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 연대'가 만든 기적... 쏟아지는 후원에 놀란 시민사회

박성우 2024. 12. 24.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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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에 맞서 싸우며 노조, 전여농, 전태일의료센터에 연대... 관련 사이트 이용자 폭주

[박성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며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21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 고개 인근에서 경찰에 저지된 뒤, 응원하는 시민들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주연
12월 한겨울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서 경찰에 둘러싸인 농민과 시민들에게 느닷없이 배달 음식 세례가 쏟아졌다. 동짓날인 21일을 맞이해 액운을 물리쳐준다는 팥죽부터 피자, 햄버거, 김밥 등등 '더 못 먹으니 그만 주문해도 괜찮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음식이 몰려왔다. '밥에 진심인 한국인'의 연대는 황량한 남태령을 단숨에 먹거리 광장으로 만들었다.

먹거리뿐일까. 추운 날씨를 우려한 핫팩부터 언제나 요긴하게 쓸 수 있는 휴지와 물티슈, 자매애의 상징과도 같은 여성용품까지 물밀듯이 남태령에 도착했다. 선결제는 여의도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22일 오후, 경찰이 차 벽을 해제하고 시민들이 남태령을 넘어선 것처럼 시민들의 후원 연대는 여의도와 남태령을 넘어 시민사회운동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다. SNS를 통해 젊은 여성들이 여의도와 남태령에 모였듯 그곳 너머의 연대 또한 SNS에서 활발히 이루어졌다.

계엄 당일 가장 선두에 선 노조지회장 "후원도 좋지만 노조가 신뢰 얻어서 더 좋다"
 17일 X(옛 트위터)의 한 유저는 "혹시, 계엄날 밤 빚진 마음을 갚겠다고 하신 분들께 또 한번 후원과 김 사달라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날 상황이 빠르게 알려지고, 민주노총이 달려와 앰프를 켜게 된 모든 과정에 자동차판매연대지회가 있었습니다"라며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자동차판매연대지회가 투쟁기금 마련을 위해 판매 중인 김을 홍보했다.
ⓒ X 갈무리
17일 X(옛 트위터)의 한 사용자는 "혹시, 계엄 날 밤 빚진 마음을 갚겠다고 하신 분들께 또 한번 후원과 김 사달라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날 상황이 빠르게 알려지고, 민주노총이 달려와 앰프를 켜게 된 모든 과정에 자동차판매연대지회가 있었습니다"라며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자동차판매연대지회가 투쟁기금 마련을 위해 판매 중인 김을 홍보했다.

그러자 조회 수가 16만에 달하고 공유가 3600회를 넘어섰다. X 사용자들은 "마침 김이 떨어졌는데 잘됐다", "어차피 후원하려 했는데 김까지 주다니 완전 럭키비키잖아?"라며 구매에 동참했다.

기자와 통화한 김선영 자동차판매연대지회장은 "김이 정말 잘 나가고 있다. 후원금도 오천 원, 만 원부터 해서 십만 원까지 많이 보내주고 계시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 지회장은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된 그날, 우리 지회는 2년째 국회에서 천막 농성 중이니 그날도 어김없이 국회 앞에 있었다"라며 "계엄 선포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 앞 상황을 어느 언론보다 빠르게 민주노총에 동영상을 찍어 공유했다. 그러자 민주노총에서 즉각 조합원 지침으로 '빨리 국회 앞으로 모여라'고 지침을 내렸다"라고 당시 상황을 복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시민들이 국회 앞에 집결해 계엄해제, 윤석열 탄핵 등을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김 지회장은 "마침 저희가 계속 국회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으니 대형 스피커가 있었다. 바로 대형 스피커 4개를 설치해서 밤새 선동하면서 계엄군을 막아낸 것"이라며 "판매연대지회가 계엄군을 막는데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 그 내용이 X에 많이 퍼져서 시민분들이 '계엄날 밤의 영웅', '나라와 가족을 지켜줘서 고맙다' 이렇게 많이 응원해 주셔서 놀랍고 감사했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이어 김 지회장은 "사실 민주노총이 일반 시민들한테는 왜곡돼 알려진 측면이 있다"라면서 "그런데 이번 내란 사태를 계기로 우리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선두에 서서 국회에 모여 계엄군을 막아내고 이후 탄핵 투쟁을 하면서도 앞장서서 투쟁하면서 일반 시민분들한테 많은 신뢰를 얻게 된 것 같다. 지회장으로서 지회에 오는 많은 후원도 정말 감사하지만 민주노총 조합원으로서도 시민들과 연대하고 신뢰의 장이 열린 것 같아 굉장히 기분이 좋다"라고 기뻐했다.

"열 명 가입하던 신규 회원이 어제만 6백명... 언니들이 너무 고맙대요"
 '윤석열 체포구속' '사회대개혁' '개방농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서울로 향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소속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22일 새벽 서울로 들어서는 서초구 남태령고개 수도방위사령부앞 도로에서 경찰에 막혔다. 농민들이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가운데, 서울 도심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수백명이 합세해 함께 농성하고 있다.
ⓒ 권우성
한편 남태령에는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이 주축이 되어 행진을 진행했다. SNS에서는 전농과 전여농의 후원계좌가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오르는 등 후원 문의가 빗발쳤다.

전여농 조합원들이 만든 협동조합인 '언니네 텃밭'도 그러한 후원 열풍의 수혜를 입은 곳 중 하나다. 언니네 텃밭을 맛난 우리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진짜 참기름과 진짜 고춧가루 카르텔'로 소개한 한 X 사용자의 게시글은 공유 2만 7천 회, 조회 수는 무려 344만 회에 달했다.

언니네 텃밭 활동가는 기자에게 "누리집 방문하시는 분들이 하루에 2~3천 명 수준이었는데 어제만 4만 명이고 오늘도 계속 꾸준히 방문해주고 계시다"라며 "늘어나는 방문객을 감당할 수가 없어 누리집 호스팅 업체에 확장 문의를 해놨다. 누리집이 어제보다도 느려진 듯하다"라며 당혹감과 동시에 웃음기가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전여농 조합원들이 만든 협동조합인 '언니네 텃밭'도 그러한 후원 열풍의 수혜를 입은 곳 중 하나다. 언니네 텃밭을 맛난 우리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진짜 참기름과 진짜 고춧가루 카르텔'로 소개한 한 X 유저의 게시글은 공유 2만 7천 회, 조회 수는 무려 344만 회에 달했다.
ⓒ X 갈무리
 언니네 텃밭 활동가는 기자에게 "누리집 방문하시는 분들이 하루에 2~3천 명 수준이었는데 어제만 4만 명이고 오늘도 계속 꾸준히 방문해주고 계시다"고 했다. 현재 언니네 텃밭 누리집에는 다음과 같은 팝업창이 뜨고 있다.
ⓒ 언니네 텃밭 누리집 갈무리
해당 활동가는 "하루 평균 열 명 안팎이던 신규 회원이 어제는 6백 명, 오늘 낮까지만 해도 230명이 새로 회원으로 가입하셨다"며 "언니네 텃밭은 정기적으로 우리 제철 농산물을 보내주는 '제철꾸러미'가 주요 사업인데 요즘 같이 집밥을 잘 안 해 먹는 시대임에도 많은 분들이 제철꾸러미 정기 구독을 해주셨다"라고 평소의 수십 배에 달하는 이들이 언니네 텃밭을 찾고 있다고 했다.

언니네 텃밭에 소속된 전여농 농민들을 '언니들'이라고 칭한 그는 "따뜻한 연대의 마음을 이렇게 행동으로 실천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특히나 저는 여성 농민 언니들과 시민 여러분들을 잇는 역할을 하는 활동가이다 보니 그 추운 남태령까지 달려가서 함께해 주신 시민분들이 너무너무 감사했다"면서 "남태령에도 언니네 텃밭의 농민 언니들이 많이 나가 계셨다. 언니들과 물리적으로 함께 계셔준 것을 넘어서 언니네 텃밭까지 찾아와 마음을 보태주고 계신 걸 농민 언니들께 알려드리니 '너무 고맙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많이 놀라고 감동하셨다"며 '언니들'이 느끼는 감동과 고마움을 시민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3억 원 가까이 모인 전태일의료센터 "연대해주신 시민들게 존경과 감사 전한다"
 3억 원 가까이가 모인 전태일 의료센터의 김지현 홍보팀장은 "우리 사회의 희망을 꺼뜨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기부를 통해 연대해주신 시민들께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라며 연대를 보낸 시민들에게 마음을 담아 고마움을 전했다.
ⓒ X 갈무리
"10만 원만 내면 벽에 이름을 새겨준다"며 입소문을 탄 곳도 있다. 바로 '전태일 의료센터'다.
김지현 전태일 의료센터 홍보팀장은 기자에게 "X를 통해 22일 오전 일찍부터 전태일의료센터 기금 모금 현황을 종일토록 나누면서 '향후 세워질 전태일의료센터 건물 벽에 이름을 새겨 자랑할 만한 기부에 나도 동참하고 싶다'는 내용이 리트윗 되었다"라며 "그렇게 공유된 내용이 전태일의료센터 홈페이지 동시 방문으로 이어졌고 다운 트래픽과 페이지뷰가 급증하면서, 허용접속용량을 초과해 접속용량을 긴급히 늘렸다"고 말했다.
▲ 기부금 전달식 2024년 12월 7일(토) 5명의 경희대학생이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을 위해 모금한 70만원의 기부금을 녹색병원 임상혁 원장에게 전달하는 모습이다.
ⓒ 경희대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GCP팀
김 팀장은 "오늘 오전에 확인하니 어제 하루만 2727건, 2억 7천 8백만 원의 기부가 들어왔다. X에 올려진 특정 게시물의 조회 수가 80만 회(현재는 100만 회)였는데 그 영향으로 보인다"라면서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 사무국에서는 '일요일 아침부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유추해 봤다. 그 시간대에 집중된 이슈가 있었다. 전국의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올라와 서울로 들어오기 위해 남태령에서 1박 2일의 투쟁을 진행하던 와중이었다"며 남태령에서의 투쟁이 X를 거쳐 전태일의료센터 후원으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파악 중이라고 했다.

또한 김 팀장은 다른 시민사회운동에도 후원이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비상계엄'이라는, 우리의 일상과 근간을 뒤흔드는 충격적 경험을 한 시민들이 사회적 상식과 도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 현재 진행되는 여러 캠페인과 모금 활동에 연대를 해주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 "전태일의료센터는 '아픈 몸 너머 우리 사회의 아픈 곳을 함께 치료하는 병원을 국민의 힘으로 함께 만들자'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눈 밝은 시민들이 전태일의료센터를 알아봐 주시고, 이런 활동에 화답해 주시며 집중적인 모금을 해주신 것이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라면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꺼뜨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기부를 통해 연대해 주신 시민들께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처럼 여의도의 선결제, 남태령의 배달 음식 후원은 수많은 사회운동단체들을 향한 더 넓은 연대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윤석열이라는 반민주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지도자가 그나마 우리 사회 민주주의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위헌 계엄을 통해 이러한 연대의 장을 펼칠 계기를 만든 것이 유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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