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리포트] 제주 앞바다 남방상괭이는 왜 익사했을까
낚시바늘 삼켜 굶주리다 그물에 걸려 죽어
폐어구 관리, 보존구역 통해 지속가능 어업 해야
2022년 3월 16일 아침 제주도 서귀포 안덕면 사계해수욕장 모래밭에 어른 키만한 인도태평양(남방)상괭이 암컷 사체 한 구가 발견됐다. 남방상괭이는 돌고래 일종으로 원래는 페르시아만부터 인도, 인도차이나반도를 지나 대만에 이르는 바다에서 산다. 최근 한반도 주변 수온이 오르면서 심심찮게 제주도 인근 바다에서도 발견된다.
박세창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와 김병엽 제주대 해양경찰학과 교수 연구팀은 지난달 27일 국제 학술지 ‘BMC 수의학 연구’에 “남방상괭이를 부검한 결과 낚시어구를 삼킨 데 이어 나중에 그물에 걸려 익사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남방상괭이의 부검 결과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바다 동물의 희생을 막기 위해 폐어구 관리와 해양보존구역 설정을 통해 지속가능한 어업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암컷 뱃속서 낚시어구, 기생충 나와
남방상괭이는 입꼬리가 올라가 ‘웃는 돌고래’로 불린다. 어른이 되면 길이 1.8m, 몸무게는 최대 100㎏까지 자란다. 고래는 흔히 무리를 이루지만, 남방상쾡이는 어미와 새끼, 두세 마리 어른 돌고래들이 작은 가족을 이뤄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방상괭이는 국내에선 거의 발견되지 않았지만, 최근 2년 새 제주 바다에서 3마리가 좌초된 채로 발견되면서 한반도 주변에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온난화로 한반도 주변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남방상괭이들이 북쪽으로 서식 범위를 넓혔다고 본다.
사체는 곧장 섭씨 영하 22도인 제주대 냉동고로 옮겨졌다. 사체 조직을 오래 보존하려면 빨리 얼리고 단시간에 녹여야 한다. 연구진은 그해 7월 제주대 말병원에서 상괭이 사체에 대한 사후컴퓨터단층촬영(PMCT)을 진행했다. 논문 제1 저자이자 부검을 총괄한 이성빈 연구원(수의사)은 “발견 당시 상처도 없었고 부패도 되지 않은 깔끔한 상태였다”며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숨진 곳도 멀지 않은 제주 해역일 것으로 추정됐다”고 말했다.
PMCT는 컴퓨터단층촬영(CT) 기술의 하나로 여러 방향에서 사체에 쏜 X선을 수집해 컴퓨터가 재구성하는 의학 영상 기법이다. 몸에 남은 비정상적인 조직 변화(병변)는 물론 몸속 이물질도 입체(3D) 로 보여준다. 연구진은 CT영상을 보면 암컷 남방상괭이는 숨지기 전 며칠 동안 먹지 못하고 복통으로 고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래는 위가 3개인데 가장 앞에 있고 먹이를 저장하는 전위(前胃)에서 아무런 먹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날카로운 갈고리 형태의 낚시바늘 4개와 단단한 나일론줄, 강철줄이 연결된 제주 갈치 낚시도구가 발견됐다.
연구진은 낚시바늘이 녹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삼킨 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추정했다. 이성빈 연구원은 “남방상괭이 같은 돌고래들이 종종 낚시바늘에 걸린 물고기를 약탈하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며 “숨진 개체도 갈치 낚시바늘에 걸린 물고리를 먹으려다 바늘까지 삼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기생충 감염 때문에 생긴 위궤양의 흔적도 확인됐다. 남방상괭이의 위에서 고래회충 수백 마리가 발견됐다. 이 기생충은 작은 물고기에 기생하는데 먹이사슬을 통해 사람과 고래 같은 최종 포식자로 옮겨간다. 사람은 고래회충에 감염되면 심각한 복통을 겪지만 고래는 정상 숙주라서 극심한 복통을 겪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구진은 상괭이가 큰 고통을 겪었다고 추정했다.
이 연구원은 “고래회충은 고래 위에서 나와도 수십 마리가 보통”이라며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발견된 것으로 보아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남방상괭이가 낚시어구를 삼킨 뒤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하고 면역력까지 떨어지면서 기생충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 것으로 추정했다.
◇사인은 질식...그물 걸려 익사한 듯
남방상괭이 사체는 매우 야윈 상태로 발견됐다. 결정적 사인은 굶주림이 아닌 익사였다. 연구진은 남방상괭이 폐에서 물에 빠져 숨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과 같은 특성을 발견했다. 사람이 바다에 빠지면 폐로 바닷물이 들어가 더는 숨을 쉬지 못하고 질식한다. 해양 포유류도 수면 위로 숨을 쉬러 나오지 못하면 물에 빠져 죽는다.
남방상괭이는 그물에 걸려 익사했다고 추정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자연에서는 해양 포유류가 익사할 일은 거의 없지만 그물에 걸리면 대부분 익사한 상태로 발견된다. 사체 주변에 그물은 없었다. 연구진은 “상쾡이가 다른 어종과 함께 그물에 걸려 죽자 신고 절차를 복잡하게 생각한 어부들이 그냥 바다에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남방상괭이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과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로 지정돼 사체 거래가 금지돼 있다. 어업을 하다가 혼획한 경우에도 신고해야 한다.
남방상괭이는 그물에 걸리지 않았어도 뱃속 어구와 기생충 때문에 오래 살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원도 “뱃속의 어구가 꽤 커서 토해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결국 운동능력이 떨어지면서 낚시바늘에 걸린 손쉬운 먹이를 노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다가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컷 남방상괭이는 죽기 전 어린 새끼를 데리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검에서 유선조직과 소량의 젖이 발견됐다. 뱃속에는 태반 조직도 일부 있었다. 연구진은 죽은 상괭이가 새끼를 낳은 지 며칠 안 됐다고 추정했다. 이 연구원은 “어미의 상태로 보아 새끼가 젖을 먹어야 하는 단계였을 것”이라며 “아마도 어미가 낚시 바늘을 삼켰을 때도, 다시 그물에 잡혔을 때도 새끼가 옆을 지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기후변화에 따라 한반도로 들어온 돌고래가 제주 바다에서 어구에 잇따라 타격을 입고 죽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새로운 유입종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한국 주변 해역에서 생활하는 고래와 바다거북이 인간이 바다에 버린 플라스틱에 피해를 입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지난해 4월 국제 학술지 해양오염학회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2019∼2021년 한국 해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대형 해양동물 12마리를 해부한 결과 미세플라스틱이 1902개 발견됐다. 미세플라스틱은 길이가 5㎜ 미만인 플라스틱 조각을 말한다. 상괭이 7마리와 참고래 1마리, 남방큰돌고래 1마리, 돌고래 1마리, 붉은바다거북 2마리는 모두 소화기관에 미세플라스틱이 있었다.
미세플라스틱은 폐어구가 마모되면서 많이 나온다. 세계동물보호(WAP)에 따르면 해마다 전 세계 낚싯줄 29%, 통발의 8.6%, 어망 5.7%가 바다에 버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원은 “폐어구 수거 대책과 보전구역을 마련하고 낚시 면허제와 같은 제도를 보완해 지속가능한 어업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BMC Veterinary Research(2024), DOI: https://doi.org/10.1186/s12917-024-04090-z
Marine Pollution Bulletin(2023), DOI: https://doi.org/10.1016/j.marpolbul.2023.114734
Marine Pollution Bulletin(2019) DOI : https://doi.org/10.1016/j.marpolbul.2018.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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