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 강등부터 고문까지”...‘서울의 봄’ 실존 인물들 말로는 어땠나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입니까?” (영화 '서울의 봄' 속 '전두광' 대사 中)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6일 만에 누적 관객 수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 배역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들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서울의 봄'(김성수 감독)은 1979년 12월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9시간 간의 쿠데타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과 그에 맞서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말처럼 이 영화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전두광'이 주축이 된 신군부 세력은 군사반란에 성공했지만 진압군 측에 선 이들의 결말은 씁쓸했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성' 역(정우성) 모티브)
군사반란 진압에 실패한 이후 장태완은 수도경비사령관 직에서 해임된 것은 물론 서빙고분실에서 약 두달 간 고초를 겪었으며 이등병으로 강등돼 강제 예편(전역)됐다.
풀려난 이후에도 6개월 간 가택 연금에 들어갔다. 아들의 이런 충격적 소식을 알게된 그의 부친은 곡기를 끊고 매일 같이 술만 마시다 1980년 4월 별세했다. 살을 도려내는 듯한 슬픔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잠깐 언급됐던 그의 아들 장성호 군은 가택 연금 생활 중에도 공부를 열심히 해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에 입학했다. 실제로 수석을 차지 할 만큼 영특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1982년 학교를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선 후 행방불명됐다가 한 달만에 할아버지 산소 옆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후 장태완은 한국증권전산회사 사장을 맡았고, 2000년 3월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해 제16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그러다 2010년 7월 26일 79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안타깝게도 2년 뒤 그의 아내 또한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정상호' 역(이성민) 모티브)
대한민국 제22대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는 군사반란 다음날 해임됐고, 서빙고 조사실로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했다. 1993년 9월 국방위원회 국정조사에 참석해 이에 대해 폭로하기도 했다.
그는 "밤새 조사를 받았다. '지금도 뭐 대장인 줄 아냐. 참모총장인 줄 아냐?'고 하더니 옷을 다 벗겼다. 붙들어 맨 채로 고개를 붙잡고 돌려 수건을 뒤집어 씌웠다. 물을 계속 들이부으니 숨이 막혔다"고 밝혔다.
정승화는 1980년 3월 국방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내란방조미수죄로 10년형을 선고받으며 17계급이나 강등 당하는 굴욕적 처분을 받고 불명예 전역한다.
그는 이후 남한산성(국군교도소)에서 복역하다 형집행정지로 출옥했고, 다음해 3월 대통령 취임 기념 특사로 사면복권됐다. 이후 1988년 군적을 회복하고, 약 17년 만에 진행된 1997년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정승화는 1995년 전두환, 노태우 구속재판에서 증인으로 채택돼 증언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던 전두환과 노태우가 사면 복권되자 "반성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풀어준다니 이 나라가 진정으로 법치주의 국가냐"며 분노하기도 했다.
그는 이후 2002년 6월 12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향년 73세로 사망했다. 사후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에 예비역 대장 자격으로 안장됐다.
정병주 특전사령관 ('공수혁' 역(정만식) 모티브)
1979년 12월 13일 3공수여단 10여명이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실로 들어와 정병주 특전사령관 체포를 시도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자신의 예하 부대원이 쏜 총을 왼팔에 맞으며 체포됐다. 이 과정에서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이 평소 절친했던 박종규 중령의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반란 이후 강제 예편 당한 정병주는 12.12 사태에 대한 부당성을 주장해오다 1989년 서울의 한 야산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사인을 극단 선택으로 결론냈다. 그는 사후 김 소령이 묻힌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김오랑 중령('오진호' 역(정해인) 모티브)
육군특수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당시 35세)은 교전 중 사살됐다. 김오랑의 시신은 특전사령부 뒷산에 암매장되었으나, 동료 장교들의 항의로 국립서울현충원 제29묘역에 이장됐다.
아들의 비통한 죽음 소식을 마주한 그의 부모님도 얼마 안 가 사망했으며, 부인인 백영옥은 충격으로 시신경이 마비 돼 실명했다. 백영옥은 이후 관서에서 쫓겨나 복지시설에서 봉사를 해오다 1991년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냈다.
부인 백영옥의 노력으로 김오랑은 1990년 중령으로 추서됐고, 2014년에 이르러서야 보국훈장이 추서됐다. 지난해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사망한 지 43년만에 그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했다.
김 중령의 유족들은 27일 JTBC ‘뉴스룸’과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서 김 중령을 모티브로 한 배역인 ‘오진호’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의 조카 김영진씨는 ‘오진호’ 역을 맡은 정해인에 대해 “얼굴 자체가 삼촌 젊었을 때 하고 닮았다. 베레모를 씌워놓으니 생각이 많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김 중령를 사살한 박 중령이 임종 직전 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박 중령이) ‘죽으면 오랑이에게 가서 잘못했다고 사과하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들었는데 보고 나니 좀 그렇다”고 울먹여 먹먹함을 자아냈다.
최윤정 온라인 뉴스 기자 mary170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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