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이렇게 넓은데…인류가 '외계인'을 못 만나는 가설 넷
에피소드0『삼체』로 읽는 우주와 인간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우주에 우리만 존재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다 똑같이 끔찍하다. (Two possibilities exist: Either we are alone in the Universe or we are not. Both are equally terrifying.)"
과학소설(SF) 분야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아서 C. 클라크는 외계인의 존재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드넓은 이 우주에서 지구에만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견딜 수 없고,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언젠가 만났을 때 무서운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중국 작가 류츠신의 소설 '삼체'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방영했다. 지구에서 4광년 떨어진 알파 센타우리에 자리 잡은 외계인과의 대립을 그렸다. 이를 계기로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논쟁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사실 외계인에 대한 생각은 고대부터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BC341-270)는 "우주는 무한하며,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생명체가 사는 곳도 수없이 많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음모론자들은 외계인의 초고대 문명이 이집트 피라미드를 남겼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밝혀진 외계인의 존재 증거는 아직 없다.
지름 900억 광년의 우주에 우리만 있다고?
인류가 외계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우리만 존재하기에는 우주가 너무도 넓기 때문이다. 138억년 전 빅뱅으로 시작한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어 실제 크기가 반지름 465억 광년에 달한다. 여기에는 2조개의 은하가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그중 하나인 우리 은하에만 5000억개의 항성이 있고, 생명체가 거주 가능한 지구형 행성만 400억개라는 주장도 나온다. 숫자만 보면 우주에 우리만 있다고 믿기 어렵다. '코스모스'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컨택트'에는 "이 넓은 우주에 생명체가 우리뿐이라면, 얼마나 큰 공간 낭비겠니"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런데 왜 우리는 외계인을 만나지 못하는 걸까. 몇가지 가설이 있다. 첫째는 우리만 모를 뿐이라는 '동물원 가설'이다. 고도로 발전한 외계인들은 어떤 문명이 충분히 발달할 때까지 접촉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는 설이다. 일종의 자연보호구역 같은 개념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인류가 항성간 우주선 같은 기술을 개발하면 외계인이 '짠' 하고 나타날지도 모른다.
광속으로 움직여도 만나기엔 너무 멀다
둘째는 수없이 많은 외계인이 있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 때문에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설이다. 우리 은하의 반지름이 10만 광년이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알파 센타우리도 4광년 거리다. 1광년은 약 10조km(정확히는 9조4600억km)다. 삼체인이 광속의 1%를 내는 우주선으로 센타우리에서 지구까지 오는데 400년 걸린다. 1977년 지구에 대한 정보를 담은 '골든 레코드'를 싣고 지구를 떠난 보이저 1호는 천왕성과 해왕성을 탐사한 뒤 2013년 태양계를 벗어났다. 1만6700년 후 프록시마 센타우리에 도달할 예정이다.
같은해 발사한 보이저 2호는 4만년 뒤 안드로메다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안드로메다인이 보이저2호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대략 8만년 뒤 답장을 받을 수 있다. 아서 C.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SF 분야 '빅3'로 꼽히는 아이작 아시모프는 "우주는 우리 문명만 존재하기는 너무 넓다. 그리고 문명이 서로 만나기에도 너무 넓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지구가 초고대 문명이라니
셋째는 외계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이다. 고등생명체는 적절한 은하계의 적절한 위치에서, 적절한 크기의 항성 주위를, 적절한 거리로 돌고 있는 행성이어야 한다. 행성 자체의 크기도 적절하고, 궤도 역시 적절하게 안정적이어야 한다. 이처럼 수많은 희박한 조건에 적절하게 맞는 행성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하버드대 천체물리학자인 하워드 스미스 교수는 2011년 "우주에서 지구와 같은 행성이 유일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소위 '희박한 지구 가설'이다.
인류가 우주의 초창기 문명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가설도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15년 허블과 케플러 망원경으로 조사한 결과 46억년 전 태양계가 만들어졌을때 거주 가능 행성 가운데 8%만 존재했다고 발표했다. 92%는 아직 생기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생명체에게 에너지를 제공할 만한 항성이 존재 가능한 시기는 약 1조년이다. 이에 비하면 나이가 138억살인 우주는 아직 젖먹이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유일한 지적 존재일 수 있다. 수억년이 지난 언젠가 우주를 가득 채운 다양한 종족들이 찬란한 고대문명을 남긴 지구인의 흔적을 찾아 태양계를 방문할지도 모른다.
다들 숨어있는데 겁없이 나대는 하룻강아지
마지막으로 넷째는 외계인은 존재하지만 다 죽거나 숨었다는 '어둠숲 가설(Dark Forest Hypothesis)'이다. 우주는 사냥꾼과 사냥꾼이 어둠 속에서 숨죽인 채 몸을 숨기고 있는 깊은 숲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 알 수 없는 다른 문명의 존재를 확인하면 먼저 죽여야만 살 수 있다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선제공격을 하는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서로 간의 의사소통이나 합리적인 타협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다. 상대가 호의적이라 해도 나의 생존에는 위협이 될 수 있다. 대항해시대 스페인 사람이 전파한 천연두 때문에 신대륙 인구의 최대 90%가 생명을 잃었다.
둘째, 어마어마한 우주의 크기 때문에 놔뒀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공격 함대를 바로 보내도 수백~수천년이 걸리는 판이다. 어물거리다 상대가 나보다 발전하면 자비를 구걸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300만년 전 직립보행을 시작한 인류가 석기를 다룰 때까지 230만년이 걸렸다. 1만년 전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발전에 가속도가 붙어 산업혁명이 일어난지 200여년 만에 인류는 정보통신과 우주 개발 기술을 손에 넣었다. 시간이 없다. 상대가 나의 존재를 깨닫기 전에 치명적인 한방을 날려야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모든 종족은 꼭꼭 숨어 하늘만 노려보고 있다. 그런데 겨우 100년 전 전기와 무선통신 기술을 발견한 지구인들은 겁도 없이 전 우주에 전파를 뿌리고, 지구의 정보를 담은 탐사선을 날리고 있다. 아직 전파가 100광년밖에 퍼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어느 사냥꾼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채고 함대를 보낼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지구로 오는 중일 수도…. 소설 『삼체』는 이런 세계관을 깔고 시작한다. (에피소드1 '어둠의 숲'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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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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