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두환 ‘한 줌의 재’를 향한 분노와 씁쓸함
누가 있어 맘 편히 이 문제를 논하겠는가. 더구나 안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배짱이 누구에게 있겠는가. 그렇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골은 떠돌고 있다. 사망한 것은 2021년 11월23일이다. 그때 화장된 유골이 연희동 자택에 있다. 안장한 것이 아니다. 안장할 곳을 찾지 못했다. 그 유골이 안장할 장소를 정해 가는 모양이다. 파주 장산리 한 사유지가 안장 장소로 알려진다. 가계약 상태로 유력히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해당 토지에서는 개성 등 북한 땅이 보인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북녘땅이 내려다보이는 전방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통일의 날을 맞고 싶다”고 했다.
이 소식에 박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파주시을)이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박 의원은 파주를 역사적 죄인의 무덤으로 만들지 말라고 페이스북에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 광주를 피로 물들인 사람,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7년 후퇴시킨 사람, 그러면서 죽을 때까지 역사 앞에 광주 앞에 사과 한마디 없었던 사람”이라며 “무슨 자격으로 파주에 오겠다는 거냐”고 했다. 그러면서 “탱크와 장갑차로 권력을 찬탈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파주에서 통일을 맞이하고 싶다는 것은 38선을 넘나드는 철새들이 웃을 일”이라며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라도 절대 파주에 묻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뿐만이 아니다.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전 전 대통령 안장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되는 듯하다. 한 진보 언론은 칼럼을 통해 전 전 대통령의 파주 안장은 ‘세상을 농락하는 것’이라며 저지 운동 참여를 독려했다. 정치권도 곧 가세하지 않을까 싶다. 시기적으로는 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있다. 민주계 정치권이 목소리를 높일 정치적 환경이다. 경험에 의하면 안장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혹 안장을 한다 하더라도 무덤 관리가 제대로 될지 안심할 수 없다. 우리의 골 깊은 문화 중 부관참시가 있다. 망자의 유해에 가해지는 처벌이다.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항의 방문, 파묘 협박 등의 소요가 계속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유족들이 이런 앞날을 예상 못할 리 없다. 다른 처리 방안을 고민해 봄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다만, 유골 항아리를 향한 분노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 전 대통령의 생전 범죄를 두둔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이 사회에서 ‘전두환이 옳았다’는 주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2년째 묻히지 못하는 ‘유골 항아리’를 보는 시선은 개운하지 않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같은 쿠데타, 광주학살의 주범이다. 대통령에 올라 천문학적 뇌물까지 챙기며 호의호식했다. 하지만 사망한 뒤 원하는 곳에 안치됐다. 뭘 그렇게 대단한 사과를 했다고 차별을 해야 하는가 싶다. 세계적으로 이런 예가 있기는 한가 싶기도 하다.
1980년대. 한국 사회에 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친일파에 대한 재평가도 시작됐다. 그때 지역의 이슈는 ‘홍난파’였다. ‘고향의 봄’으로 상징된 국민 작곡가였다. 그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자는 혈기들이 탱천했다. 팔달산에 홍난파 노래비가 대상이었다. ‘홍난파 노래비를 파괴하자’는 시도가 한참 갔다. 전 전 대통령 유골 비극에서 그때 역사를 본다. 망자에 대한 책임 추궁, 망자에 대한 용서와 분노, 망자가 남긴 흔적에 대한 물리적 위해. 옳고 그름을 답하지 않겠다. 다만, 이런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워 보이는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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