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전쟁 이제 ‘1쿼터’ 끝났다...재정비 나선 반도체업계

이희권 2024. 10. 2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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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6월 대만 타이베이 국립대만대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컴퓨텍스 타이베이2024 기조연설 중 차세대 AI 가속기인 블랙웰 기반 GB200을 들고 있다. 타이베이(대만)=이희권 기자

인공지능(AI) 열풍 속에 시작된 전 세계 반도체 전쟁 ‘1라운드’ 승부가 사실상 가려졌다. 승자는 시장을 독식했고, 패자는 전열 가다듬기에 나섰다. 20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AI 반도체 전쟁 전반전은 엔비디아·TSMC·SK하이닉스의 완승으로 끝나는 모양새다. AI 모델의 학습·개발에 필수적인 AI 가속기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설계·제조를 나눠 맡았던 이들 회사는 최근 모두 분기 기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다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제 막 본격적 경쟁이 시작된 만큼 역전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 카이스트 김정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최근 기술 변화속도가 빨라져 기회는 다시 곧 찾아올 것”이라면서 “농구로 치면 1쿼터가 막 끝난 만큼 전략과 기술 개발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찾아 고쳐야 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① AI 반도체는 ‘엔비디아 시대’


정근영 디자이너
AI 가속기 시장에서는 당분간 엔비디아의 독주가 유력하다. AMD·인텔 등 주요 도전자들은 물론, 수많은 스타트업이 성능 면에서 엔비디아와의 정면승부를 피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인텔은 지난달 출시한 신형 AI 가속기 가우디3의 개발 방향을 가격과 전력효율 등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집중한 것으로 전해진다. 엔비디아가 압도적 우위에 있는 ‘AI 훈련’ 성능보다는 ‘AI 추론’ 성능을 앞세워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② 파운드리는 ‘TSMC 질주’


TSMC 본사. 블룸버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는 대만 TSMC가 초반 독주체제를 굳혔다. TSMC는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활용되는 3나노미터(㎚·1㎚=10억 분의 1m) 공정에서 모든 주요 고객사를 싹쓸이하며 기세를 올렸다. TSMC의 올 3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4.2% 증가한 13조8000억원을 기록하며 삼성 반도체의 같은 기간 순이익을 2배 이상 추월했다.

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최근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반 3나노 공정보다 2나노 공정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일부 협력사에 “3나노 대신 차세대 공정인 2나노 공정 개발에 참여해 달라”는 방침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파운드리가 첨단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자산(IP) 기업·디자인하우스 등 수많은 협력사와의 사전 개발이 필수적이다.

2022년 6월 세계 최초 GAA 기반 3나노 파운드리 양산에 참여한 삼성전자 관계자들이 손가락으로 3을 나타내며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은 지난 2022년 TSMC를 제치고 세계 최초로 신기술인 GAA 구조를 적용한 3나노 공정 양산을 발표했지만 고객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당분간 TSMC와의 정면승부보다는 2나노 이후 시대를 준비하겠다는 것”이라 말했다. 인텔 역시 지난 2021년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한 지 3년여 만에 부진한 실적으로 끝내 분사를 결정했다. 인텔은 주력 제품인 중앙처리장치(CPU) 칩을 자체 파운드리에서 생산하지 않고 경쟁자인 TSMC의 3나노 공정에 맡겼다.


삼성전자·인텔 “당분간 본업 집중”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인텔 본사. 실리콘밸리=이희권 기자
삼성전자·인텔은 파운드리 분야 추가 투자를 보류하고 본업 경쟁력 회복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삼성전자는 최근 30년 넘게 선두를 지켜왔던 D램 경쟁력을 재점검하며 주요 공정을 포함한 기술개발 방식 전면 재검토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D램 기술 역량 복구를 위해 총력전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SK하이닉스가 주도하고 있는 HBM 시장에서도 기존 메모리 반도체 ‘게임의 법칙’을 벗어나 성능을 우선순위에 둔 설계로 개발 방향을 전환한다.

인텔 역시 하반기 출시되는 신형 CPU 경쟁력 회복에 집중한다. 앞서 파운드리 투자에 집중하느라 안방인 CPU 시장에서 AMD·퀄컴 등 경쟁사에 시장점유율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반도체 소부장도 희비 엇갈렸다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사진 ASML
이처럼 반도체 업계의 경쟁 구도가 바뀌면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도 희비가 엇갈리게 됐다.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ASML는 인텔과 삼성전자가 투자를 보류하면서 장비 주문량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여기에 미국이 중국 제재를 위해 반도체 장비 수출을 제한하면서 당분간 관련 매출이 줄어들 전망이다. 이처럼 주요 반도체 장비업체의 표정이 어두운 반면, AI와 관련해 시장 규모가 크게 늘어난 HBM 관련 특수 장비 업체들은 연말까지 사상 최대 실적과 시장 확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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