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과 어떤 접촉도 교섭도 거부" 하루만에 돌변한 김여정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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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없는 日…회담 관심 없다"
김여정은 이날 오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에서 "일본은 역사를 바꾸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며 새로운 조일(북·일) 관계의 첫발을 내디딜 용기가 전혀 없다"며 "조일 수뇌 회담은 우리에게 있어서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책임을 일본에 돌렸다. 김여정은 "(일본은) 저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 무슨 핵·미사일 현안이라는 표현을 꺼내 들며 우리의 정당방위에 속하는 주권행사를 간섭하고 문제시하려 들었다"며 "해결되려야 될 수도 없고 또 해결할 것도 없는 불가 극복의 문제들을 붙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상회담을 하려거든 비핵화 문제와 납북자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는 기존 주장의 반복이다.
전날에 이어 회담의 주도권은 북한에 있다는 프레임도 이어갔다. "'전제조건 없는 일조(일·북)수뇌 회담'을 요청하면서 먼저 문을 두드린 것은 일본 측"이라면서다. 또 "사상 최저 수준의 지지율을 의식하고 있는 일본 수상의 정략적인 타산에 조일관계가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고 훈수도 뒀다.
하루 만에 변심은 이례적
북한이 기존에 밝혔던 입장을 별다른 설명 없이 뒤집는 건 종종 구사하던 협상 패턴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당 부부장급 고위 인사가 단 하루 만에 스스로 밝혔던 입장과 배치되는 메시지를 내는 건 이례적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중요한 건 일본의 정치적 결단"이라더니 하루 만에 "일본은 용기가 없다"며 태도를 바꾼 것도 의아한 대목이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이 “납치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북한의) 주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히긴 했지만, 이는 새로운 게 아니라 시종 일본이 유지해온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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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다 저랬다 수쓰기
북한이 일본과 줄다리기 과정에서 협상력 제고를 위해 '벼랑끝 전술'로 김여정 담화를 활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을 비난하며 기선 제압을 시도했다. 다만 당시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회담 취소 통보를 듣고 곧바로 저자세로 태세를 전환했다.
결국 북한의 이같은 입장 변화는 한·미·일 갈라치기와 남남 분열을 목적으로 한 북·일 정상회담 승부수가 생각만큼 효과적인 전략적 카드가 아니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결국 고립을 감수한 '마이 웨이'를 다시 확인한 셈이다.
또 일본 정부는 납치 문제 재조사와 대북 제재 완화를 맞바꾼 2014년 스톡홀름 합의 이상을 북한에 바라고 있는데, 이에 대해 북한이 호응할 카드가 마땅치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부터 북한은 애초에 자신이 원하는 협상 구도가 아니면 아예 대화에 나오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대외에 꾸준히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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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변덕에 日 '당혹'
북한의 의도가 어떻든 일본 입장에선 이런 북한의 변덕이 달가울 리 없다. 전날 김여정은 "정상회담을 일본이 먼저 제안했다"며 물밑 교섭 과정을 훤히 드러내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고, 이날은 기시다 총리를 향해 "사상 최저의 지지율"이라고 조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기시다 총리는 전날 저녁 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상회담은 상대가 있는 얘기로 지금 정해진 것은 없다"며 절제된 반응만 보였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시다로서는 지지율 반전을 위해 일종의 모험을 한 건데 이런 물밑 접촉을 북한이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외교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곤경에 빠지게 됐다"며 "가뜩이나 일본 내에서도 북한과 접촉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이 많은 가운데 기시다가 움직일 공간은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혼선이라도 있는 듯 북한의 대외 메시지가 하루만에 뒤집어진 건 수뇌부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방증이란 지적도 있다. 김여정은 지난달 15일 담화와 달리 전날에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라는 꼬리표를 뗀 담화를 냈지만, 하루 만에 자신이 뱉은 말을 사실상 뒤집어야 했다. 이런 현상 자체가 북한의 대외 스피커 격인 김여정의 입지를 고려할 때 자연스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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