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66] 퇴임 대통령 예우법, 눈꼴사납다
나는 미니밴 옆에 서서 애덤이 경호원과 수행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들은 재빨리 움직였다. 누가 보면 숲속에 망원 조준기를 겨냥한 암살자가 숨어 있다는 제보라도 받은 모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이 모두 들어가자 저택의 창마다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잠깐이나마 이곳이 권력의 잔재가 아니라 권력의 진정한 핵심이라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모든 것이 낯설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 로버트 해리스 ‘유령 작가’ 중에서
감옥에만 가지 않으면 대통령은 퇴임 후 풍족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 재임 연봉의 95%에 달하는 비과세 연금과 4억원의 예우 보조금, 비서진과 차량, 해외여행, 의료, 간병 지원금이 세금으로 지급된다. 여기에 더해 문재인 전 대통령은 뭐가 그리 무서웠는지 경호 시설 부지 매입과 신축에 60억원이 넘는 혈세를 투입했다.
소설 속 대필 작가는 영국 정부가 보내준 경호원 여섯 명에게 둘러싸여 사저로 들어가는 전직 수상의 모습이 마치 ‘권력의 진정한 핵심’처럼 보였다고 서술한다. 그렇다면 65명의 경호를 받는 문 전 대통령은 보통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
미국의 퇴임 대통령은 현역 시절의 절반, 영국 총리는 25%의 연금을 받는다. 사저 매입이나 신축, 수리에는 나랏돈을 쓰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예우를 받는 걸까? 지난 정권은 이전 정부보다 500조원을 더 썼다. 국가 부채는 두 배나 늘어서 1000조원이 넘었다. 국민총소득 증가율은 전 정부의 4분의 1에 불과했지만 세금은 40% 인상, 61조원을 더 걷으며 국민 목을 졸랐다.
윤석열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경호 시설 신축 사업에 약 140억원이 책정됐다. ‘청와대는 국민 품으로, 대통령은 국민 속’에서 일하겠다던 정부였다. 물가 상승분이 더해졌지만 향후 하향 조정될 거라는 변명을 믿더라도 퇴임 후 경호에 또 많은 세금을 쓰겠다는 의지를 충분히 드러낸 셈이다.
5년 임기 중 저지른 죄는 처벌하지 않으면서 여생을 상왕처럼 대접하는 현재의 대통령 예우법은 솔직히 눈꼴사납다. 진정한 개혁이란 세상을 뒤집어 타인의 삶을 바꾸는 게 아니다. 특권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권력자만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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