그 밖에도 소설집<안녕 주정뱅이>로 동인문학상을, 단편 <모르는 영역>으로 이효석문학상을, <기억의 왈츠>로 김유정문학상을, 2023년 <사슴벌레식 문답>으로 김승옥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가는 <안녕 주정뱅이> 출판 강연 당시 작품에서 그리는 고독과 결핍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일반적으로 결핍과 고독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을 수밖에 없으며, 어떤 의미에서 보편적인 조건인 것 같다"(<뉴스페이퍼>,2018.04.16)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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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지은이) |
ⓒ 창비 |
맛있는 안주는 '건강한 음주'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술꾼들의 모국어>에는 다양한 안주가 등장한다. 그런데 그것들이 고급식당에서의 화려한 안주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 우리가 먹는 일상의 음식과 식재료 하나가 술과 궁합이 딱 맞는 안주로 변신하는 재미를 작품에서는 만날 수 있다. 애주가인 작가의 안주 예찬은 메뉴가 부담스럽지 않아 더 특별하다.
애틋하고 다정한 권여선의 소설
작가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감과 안정감의 근원은 작가가 살아온 세대와 무관하지 않다고 나는 판단한다. 작가와 나는 이른바 '386세대'에 속한다. 1990년대 30대였고 80년대의 학번을 가졌으며 60년대에 탄생한 세대. 다른 세대에 비해 인구수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사회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으나 지금은 노인의 자리로 밀려나는, 바로 나의 세대다.
작가의 말 대로 "식민 지배나 전쟁의 경험 없이 순탄한 성장과 교육을 받은 전후 첫 세대이며, 기성세대의 기대와 희망을 한 몸에 받고 자란 교육열의 수혜자"이지만,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가능한 시기에 집안을 일으켜 세운다는 과도한 부담을 진 피해자들"인, 안타까운 세대의 모습들이 작가의 작품에는 투영된다.
<푸르른 틈새>의 운동권 대학생 미옥은 '학생운동가'와 '사랑스러운 여성' 사이의 이중적 마음, 어설프고 눅눅하고 배고픈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옥을 통해 과거의 서글프면서도 아름답던 상처를 다독이게 하는 것 같다.
<각각의 계절>의 단편 '사슴벌레식 문답'에서는 사슴벌레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우리 세대 청춘의 모습은 여행지 숙소에서의 '뒤집힌 채 버둥거리며 빙빙 도는 구슬픈 사슴벌레'와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그 절망을 '살짝 괄호에 넣어 두고 저 흐르는 강처럼 의연한 사슴벌레의 말투만을 물려받기'로 다짐하며 여태껏 꾸역꾸역 단호한 삶을 이어왔던 우리들. 우리는 어쩌면 무엇으로든 살아냈으며, 어떻게든 단련되어 결국엔 어떤 소설로든 완성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슴벌레는 아니었을까. 그런 이유로 권여선의 소설은 더 애틋하고 다정하다.
반복건대 권여선 소설의 인물들이 겪는 갖가지 고통은 그들 개인에게 귀속되는 불행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책임을 물어야 할 부당함, 불공정, 불평등이다. 그들의 고통에서 당신이 슬픔을 느꼈다면, 그 고통의 당사자를 불행의 주인으로 알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사회의 부정을 대신 겪어내는 누군가로 여겼기 때문이리라. 그 슬픔은 누군가의 단독적인 아픔을 알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인간들 사이의 근본적인 의존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번 소설집에서 우리가 타인에 대해 느낀 슬픔은 공감보다는 책임감일 것이다. (권여선, <아직 멀었다는 말> 해설(백지은 문학평론가) 중에서)
권여선 작가는 '동아시아문학포럼'에서 "증오는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정신을 파괴한다"며 "더 강하고 불의한 것들을 증오하기보다 그것들이 암묵적으로 혐오하고 배제하고 억압해 온 것들을 더욱 사랑하려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또 "강한 것들을 죽여 없애기보다는 그것들이 스스로 고개를 갸웃거리도록 기반을 허물어뜨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뉴스페이퍼, 2018.10.27).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문학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술자리가 앞으로도 건강하게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가 술을 권하니 어떻게든 그 사회의 해법 또한 술과 함께 잘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좀 더 가난해도 좋고 좀 더 고독해도 좋은데, 끝내 명랑하자"는 작가의 삶의 화두이자 목표가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도 잘 전염될 수 있기를 2025년에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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