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이야기 목련] 1년 기다려 일주일만 피는 9,500만년 된 최초의 꽃

차윤정 산림생태학자 2024. 2. 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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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윤정의 식물 이야기] 정원수로 세계적인 사랑 받는 봄의 스타
목련은 최초로 꽃잎을 만든 식물이다. 초록 잎에서 흰 꽃잎으로 진화는 식물세계의 혁신이었다. 목련이 촉발한 다양한 꽃들의 진화는 연쇄적으로 다양한 곤충의 진화를 이끌었다.

꽃으로 피려면 목련처럼 피어야 한다. 잎도 없이 오로지 희고 큰 꽃으로 일제히 피어올라 계절의 부활을 알리는 생명의 축포, 목련이 아니면 그 어떤 꽃이 할 수 있을까. 목련은 그랬다. 초록 일색이던 지구 숲에, 하얗고 큰 꽃잎을 최초로 피워 올려, 바야흐로 지구 숲에 꽃의 시절이 도래했음을 선포했다. 이후 온갖 색과 모양, 향기의 꽃들이 지구 곳곳에서 생겨나면서, 현화식물顯花植物, 말 그대로 화려한 꽃들의 시대가 열렸다.

목련Magnolia kobus은 목련과 목련속에 속하는 낙엽성 교목으로, 제주도와 남부지역에 제한적으로 자생하며, 크기가 비슷한 총 6장의 꽃잎과 꽃받침을 가지고 있다. 백목련M. denudata은 중국이 원산지이며, 총 9장의 꽃잎 가운데 3장은 꽃받침이며, 꽃잎에 비해 길이가 살짝 짧다.

백목련은 자생종은 아니지만 오래전에 도입되어 우리와 함께 해왔기에 자연스럽게 목련으로 불린다. 전문적인 경우가 아니고는 백목련을 목련이라 말해도 틀렸다고 따지지 않는다.

목련, 백목련과 더불어 꽃잎의 안팎이 모두 자주색인 자목련과 안쪽은 흰색이고 바깥쪽은 자주색인 자주목련, 노란색 꽃잎의 황목련, 여기에 꽃잎이 별빛처럼 펼쳐진 별목련이 정원수로서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다. 여름 산행 길에 새콤달콤한 향기를 내뿜으며 함박웃음으로 피어나는 함박꽃나무(산목련)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목련의 하나로 자연형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백목련은 오랜 시간 우리 주변에 흔히 심어져 자연스럽게 목련으로 불린다. 가지마다 크고 화려한 꽃송이가 달리는 탓에 한 그루만 있어도 목련 성지를 누리는 데 부족함이 없다. 옥처럼 맑고 청초하며 난 향기를 발산한다 하여 옥란화玉蘭花로 불렸다.

목련의 아름다움에 대한 확실한 찬사

목련의 속명 마그놀리아Magnolia는 프랑스 식물학자 찰스 플루미에Charles Plumier가 역시 프랑스 식물학자인 피에르 마놀Pierre Magnol의 이름을 딴 것이다. 현대 생물분류학의 아버지인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영어명 Linnaeus)는 이를 두고 '가장 화려한 잎과 꽃을 가진 나무에게 가장 훌륭한 식물학자의 이름을 따른 것'이라 인정했다. 목련의 아름다움에 대한 가장 확실한 찬사였다.

식물은 바람에 날리는 꽃가루, 딱딱한 씨앗(종자)을 만들어 냄으로써 바다에서 벗어나 육지에 정착할 수 있었다. 씨앗을 만들어내는 식물의 핵심기관은 수술(수꽃)과 암술(암꽃)이다. 목련 이전의 식물들은 꽃잎 없이 수술과 암술로만 이루어진 꽃을 피워 종자를 만들어 냈다. 소철, 은행, 소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자작나무, 모두 종자를 만들어 내는 종자식물로 꽃은 있으나 꽃잎이 없다.

약 9,500만 년 전, 공룡이 한창 거대한 나뭇잎을 뜯어 먹으며 숲을 거닐던 백악기 시절, 초록의 무성한 잎들 사이에 이전에 없던 새로운 잎이 등장했다. 그 새로운 잎은 초록색이 아닌 흰색이었으며, 암술과 수술을 감싸고 향기를 공기 중으로 내뿜었다. 꽃의 등장이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목련과는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해도, 바로 그 최초의 꽃이 목련 꽃이었다. 암술과 수술을 감싸는 꽃의 부속물로 시작된 꽃잎이 꽃잎, 꽃받침, 꽃부리 등으로 세분화되고, 연이어 다양한 꽃들이 출현했다.

아직 벌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금의 딱정벌레쯤으로 여겨지는 고대 곤충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딱정벌레는 꽃잎이 없던 소철 시절부터 단백질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꽃가루를 쫓아다녔다. 목련꽃은 오로지 꽃가루에만 관심이 있는 딱정벌레에 맞추어, 꽃가루를 품고 있는 수술을 먼저 성숙시키고, 암술은 나중에 성숙시켰다.

뿐만 아니라 딱정벌레를 위한 아무런 보상도 마련하지 않은 암술은 암술 표면에 수술을 가장한 돌기들을 모방해 딱정벌레가 오래 머물도록 했다. 딱딱한 턱뼈를 가진 딱정벌레는 꽃가루를 수확할 때 조직의 일부를 갉아먹기 때문에 암술의 바깥조직을 단단하고 두껍게 무장했다.

목련 꽃의 탄생은 그저 잎을 변형해 색다른 잎만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꽃과 곤충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길을 연 것이었다. 목련이 시작한 꽃의 역사, 꽃들이 촉발한 곤충의 진화. 오늘날의 목련은 여전히 그 지위를 유지해 봄이면 꿀벌, 호박벌, 꽃파리, 노린재들이 목련을 알현하기 위해 모여든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원조 목련.

무대 위 스타처럼 나타나는 꽃

목련의 꽃눈은 가지 끝에 하나씩 달린다. 목련의 꽃눈은 여러 겹의 눈껍질(비늘)에 싸여 있다. 겨울의 찬바람에 의해서 껍질이 바싹 마르고 얇아지면 바깥쪽에서부터 떨어져 나가는데, 겨울 동안 서너 번 정도 낡은 껍질이 떨어져 나간다. 마지막 남은 눈 껍질 조각이 벌어질 때쯤이면, 준비를 마친 하얀 목련 꽃잎이 마치 무대 뒤의 스타처럼 눈 껍질 사이로 살짝 드러난다.

특히 마지막까지 꽃잎을 감싸고 있는 껍질은 하얗고 가지런한 솜털이 길게 나 있어, 그 모습이 마치 붓과 같다 하여 '목필木筆'이라 불렸다. 나무의 눈을 보고 문文에 대한 동경을 드러내며 점잖은 체하다가 막상 꽃잎이 펼쳐지고 나면 황홀한 심정이 억누를 수 없이 폭발하면서, 나무에 핀 연꽃 목련木蓮이라 감탄하지 않았을까. 목련의 우리말 이름이 없어도, 전혀 서운하지 않다.

목련의 꽃눈은 꽃이 지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새 가지 끝에 만들어진다. 아직 피지 않은 꽃들이 더 많은 때에 이미 다음해 필 꽃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흔히 나무의 눈을 동아冬芽, 즉 겨울눈이라 하는데, 이는 겨울에 만들어지는 눈이 아니라, 겨울을 나고 피어나는 눈이라는 의미다.

가늘고 많은 수의 꽃잎을 가지는 별목련의 한 품종.

처음 눈이 만들어질 때는 잎눈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크기가 작지만, 겨울이 다가오면서 더욱 커지고 부풀어 올라 한눈에 꽃눈임을 알 수 있다. 5월이면 이미 꽃눈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목련나무는 꽃이 지고 한 달 전에 가지치기를 해야 꽃눈이 잘려나가는 불행을 막을 수 있다.

목련 꽃은 꽃잎의 화려함과 더불어 매혹적인 향기를 품고 있다. 트렌드에 강한 젊은이들에게 마그놀리아 향기는 대단히 인기 있다. 마그놀리아가 목련임은 모를지라도, 향기만으로도 인기를 누리는 데 충분하다.

목련 꽃의 향기 중 사람들에게 황홀함을 일으키는 성분은 메틸 디하이드로자스모네이트methyl dihydrojasmonate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자스민의 향기를 대표하는 물질이다. 꽃향기 성분의 화학적 특성에 따라 곤충을 비롯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다양한데, 목련과 자스민의 이 향기 성분은 식물성 페르몬의 일종으로, 인간의 후각 점막에 분포하는 페르몬 수용체를 활성화시킨다.

과학자들은 목련과 자스민의 향기 성분에 그리스 여신의 이름을 따 헤디오네Hedione라고 이름 붙였다. 헤디오네는 에로스와 프시케의 딸로 쾌락과 감각적 즐거움의 화신이었다. 목련의 향기는 사랑의 묘약이다.

중국 원산의 재배종 자목련.

과거, 식물들이 꽃을 피우도록 조절하는 물질을 개화호르몬, 이름도 예쁜 플로리겐Florigen이라 했다. 플로리겐은 1930년 러시아 과학자가 이름을 붙인 후, 그 본질을 찾기 위해 많은 시도가 이루어졌지만, 정확한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 분자유전학적 기술이 발전하면서, 꽃의 분화 및 개화를 유도하는 다양한 단백질들이 규명되고, 이런 개화를 조절하는 유전자들이 플로리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까지 목련 꽃의 개화와 관련해 82개의 유전자가 확인되었다.

꽃잎을 감싸고 있는 눈껍질은 겨울 추위와 건조로부터 꽃잎을 보호하기 위해 치밀한 털로 무장하고 있다. 목련의 눈껍질은 겨울 동안 세 번 이상 떨어져 나가면서 교대로 꽃잎을 지킨다.

천리포수목원 민병갈 박사의 업적

목련은 마당이나 정원, 공원에 반드시 심어야 하는 조경수다. 나무가 없으면 모를까 하나라도 있다면 목련일 것이다. 덕분에 봄이면 전국 어디서나 온통 목련 핫 플레이스가 연출되니, 이처럼 황홀한 것이 없다. 중국인들은 목련을 옥처럼 맑고 청초하며 난 향기를 발산한다 하여 자신의 출중한 재능과 고결한 가치로 상징화했다. 또한 하얀 꽃들이 정원을 뒤덮고,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눈에 비유해 설산의 풍경으로 형상화했다.

우리나라의 목련을 이야기하면, 천리포수목원 설립자 고 민병갈(미국계 귀화 한국인, 미국 이름 Carl Ferris Miller) 박사를 지나칠 수 없다. 천리포수목원의 목련 사랑은 설립자 개인적 인연의 결과이기는 해도, 천리포수목원에 수집된 700여 종 이상의 목련 품종과 전 세계 목련 연구자료 구축의 업적은 식물자원 관리에 대한 감동과 각성의 울림을 준다.

목련 꽃잎은 봄바람에 찢겨지거나 흩어지는 일이 없다. 가지에 달려 있는 목련 꽃은 마치 철심으로 고정된 듯 강하고 억세다. 꽃잎은 씨앗이 잉태되면 비로소 부드럽게 무너진다. 꽃잎으로서의 소명을 다하고, 스스로 뛰어내리는 단단한 목련 꽃잎.

1년을 기다려 일주일 피었다 지는 목련 꽃을 아쉬워 말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10여 일 이상 피어 있는 꽃은 없다고 했다. 이제 막 시작되는 봄, 이어지는 꽃들의 향연은 목련이 이룬 성취를 잇고 발전시킨 또 다른 목련 꽃들이다.

자주목련. 꽃잎이 자주색이라 자목련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자목련과 달리 꽃잎 안쪽은 흰색이다. 다양한 목련 품종이 도입되기 전, 보랏빛 꽃색으로 사랑을 받으며 백목련과 더불어 가장 흔하게 심어졌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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