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에 빠진 대한민국 [위험수위 다다른 국민 정신건강]

박신홍.김홍준.신수민 2024. 6. 22.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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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중앙SUNDAY·한국심리학회 공동 기획 <상>
우리나라 성인 남녀 10명 중 4명은 최근 2주간 적어도 한 번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삶에 지치고 소진된 일상 속에서 심리적으로 막다른 코너에 몰린 상태라는 의미다.

또 3명 중 2명은 번아웃·우울증·무기력감과 심각한 불안감, 자살 충동 등 정신건강 문제를 한 개 이상 겪은 경험이 있고 지금도 경제·직장 문제와 대인 관계를 비롯해 최소한 2개 이상의 영역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등 국민 상당수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정신건강과 관련해 전문가 상담·치료를 받은 경우는 3명 중 1명에 불과해 국민 정신건강 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이는 중앙SUNDAY가 한국심리학회(회장 최진영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와 공동으로 국민 정신건강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조사연구컨설팅 올림’에 의뢰해 지난 5~11일 만 19세 이상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이번 기획은 정부가 다음달부터 우울·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전문 심리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 국민 마음 투자 지원 사업’을 본격 시행할 예정인 가운데 국민 정신건강 문제를 진단하고 정부 정책의 보완 방향을 모색해 보기 위해 마련했다.

조사 결과 최근 2주간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는 문항에 8.7%는 ‘항상·자주 그렇다’고 답했다. 또 11.7%는 ‘때때로 그렇다’, 22.2%는 ‘드물게 그렇다’고 응답해 42.6%가 최소한 한 번은 심리적으로 쫓기고 내몰리는 상태에 처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심리 상태일 경우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 심하면 자살 생각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최근 2주간 ‘자살을 생각했다’는 문항에 15.9%는 ‘항상·자주·때때로 그렇다’, 13.2%는 ‘드물게 그렇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응답자의 75.2%는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해 국가의 책임·관리가 필요하다’고 답해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주길 바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국가의 국민 정신건강 관리 실태에 대해서는 ‘만족하는 편’이 14.9%에 그친 반면 ‘불만족하는 편’은 33.3%로 두 배 이상 많았다. 또 전 국민 마음 투자 지원 사업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 없다’는 응답이 85.3%인 데 비해 ‘들어본 적 있다’는 14.7%에 불과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려는 정신건강 지원 사업이 정작 국민의 피부에는 와닿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진영 한국심리학회장은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지원은 이제껏 중증 질환에 집중돼 왔지만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상당수 국민이 일상의 삶을 영위하기 힘들 정도로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더 늦기 전에 국가가 국민의 마음 건강을 챙기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일·학업서 번아웃 경험” 36%…20~30대와 대졸 이상서 많아

소방공무원들이 소방동료상담소인 ‘소담센터’에서 집단 심리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국민 정신건강 실태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자 우려였다. 우선 최근 2주간 정신건강 실태를 조사한 결과 우울증과 관련해 ‘하루 중 대부분 울적했다’와 ‘즐겁게 생활하지 못했다’는 문항에 64.4%와 71.1%가 ‘그렇다’고 답했다. 불안감 증세에 대해서도 ‘걱정을 조절하거나 멈출 수 없었다’와 ‘불안·초조해 직장·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문항에 60.2%와 53.2%가 ‘그렇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심리학회가 이들의 응답을 정밀 분석한 결과 현재 3명 중 1명은 정상 범위를 넘어설 정도의 우울증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살과 관련한 심리 상태도 위험수위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2주간 ‘항상·자주·때때로 자살을 생각했다’는 응답은 15.9%였고 ‘자살을 깊이 생각했고 구체적 방향까지 계획했다’는 응답도 13.9%나 됐다. ‘드물게 그렇다’까지 합하면 수치가 훨씬 더 높아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깊이 생각→구체적 계획이 실제 ‘시도’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하루빨리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이란 지적이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이와 관련, 응답자들이 현재 2.2개 분야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일상의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면 결국엔 우울증·불안감·번아웃에 자살 충동까지 이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경제 문제에 따른 스트레스가 50.9%로 가장 많았고 직업(34.3%)과 신체 건강(26.8%)이 뒤를 이었다.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도 적잖았다. 특히 대인 관계(13.9%)에 이어 가족 부양(13.2%), 자녀 양육(12.0%), 부부 관계(10.0%) 등 가족 내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평소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엔 응답자의 67.1%가 적어도 한 개 이상 경험했다고 답했다. 일·학업 등으로 심신이 지쳐 의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인 ‘번아웃’이 35.8%로 가장 많았고 이어 우울증(33.1%), 갱년기 무기력감(20.1%), 공황장애 등 심각한 불안감(13.1%) 순이었다. 자살 충동은 11.8%였고 가까운 사람의 자살에 따른 트라우마는 5.3%, 실제 자살 시도는 3.1%로 집계돼 자살과 관련한 기존 조사 결과와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수치를 보였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연령별·학력별로 증세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눈여겨볼 포인트다. 실제로 번아웃의 경우 20~30대와 대졸 이상이 유독 많았고 우울증은 20대와 50대, 고졸 이하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갱년기 무기력감과 심각한 불안감도 고졸 이하의 비율이 높게 나왔다. 국가의 정신건강 대책도 일률적인 지원 방식에서 탈피해 이 같은 다양성을 최대한 감안하며 생애주기별로 맞춤형 정책을 모색해야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민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국가가 지원해야 할 사업에 대해서도 20대와 30대는 진료비와 상담비 지원을 중시한 데 비해 60세 이상은 정신건강 예방 교육과 중증 정신질환자 돌봄 지원에 대한 요구가 높아 이 또한 정부가 국민 정신건강 지원 사업을 시행할 때 유념해야 할 점으로 꼽힌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정신건강 상담과 치료를 받은 경우는 3명 중 1명에 불과한 가운데 대부분 의료기관에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실제 이용 기관도 정신건강의학과 병원(69.9%), 일반 병원(22.0%) 순이었다. 하지만 정신질환이 중증으로 악화되지 않게 하려면 병원 치료 못지않게 사전 예방과 초기 대응이 중요한 만큼 공인된 민간 상담 기관·전문가와 상담·치료 희망자를 연결해 주는 시스템 구축에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주문이다.

박신홍·김홍준·신수민 기자

박신홍·김홍준·신수민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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