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거대한 거래’, 샅바 싸움 시작되다

김창수 2025. 5. 1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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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며 북핵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트럼프식 협상 전술로 보인다. 김 위원장도 협상에 대비한 ‘몸집 키우기’에 나섰다.
4월10일(현지 시각) 백악관 회의에 참석한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PHOTO

아인슈타인은 “4차 세계대전은 막대기와 돌을 들고 싸우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3차 세계대전이 발생한다면 인류는 석기시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경고다. 2023년 트럼프 대통령도 비슷한 말을 했다. “3차 세계대전은 재앙이 될 것이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조차 아주 작은 전투처럼 보이게 만들 것이다.”

그는 3차 세계대전을 막겠다고 했다. 허언일까?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관세전쟁 때문에 실제 전쟁에 대한 그의 인식이 도드라지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세계인들의 관심도 전쟁보다는 통상 문제에 쏠려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이지만 “푸틴이 전쟁을 시작한 것은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실도 개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지구온난화보다 핵무기를 더 심각하게 여기는 듯하다. 그는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지구온난화가 아니라 ‘핵 온난화’다”라고 말했다. 그는 “핵무기를 사용하면 전멸한다. 대단히 위험한 무기다”라며 핵무기가 가져올 파멸적인 상황을 경고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무의미한 죽음과 파괴를 끝낼 때가 지났다”라며 전쟁에 대한 그의 견해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자신이 집권하는 동안 테러나 전쟁이 없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22년 11월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하며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전쟁 없이 통치를 했다. 새로운 전쟁을 벌이지 않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스스로를, 전쟁을 막은 사람이라고 자평한다.

‘피스메이커’ 되겠다는 트럼프

그의 이런 인식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일방적인 ‘구애’의 배경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출마 선언 때부터 당선되어 집무하는 지금까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나를 좋아했다. 나도 김정은 위원장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언론은 싫어한다. 북한은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런 나라와 잘 지낸다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

북한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핵보유 국가(nuclear state)’로 공식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핵보유(nuclear power)’라는 실체를 인정한 것이다. 즉, 트럼프 대통령은 핵보유국인 북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여긴다.

4월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특수작전부대 훈련기지를 방문하고 종합훈련을 지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처음부터 이런 인식을 가진 것은 아니다. 2018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해 ‘최대 압박’을 강조했다. 지난해 그는 선거운동을 하며 “우리는 그들(북한)과 전쟁을 하려 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명석하고 강인한 인물’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이런 발언은 단순히 회고에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 2기 행정부도 김정은 위원장과 협상해 성과를 만들고 싶어 한다.

전쟁을 막고 미국을 안전하게 하겠다는 그의 발언에는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그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평화를 만드는 ‘피스메이커’가 되겠다는 말로 취임사를 마무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적어도 북한과 대화를 통해 결실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을 두고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 개발을 할 수 있게 용인해주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구애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1기 행정부 때 ‘최대 압박’으로 북한 핵 개발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는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어떤 제재도 김정은이 핵 능력 개발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라며 대북 제재만으로는 북핵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인정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북핵을 위협으로 인식하면서도 이를 제거하기 위한 협상을 시도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다소 이중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이중성은 대북정책 담당 인사들에 강온파가 섞여 있다는 데서 비롯한다. 루비오 국무장관처럼 강경한 원칙론자도 있고, 국가안보 부보좌관으로 임명된 알렉스 웡과 같이 1기 행정부에서 대북 협상을 담당했던 이들도 있다.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과 안보 위협을 인식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결심할 경우 다시 한번 북·미 정상 사이에 ‘빅딜’을 보좌할 인물들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처럼 대통령과 불화를 일으킬 인사는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이 가장 큰 차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두고 대북 유화책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그는 2022년 대통령 재선에 출마할 때부터 지금까지 북한과 잘 지냈다는 말만 해왔을 뿐이다. 그의 발언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북한을 다루기 위해, 우선 판을 흔들려는 협상 전술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목표는 부동산 사업가 시절의 저서 〈거래의 기술〉(1987)에 나오듯, ‘합리적인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협상 방식은 극단적이며, 무모하지만, 때론 탄력적이다. 상대가 원하는 말이든 상대가 싫어하는 말이든 거침없이 한다(극단적이다). 상대와 합의했거나 국제관례 또는 자신이 한 발언이더라도 필요에 따라 과감히 뒤집어버린다(무모하다). 이런 파격적이고 무모한 언행 이후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다시 시작한다(탄력적이다). 최근 그가 주도하는 관세전쟁은 이런 방식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미국 워싱턴 DC 소재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의 매슈 크로닉 선임 국장은 최근 외교안보 전문 매체인 〈포린폴리시〉에 ‘결과를 만드는 트럼프 수사(레토릭)’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민주당과 주류 언론, 그리고 미국의 동맹국들이 집단적 공황 발작을 일으켰다며 “이들은 이제 숨을 고르고 수사와 상징주의에 대한 과민반응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결과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경고대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고 결과에 집중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북한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 대화를 낙관하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아직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에 대해 조선중앙통신은 두 줄로 짧게 보도했을 뿐이다.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한두 번 정도만 언급하고 그쳤다. 그를 향해 특유의 북한식 말 폭탄을 터뜨리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트럼프 1기 출범 당시에 비하면 비난 강도가 다소 낮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당시 “기만성과 교활성을 까밝힌다”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당시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협상을 대비한 ‘몸집 키우기’가 북한의 의도로 보인다. 북한은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충격에서 벗어나 미국과 협상에 나서기 위해 2026년에 열릴 9차 당대회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군사와 경제 두 가지 측면에서 대미 협상 카드를 준비하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의식하는 듯 김정은 위원장과 친하다는 말만 할 뿐 어떠한 협상 카드도 내비치고 있지 않다. 2018년 북·미 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을 처음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해안선을 따라 멋진 콘도가 들어서면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쟁’보다 ‘비즈니스’를 더 매력적으로 여긴다는 구체적인 신호를 이미 보낸 것이다.

2026년 1월 열릴 것으로 보이는 북한 노동당 9차 당대회 이후 ‘핵무기’와 ‘비즈니스’라는 두 개 아이템을 조합한 ‘거대한 거래’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샅바 싸움을 시작한 것일 수 있다. 양국 정보기관들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벌이고 있을 것이다.

대북정책 주도권 상실한 윤석열 정부

통일 노선을 포기하고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개의 국가’를 선포한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 협상에서 결실을 보기 전까지는 남한을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과 채널이 없으면 한반도에서 벌어질 거대한 게임에서 우리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한·미 동맹을 굳건하게 유지해도 미국에 대한 한국의 발언권은 약해질 것이다.

2024년 10월15일 북한은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했다. ⓒ합참 제공 영상 갈무리

지난해 10월 북한이 남북 연결 철도를 폭파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한국은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로부터 단절된 상태다”라고 말했다. 단절이란 한국의 대북 카드 상실을 뜻한다. 이러한 단절의 1차 원인은 윤석열 정부의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에서 비롯한다. 그 결과가 앞으로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 정부의 소외를 초래할 수 있다.

이제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가 초래한 결과를 복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신뢰 구축부터 다시 해야 한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반도 미래 비전에 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한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6·3 대통령 선거 이후 들어설 새 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설계도부터 다시 만들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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