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왜 이래?…브레이크 페달 먹통 땐 정신 차리고 ‘EPB’ 조작을
과거 사이드 브레이크 대체 장치
시속 100㎞ 이상 고속에서도 작동
급제동에도 차량 회전 위험 적어
가속·제동 페달 동시에 밟는 실수
브레이크 오버라이드 장치와 함께
안전한 차량 정지로 사고 예방 도움
기능·사용법 아는 운전자 드물고
차량마다 작동법·장착 위치 달라
주행 전 미리 확인, 위급할 때 도움
지난 8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주행시험장. 기아 전기차 ‘EV6’ 운전석에 앉았다.
운전석 왼쪽 아래에 있는 흰색 ‘(ⓟ)’ 버튼에 ‘EPB’라고 쓰인 큰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Electronic Parking Brake)로, 예전의 사이드 브레이크를 대체하는 주차제동장치다. 신차를 자주 시승하긴 하지만 주차를 할 땐 변속기에 있는 빨간 P 버튼만을 이용했다. 한 번도 EPB 버튼을 조작해본 적은 없었다.
시동을 걸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불과 수초 만에 속도가 시속 60㎞에 도달했다.
“지금이에요. EPB를 당기세요.” 조수석에 앉은 강희진 선임연구원의 다급한 목소리에 왼손 검지로 EPB 버튼을 당겼다가 놨다. 가속페달은 계속 밟은 채였다. 차량이 울컥거리며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빠르게 속도를 높인다. 속도가 시속 70㎞까지 올랐다.
“놓지 말고 멈출 때까지 계속 당겨야 해요. 다시!” EPB 버튼을 계속 당기고 있었더니 ‘삐삐삐삐삐’ 시끄러운 경고음과 함께 차량이 3~4초 만에 멈춰 섰다.
가속 상황에서 주 제동장치인 브레이크 페달 기동 없이 주차제동장치인 EPB 조작만으로 차량을 정지시킨 것이다. 강 선임연구원이 시속 100㎞ 이상 고속으로 달리다가 EPB를 당겼을 때도 결과는 같았다. 실험이 반복되자 바퀴 쪽에서 고무 타는 냄새가 났다.
주 제동장치와 EPB는 서로 영향을 주지 않고 별개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주 제동장치가 망가진 경우라도 주차제동장치는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강 연구원이 말했다.
“주행 중에 갑자기 가속하는 등 급발진 의심 현상이 발생하면, 우선 두 발을 모아 브레이크 페달을 힘껏 밟아야 해요. 그래도 속도가 줄지 않으면 EPB를 사용하세요.”
과거 사이드 브레이크는 손으로 ‘끼이익’ 하고 들어올리면 와이어가 당겨지면서 한 번에 브레이크를 잡았다. 그러다 보니 가속 중 사이드 브레이크를 잡아올리는 경우 갑작스러운 제동에 차량이 회전하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다.
반면 EPB는 작동시키면 양쪽 바퀴에 달린 모터가 돌면서 바로 옆에 있는 브레이크를 잡는 방식이다. 브레이크를 한 번에 잡는 게 아니라 잡았다 놨다를 반복하며 ABS처럼 안전하게 정지가 가능하다. 요즘 나오는 차량에는 대부분 EPB가 설치돼 있다.
가속하는 중에 EPB 작동 시 제동거리를 줄이려면 변속기 버튼을 ‘D’에서 ‘중립’으로 바꾼 뒤 EPB 버튼을 누르면 된다. 제동 방향과 반대 방향의 힘이 사라지면서 제동이 훨씬 수월해진단다.
그러나 주행 중 급발진 같은 이상 가속 현상을 마주할 때 변속기를 중립으로 바꿀 정신이 과연 있을까. 중립 전환 없이 EPB 버튼만으로도 차량을 세울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브레이크 페달에도 ‘브레이크 오버라이드’라는 안전장치가 하나 더 있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이 함께 밟힌 경우 차량에 가속 신호는 무시하고 브레이크 신호만 받으라고 명령하는 소프트웨어 기능이다.
이날 자동차안전연구원은 가속페달이 눌려 시속 100㎞에 이른 상태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제동하는 시연도 했다. 예전에는 일부 고급차에만 들어가는 기능이었지만 2010년 전후로 대부분 차량에 보급된 장치다.
브레이크 오버라이드가 급속도로 퍼진 것도 차량이 운전자 의도와 다르게 가속하는 급발진 의심 현상 때문이었다. 2009년 미국에서 베테랑 경찰이 렉서스 차량에 가족을 태우고 주행하다가 의도치 않은 가속으로 사고가 나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당시 운전자는 911 통화에서 “가속페달이 눌린 채 돌아오지 않는다. 차가 멈추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운전석에 사용된 불량 매트에 가속페달이 끼여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당시 일부 차량에만 장착된 브레이크 오버라이드가 해당 차량에도 있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도요타는 물론 현대차·기아 등 대부분 제조사들이 모든 차량에 브레이크 오버라이드를 탑재하기 시작했다.
브레이크 페달·브레이크 오버라이드·EPB 등 3가지 장치가 제동에 관여하는 셈이지만, 실제로 EPB를 사용하는 이는 많지 않다. 작동법을 아는 이도 드물고, 차량마다 EPB의 작동 방식과 장착 위치가 다르다. 예컨대 현대차·기아의 EV6·EV9·아이오닉6·제네시스 GV60 등은 운전석 왼쪽 아래에 잡아당기는 방식의 EPB 버튼이 있다. 반면 같은 회사의 니로와 쏘렌토는 운전석 오른쪽 변속기 조작 버튼이 있는 부분에 EPB 버튼이 자리한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EQE 350+는 운전석 왼쪽 아래에 EPB가 있지만 눌러서 구동하는 방식이다.
박기옥 자동차안전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행 전 EPB가 어디 있는지 꼭 확인하라”며 “평소 주정차 시 EPB 작동을 생활화하면 위급 상황에서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최근 자동차 제조사에는 EPB의 신속한 작동을 위해 장착 위치 및 조작 방식 등을 조정해줄 것과 EPB 기동 시 제동거리를 줄일 것 등을 권고했다.
한편 국제사회도 의도치 않은 차량 가속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 마련에 나서고 있다. 자동차 분야에 적용되는 기술 규제를 전담하는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 WP29에서는 차량 정지 상황에서 발생하는 의도치 않은 가속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어 주행 중 일어나는 의도치 않은 가속에 관해서는 내년 하반기부터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사진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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