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의 글로벌 인사이트] ‘黨論 투표’는 가짜 민주주의다

전성철 IGS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 2023. 12. 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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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낮밤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우리 정치판의 싸움질, 국민 모두가 진저리를 내고 있다. 문제는 선진국 중 국민이 그런 고통을 당하는 나라가 우리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우리가 하는 이 ‘민주주의’가 ‘가짜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우리 헌법 제1조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우리 국민은 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다. 그들은 선거 날 투표 한번 하고는 4년 내내 사실상 ‘구경꾼’이다. 주인 노릇을 정당의 ‘보스’들이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찬반 여부를 결정하고는 의원들에게 시킨다. 그러면 그들은 무조건 복종한다. 거역하다가는 당원권 정지, 공천 배제 등 온갖 불이익을 당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의원들은 거의 모두가 사실상 일종의 ‘졸개’다. 그들은 ‘졸개’ 노릇하고 국민은 ‘구경꾼’ 노릇하고 실권은 정당 보스들이 쥐고 있는 것이 이 나라 정치의 정직한 모습이다. 이런 나라를 ‘국민 주권 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사실상 이 나라는 ‘보스 주권’ 국가이다.

소위 선진국 중 그런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대통령제가 제대로 작동하는 미국의 현실은 어떤가? 무엇보다 그 나라 정당에는 소위 ‘당론’이라는 것이 없다. 그것은 시도 자체만으로도 중대한 범죄 행위이다. 국민 주권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은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헌법 기관’으로 규정하고 있고, 실제로도 완전한 재량권을 가진 ‘독립적 주체’로 활동한다. 그러니 정당의 보스가 당론을 정하고 의원들에게 따르라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 헌법이 의원들의 신분을 ‘헌법 기관’으로 선포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러지 않고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완전한 재량을 가지고 각기 지역민들의 의견을 국정에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 때 비로서 국민 전체가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의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지역구민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도 높아진다. 또 그들은 그것을 신성한 헌법상 의무로 생각한다. 의원들이 모두 그런 식으로 처신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전 국민의 뜻이 자연스럽게 의사당에서 반영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이 바로 국민이 ‘나라의 주인’ 대접을 받는 모습이다.

미국 의원들이 일하는 모습은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 한마디로 대단히 부지런하다. 모든 법안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정말 많이 읽고 분석하고 토론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구민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법 기관인 우리 의원들은 어떤가? 헌법 기관으로서 완전한 재량권을 가진 ‘독립적 주체’로 활동한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들은 공부할 필요가 없다. 시키는 대로 투표하면 되는데 왜 공부하나? 필요하면 가끔 한번씩 고함 치거나 ‘몸싸움’만 하면 되지 않는가? 그들은 자신을 뽑아 준 지역구민들의 의견을 국정에 반영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우리 의원들에게 애국심과 사명감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공부하고 생각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입 닫고 얌전히 있다가 정당 ‘보스’가 시키는 대로 투표만 하면 된다. 그래야 다음 공천도 기대할 수 있으니 더 그렇다.

자연히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평판 관리’다. 즉 보스와 지역구민의 호감을 사는 것이다. 개별 법안의 장단점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은 그들에게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저 부지런히 보스에게 잘 보이고 상갓집, 결혼식 찾아다니는 것이 그들의 최우선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모두들 국회의원 되려고 그렇게 야단일까? 대접을 너무 잘 받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귀빈 대접을 받는 맛이 너무 달콤한 것이다. 그런데도 고민할 일은 거의 없다. 그저 다음 총선 걱정만 하면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아니, 내각제 국가도 정당에 ‘당론’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곳 의원들도 시키는 대로 투표하지 않는가?” 그렇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내각제에서는 집권자가 개인이 아니라 ‘정당’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집권도 정당이 하고 국민의 심판도 정당이 받는 것이다. 즉 국민 다수가 원하면 언제든지 국회는 해산할 수 있고 그러면 총선을 통해 집권당이 다시 정해진다. 정당 자체가 단일체로 심판을 받으니 자연히 그 소속 의원이 모두 하나가 되어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당론’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내각제도 아니면서 소위 ‘당론’이라는 것을 가지고 의원들을 사실상 ‘졸개’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괴물’ 같은 모델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작품이다. ‘조국 근대화’를 향한 열정에 불타 있던 그는 마음이 급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긴 했지만, 그는 궁극적으로 민주화는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의 심한 당파주의, 부패 등으로 오염된 나라의 정치 수준을 그대로 둔 채, 정통 민주주의를 하면서 동시에 경제 발전까지 이룬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지금의 이 괴물형 모델이다.

그는 무엇보다 의원들이 함부로 활동하지 못하도록 묶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각제에만 있는 ‘당론’이라는 것을 끌어들였다. 그에 대해 야당의 보스들도 별 불평이 없었다. 자신들도 의원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괴한 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이 모델은 근대화를 향한 과정에서 독재적 권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대통령에게는 대단히 편리했지만, 괴물 같은 제도였다. 영원한 싸움판을 보장하는 제도, 불쾌하고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어려운 여건에서 근대화라는 과업을 이루어가는 독재자의 고뇌가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 10대 선진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이 아직도 그 ‘기괴한 괴물’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현재 우리의 이 민주주의는 ‘가짜 민주주의’다. 국민을 생각하면 이제 ‘진짜’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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