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아마자라시·킹 누…'J팝 열풍' 더 거세졌다
"쇼츠를 통한 프로모션·OTT 애니 타이업 등 영향"
"일본 문화 전반에 대한 MZ세대의 호감도 한몫"
요아소비 등 세계 문 두드리기 시작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아마자라시(あまざらし), 킹 누(キングヌー) 티케팅은 완전 실패했잖아. 아도(ADO·アド) 티켓 구한 것만 해도 감지덕지!"
지난달 24일 경기 고양 킨텍스 10홀. 'J팝계 새로운 아이콘' 아도(Ado·アド)의 첫 내한공연장에 입장하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섰다. 공연장으로서 최적의 장소는 아니었지만, J팝 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곳곳에서 올해 내한을 앞둔 J팝 가수들의 이름을 연이어 읊으며 설렘을 표했다.
지난해부터 국내 다시 불기 시작한 J팝 열풍이 올해 들어 더 거세지고 있다.
작년엔 J팝으로는 처음으로 멜론 톱100에 진입한 일본 싱어송라이터 이마세 '나이트 댄서' 같은 '이지 리스닝' 계열의 팝이나, 이노우에 다케히코 '더 퍼스트 슬램덩크'·신카이 마코토 '스즈메의 문단속' 등 일본 애니메이션에 삽입된 곡들이 인기를 누리면서 '텐피트(10-FEET)' '래드윔프스' 같은 밴드가 주목 받았다. 이마세를 비롯 요네즈 겐시(요네즈 켄시), 후지이 가제(후지이 카제) 같이 틱톡 등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얻은 뮤지션들도 상당수였다.
올해엔 다양한 장르·스타일의 가수들이 연이어 첫 내한공연을 펼치며 팬덤을 더 다지고 있다.
'얼굴 없는 가수'로 유명한 아도의 내한공연은 그런 측면에서 상징적이었다. '그림자 놀이'로 불러도 될 법한 실루엣만으로 90분가량을 공연했는데, 첫 번째 정규 음반 '광언((狂言)'(2022) 수록곡 위주로 목소리만 갖고 관객들을 압도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원피스 필름레드' OST '신시대'와 '토트 무지카(Tot Musica)', 일본 애니메이션 '스파이 패밀리' 2기 오프닝 '어질어질(クラクラ)' 등 애니메이션 삽입곡도 마니아들을 불러들인 요인 중 하나가 됐다.
2017년 '니코니코 동화'에 보컬로이드 오리지널 곡 '너의 체온' 커버를 투고하며 '우타이테'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내달 일본 여성 솔로 가수로는 처음으로 8만석 규모의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단독 공연하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우타이테란 창작 플랫폼을 중심으로 노래를 커버하는 아마추어 가수를 뜻한다
상반기에만 열 팀 가량 내한
특별한 홍보도 없이 티켓이 단숨에 매진된 2인 밴드 '아마자라시'(10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인기 우타이테 가수인 레오루(れをる)(23일 홍대 앞 무신사 개러지), 지난해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로 주목 받은 혼성 밴드 '히츠지분가쿠(Hitsujibungaku)'(29일 노들섬 라이브하우스), 지난해 7만5000석의 닛산 스타디움 무대에 오른 일본을 대표하는 밴드 '킹 누(King Gnu)'(4월 19~20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4세대 K팝 대표 걸그룹 '아이브'의 '애프터 라이크(After LIKE)' 일본어 버전 작사가로 알려진 일본 싱어송라이터 에일(eill)(4월28일 롤링홀), 라이브가 강점인 일본 록밴드 '스파이에어(SPYAIR)'(5월 25~26일 무신사 개러지), 래드윔프스(5월25일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 싱어송라이터 아카네를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 그룹 '즈토마요(ZUTOMAYO·즛토마요)'(계속 한밤중이면 좋을 텐데)(6월 15~16일 예스24 라이브홀) 등이다.
4월 13~14일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열리는 한일 록 페스티벌 '라우드 브리지 페스티벌 서울(LOUD BRIDGE FESTIVAL SEOUL) 2024'엔 TV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의 오프닝 곡 '더 럼블링(The Rumbling)'으로도 유명한 'SiM'과 TV 애니메이션 '도쿄 리벤져스 천축편'의 엔딩 주제가 '세이 마이 네임(Say My Name)'로 인기를 얻은 '헤이-스미스(HEY-SMITH)가 함께 한다. 여기에 엘르가든의 리더 우부카타 신이치와 일본 펑크 밴드 '스트레이트너(STRAIGHTENER)'의 베이시스트 히나타 히데카즈가 결성한 슈퍼 밴드 '나싱스 카브브 인 스톤(Nothing's Carved In Stone)'이 이 페스티벌을 통해 첫 내한한다.
몇년 전부터 일본 음악 마니아 층이 생겨나기는 시작했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 동화적 멜로디에 국내 팬들도 공감할 수 있는 노랫말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일본 밴드 '세카이노 오와리',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공고한 소비층을 형성한 시티팝의 주인공들인 70~80년대 일본 뮤지션들이 소환되는 흐름이 생겼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일본 뮤지션들이 국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주목 받는 건 이례적이다. 2019년 시작해 얼마 전까지 '노(No) 재팬'(일본 상품 불매) 운동이 불었던 걸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일본 대중문화의 강점인 애니메이션과 다양한 대중음악에 대한 수요가 맞물리면서 다시 국내에 'J-웨이브'(일본 대중문화 열풍)가 부는 것이 아니냐는 예상도 조심스레 나온다.
과거 대중음악 관련 J-웨이브가 생겼던 때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엑스재팬' '안전지대' '글레이' '라르크 앙 시엘' 같은 일본 록밴드들이 인기를 누렸다. '스마프(SMAP)', '아라시' 같은 자니스 사무소 소속 아이돌 그룹들도 인기였다. 아무로 나미에, 하마사키 아유미, 우타다 히카루 같은 일본 여성 솔로 가수에 대한 팬층도 두터웠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K팝이 일본을 비롯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면서 국내에서도 J팝 인기는 시들해졌다.
그러다 1970~1980년대 일본에서 부흥한 시티팝이 알고리즘 등을 타고 2010년대 후반부터 국내에서 조명됐고, 다양한 장르의 일본 음악이 틱톡 같은 숏폼, 재패니메이션이라는 강력한 대중문화 플랫폼을 타고 다시 세력을 뻗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끊임없이 내한공연 러브콜을 받고 있는 '일본의 아이유' 아이묭(あいみょん·Aimyon), 어느새 국내 팬덤을 구축했고 내한에서 인기도 확인한 포크 기반의 아오바 이치코, 음악 좀 듣는다는 마니아들 사이에선 J팝 밴드 '료쿠오쇼쿠샤카이'(緑黄色社会·녹황색사회), '일본의 브루노 마스'로 부상 중인 싱어송라이터 아유무 이마즈(今津渉)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당신이 알아야 할 일본 가수들' 저자인 일본 음악 전문가 황선업 대중음악 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국내 J팝 붐에 대해 "아무래도 숏폼의 영향이 크다. 일본도 몇 년 전부터 서서히 틱톡이나 쇼츠를 통한 프로모션을 진행해 왔고, 국경에 상관없이 취향에 따라 콘텐츠를 소비하는 SNS 세대들에게 있어 일본음악이 색다른 선택지로 다가오지 않았나"고 해석했다. "노출이 잦아지는 만큼, 이를 선택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커지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더불어 황 평론가는 OTT의 활성화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일본은 아티스트의 작품을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로 기용하는 '타이업 시스템'이 굉장히 활성화돼 있는 시장이다. 황 평론가는 "최근 넷플릭스 등을 통해 일본의 영상작품들이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동시 공개되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글로벌 시청자들이 일거에 일본음악 수요층으로 급부상하게 됐다"고 짚었다. 킹 누의 '스페셜즈(SPECIALZ)'('주술회전'의 주제가), 일본의 힙합 듀오 '크리피 너츠(Creepy Nuts)'의 '블링-뱅-뱅-본(Bling-Bang-Bang-Born)'('마슐'의 주제가) 등이 애니메이션과 연관있는 곡들이라는 점을 살펴보면, 영상작품과의 시너지가 OTT라는 플랫폼을 통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임희윤 대중음악 평론가(a.k.a 희미넴)(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도 J팝 열풍에 일본 애니메이션의 높은 인기가 큰 몫을 했다며 "'너의 이름은'부터 '날씨의 아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까지 여러 작품이 한국에서 히트하면서 작품에 삽입된 음악들, 그 음악을 부르거나 만든 음악가들이 큰 조명을 받는다"고 짚었다.
아울러 임 평론가는 듣기 좋은 비(非)-K팝 노래들을 찾고자 하는 흐름 속에 많은 J팝 곡들이 '발견'된 것도 큰 역할을 했다고 봤다. "인디 음악, 록 음악, 발라드 음악, 최근 비비의 '밤양갱'까지 '덕심'이 몰입도를 좌우하는 아이돌 K팝 말고 아무 정보 없이 듣고 있어도 그냥 멜로디가 좋은 노래를 찾는 흐름" 말이다. "백예린의 '스퀘어(Square)(2017)'가 영어 곡 최초로 멜론 종합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이 신호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찰리 푸스의 영어 곡부터 J팝 곡들, 르세라핌의 '퍼펙트 나이트(Perfect Night)'까지, 음악을 듣는 데 있어 언어의 장벽보다 느낌이 더 중요해진 시대가 어느새 돼버렸다"고 분석했다.
또 임 평론가는 국내 J팝 열풍을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찾기도 했다. 일본 문화 전반에 대한 MZ세대의 호감이 음악 쪽에도 바람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 국내 불어닥친 시티팝 리바이벌 흐름이 기반이 됐고 여기에 커피, 위스키, 편의점 음식, 맛집 등 MZ세대들이 좋아하는 식도락의 원조 성지로 일본이 회자된 것도 한몫했다면서 "엔데믹에 엔저까지 겹치면서 일본은 한국의 젊은 세대가 선망하고 선호하는 여행지가 됐다"고 덧붙였다.
세계 시장 문 두드리는 일본
그런데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 오프닝곡인 요아소비의 '아이돌(Idol)'이 J팝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내 글로벌(미국 제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최근 북미를 중심으로 J팝의 점차 북미 시장도 침투하고 있다. 아도는 첫 월드 투어를 돌고 있고 일본 내에서 주로 인기를 자랑하는 킹 누 역시 첫 아시아 투어를 돌면서 활동 반경을 점차 세계 무대로 넓히는 중이다.
지난해 말 야마자키 다카시의 영화 '고지라 마이너스 원',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미국 박스오피스를 휩쓰는 등 J팝 외 다양한 장르에서도 일본 대중문화가 다시 부상 중이다. 특히 넷플릭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푸른 눈의 사무라이', 디즈니 산하 케이블 채널 FX의 시리즈인 퓨전 사극 '쇼군' 등 일본을 소재로 한 서양 산(産) 콘텐츠들이 잇따라 주목 받으면서 자포니즘(Japonism·19~20세기 서양 미술 전반에 나타난 일본 미술의 영향과 일본풍 선호 현상)이 부활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또 내달 열리는 미국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라인업엔 요아소비를 비롯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 걸그룹 '아타라시이 각코노 리더즈'(新しい学校のリーダーズ) 등 일본 팀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 축제엔 에이티즈, 르세라핌 같은 K팝 그룹과 독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 DJ 겸 프로듀서 페기 구도 나온다.
황선업 평론가는 "개인적으로는 OTT를 통한 일본음악 전파 현상에 대해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크리피 너츠의 노래도, 넷플릭스 방영과 맞물려 숏폼 챌린지를 적극 전개하는 등 '타이업'을 지금의 흐름에 맞게 전략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다만 이와 같은, 영상 콘텐츠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일본음악의 인기'를 끌어올리거나 지속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첼라에 출연하는 아티스트의 경우도 "전 세계의 트렌드를 포용한다기 보다는, 로컬적인 성향이 다소 강한 팀들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일반 대중에게까지 그 파급력을 퍼뜨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임희윤 평론가도 "코첼라 출연 자체가 어떤 커다란 징후일지는 아직 좀 더 지켜봐야한다. 왜냐하면 영미권, 특히 미국의 대형 페스티벌들은 서브 스테이지, 서드 스테이지, 포스 스테이지 라인업에 서브컬처 아이콘을 즐겨 세운다"면서 "코첼라는 그런 성향이 가장 강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가진 개방적인 성향, 서브컬처 마니아가 많은 특성도 작용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코첼라가 이미 앞서 일본적 비주얼 음악의 대표주자인 엑스저팬(2018년), 캬리 파뮤파뮤(2022년)를 무대에 올린 점을 꼽았다.
다만 임 평론가는 미국 시장의 개방화는 주목해볼 만하다고 했다. 지난해 '빌보드 뮤직 어워즈'가 K팝과 아프로비츠 부문을 신설하면서 지리적, 인종적 접점을 가진 라틴팝과는 전혀 다른 결의 음악을 자국(미국 음악)의 범주로 사실상 끌어안았다는 것이다. "이는 초연결시대를 맞아 전 세계 음악시장에서 로컬리즘이 깨지는 현상을 방증한다. 한국 내 차트에서 비한국어 곡이 인기를 끄는 현상과 맥이 닿다"고 짚었다.
임 평론가에 따르면, 그간 일본 대중음악은 세계로 뻗어나갈 기회가 적었다. 내수 시장이 막강하기(충분하기) 때문에 지극히 일본적인 스타일로 자국민에 집중해 마케팅하기에도 바빴다. 하지만 쇼트폼과 초연결의 영향으로 '독특하고 좋은 바이브'가 중요해지는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J팝은 K팝처럼 '강제 진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임 평론가는 "일본 대중음악계의 저력은 대단하다. 일본은 거의 모든 장르가 자국 내에 수많은 장르 마니아들을 이끌며 발전한 음악 초강국"이라면서 "음악적으로 볼 때 K팝보다도 더 탄탄한 못자리를 가진 문화 토양이다. 그 저력에서 나오는 수많은 결의 음악가들이 한국의 음악 팬, 세계의 음악 팬을 앞으로 더 많이 만나게 되리라 본다"고 예측했다. "최근 엔저가 이어지고 버블 경제 때를 상회하는 일본 증시 호황이 오면서 '잃어버린 30년'의 늪에서 일본이 빠져나오고 있다는 진단도 일각에서 나온다"면서 "이런 흐름도 일본 음악의 선전에 어떤 유의미한 요소로 작용할지 궁금해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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