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칼럼니스트가 ‘한국의 공매도 금지’ 성토한 까닭
“(11월6일 시행된 공매도 전면 금지는) MSCI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간주하지 않은 조치가 옳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블룸버그〉의 저명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이 글로벌 유력 경제 전문지인 〈닛케이 아시아〉(11월8일)에 한국의 공매도 전면 금지를 성토하는 칼럼을 썼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의 의미
MSCI는, 미국의 거대 종합금융회사 모건 스탠리의 자회사인 ‘모건 스탠리 캐피탈 인터내셔널’을 가리킨다. 이 회사가 지난 1960년대 말 고안한 ‘세계 주가지수’가 바로 MSCI 지수다.
한국 투자자들은 국내 증시에 투자할 때 코스피 지수를 참조한다. 그러나 글로벌 투자기관들은 한 국가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증시에 투자하므로 이에 걸맞는 ‘세계 주가지수’가 필요하다. 이런 ‘세계 주가지수’들 가운데 가장 공신력 높은 것이 MSCI 지수다.
MSCI 지수는 해당 국가의 주식시장 발전 정도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미국, 영국, 일본, 이스라엘, 홍콩 등 23개국의 증시는 ‘MSCI 선진시장 지수’에 편입되어 있다. 한국 증시는 그 밑 단계인 ‘MSCI 신흥시장 지수’ 편입에 머물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글로벌 투자기관들은 자금 운영에서 ‘신흥시장’보다 ‘선진시장’에 훨씬 많은 몫을 배분한다. ‘선진시장’은, 그 나라의 증시가 자유롭고 안전하게 자산을 거래할 수 있는 장소로 인증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2008년부터 ‘신흥시장’에서 ‘선진시장’으로의 승격을 MSCI에 신청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관찰대상국(모건스탠리 측이 한국 증시가 선진시장으로 분류될 만큼 외국인 투자자에게 친화적이고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한지 지켜본다는 의미)’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MSCI가 요구하는 거래의 ‘자유’엔, 공매도의 자유 역시 상당히 높은 비중으로 포함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건재한 이유
MSCI에 대한 한국의 거듭된 ‘구애’가 가장 최근 거부된 것은 지난 6월이다. 페섹은 〈닛케이 아시아〉 칼럼의 서두에서 이 사실을 언급하며 “한국은 다시 갑작스럽게 시행한 (11월6일의) 공매도 금지로, (지난 6월) MSCI 측 승격 거부의 이유를 확인시켰다”라고 비꼬았다.
페섹은 경제위기로 증시붕괴가 우려되는 시기에도 ‘공매도 금지는 안 된다’고 주장할 만큼 시장원리주의자는 아닌 듯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 당시의 공매도 금지엔 어느 정도 타당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11월6일 공매도 금지에 대해서는 “이번엔 어떤 위기가 닥쳤길래?”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더욱이 한국 금융당국은 ‘불법 무차입 공매도(주식을 빌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매도하는 경우)’뿐 아니라 합법적 공매도까지 모두 금지했다(‘공매도 금지 첫날, 코스피와 코스닥 폭등 ... 그러나 정치와 시장제도의 관계는?’ 기사 참조). 이에 대해 페섹은 칼럼에서 “윤석열 정부가 글로벌 시장에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 한국 기업들의 주가가 지속적으로 저평가되는 현상)’가 건재한 이유를 상기시켰다”라고 썼다.
“MSCI는 금융 부문의 ‘미슐랭 스타’”
만약 윤석열 정부가 MSCI 지수 승격에 정책적으로 큰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페섹의 비판 강도는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페섹은 “윤석열 정부팀이 세 전임자(이명박-박근혜-문재인)들이 따내지 못한 MSCI 승격을 확보하기 위해 대대적 노력을 기울여”온 사실을 알고 있다. 그의 칼럼에 따르면, “지난 3월 기획재정부는 한국 상위 기업들에 대한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의 완화, 낡은 (금융) 규제 업데이트, 외환 거래 시간 연장, 공매도 수용”을 통보하는 등 MSCI 승격을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페섹은 MSCI 지수를 “금융 부문에서 ‘미슐랭 스타’ 같은 지위”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승격에 성공하는 경우, “최상급의 국제 자산 운용자들로부터 한국 증시로 자금의 파도를 유인해올 수 있다.” 그의 말대로 “어떤 위기가 닥쳤길래”,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공들인 MSCI 승격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조치를 갑작스럽게 강행한 것일까.
그는 한국 정부가 공매도를 금지한 날, 필리핀은 처음으로 공매도를 허용했다며 “아시아 4위 경제대국(한국)이 동남아 6위 경제(필리핀)에 뒤처진 상황이 개혁가로서 윤석열 대통령의 입지에 흠집을 냈다”라고 평가했다.
“코스피 지수가 공매도 때문에 오르지 못했을까?”
그러면서 페섹은 윤석열 정부의 경제 운영 전반에 낙제 점수를 매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당시 ‘시장의 자유’와 ‘민간 주도 경제’를 강조했다. 그러나 페섹이 보기에 윤 대통령은 “집권 18개월에 이르는 동안, ‘민간 주도 경제’를 육성하겠다는 다짐에선 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 더욱이 “주택 가격 상승과 임금 정체로 확대되고 있는 빈부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호하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이런 정책적 패착들이 “코스피가 2023년에 다른 나라 증시보다 지지부진했던 이유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라고, 페섹은 주장한다. 예컨대 한국의 주가지수는 지난 6개월(공매도가 금지된 11월6일을 기점으로) 동안 거의 오르지 않았지만 일본의 닛케이 지수는 11%나 상승했다는 것이다. 페섹은 “코스피 지수가 지지부진한 것은 공매도 때문”이 아니라 경제 정책 전반의 문제라며,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재벌 총수 감싸기”를 지적한다.
그가 든 대표적 사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윤 대통령 자신이 검사 시절 수사했던)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사면이다. 심지어 페섹은 “윤석열 대통령의 가장 주목할 만한 경제 정책 결정이 두 기업 총수의 사면과 관련된 것이라면, 투자자들은 앞으로 42개월 남은 대통령 임기 동안 한국 금융의 업그레이드에선 별 성과를 보지 못할 것으로 우려할 만하다”라고 썼다.
칼럼의 마지막 문단에서 페섹은 “윤석열 대통령이 진심으로 한국 우량 기업 주식의 저평가 현상을 해결하고 싶다면, 더욱 역동적이고 공정한 경제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라며, ‘공매도 금지’ 조치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경고를 남겼다.
“문제는, 헤지펀드들이 한국 기업들의 주식을 공매도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헤지펀드들이 윤석열 대통령 식의 시장에 배팅(betting)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