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흉상 1cm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싸울 것” 육사로 행진한 시민들
“정권마다 역사 뒤집혀서는 안돼”
24일 오후 3시 서울 노원구 중계근린공원은 ‘홍범도 흉상철거 철회 촉구 걷기대회’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저마다 ‘흉상철거, 민족사에 치욕이다’ ‘홍범도 장군 흉상철거 백지화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태극기를 등에 두르거나 각시탈 가면을 쓴 이들도 있었다.
전동휠체어를 탄 노인들과 자녀를 데리고 온 부부도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 자녀 2명과 함께 나온 박모씨(35)는 “아이들이 역사에 관심을 가질 무렵 걷기대회를 한다고 해 참여하게 됐다”며 “아이들도 재밌어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행사가 끝난 뒤에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같이 나눠볼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꾸 역사를 이념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며 “어떤 정권이 들어섰다고 해서 역사가 재해석되고 뒤집히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방침을 공론화한 후 지난 10일부터 대전, 광주, 서울 등에서 흉상철거 철회 촉구 걷기대회가 이어졌다. 이날은 400여명의 시민들이 육사 앞까지 4.5km를 행진했다. 이들은 행진하며 ‘1cm도 옮길 수 없다. 역사왜곡 흉상철거 철회하라’ ‘친일파를 청산하라’고 외쳤다.
주민 2명과 함께 온 김영식씨(65)는 “이전까지 홍범도 장군을 독립군으로 활약하신 분으로만 알고 있었다”며 “그런데 육군사관학교가 왜 갑자기 흉상 이전을 발표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됐고, 홍범도 장군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시민들과도 의식을 공유하고 싶어 나왔다”고 했다.
육사 정문 300m 앞 부근에선 보수단체가 맞불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행진대열을 향해 “홍범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 XX들이다. 다 같이 북한으로 보내버려야 한다”고 했다. 경찰의 통제로 두 단체 간 충돌은 없었다.
참가자들은 오후 4시40분쯤 육사 앞에 도착해 규탄대회를 열었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제 육사의 현충관 앞에 있는 다섯 분의 흉상은 국군의 뿌리에 독립전쟁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들이다. 그런데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해 해방될 때까지 일제와 싸운 독립군을 이산가족으로 만들겠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했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과거 박정희 정권도 홍범도 장군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서훈 수여를 결정했다. 보수 정권도 인정해 온 홍범도 장군의 일생을 ‘공산주의자’로 낙인찍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채예진 대한고려인협회 부회장은 “고려인들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독립운동을 위해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 많다. 한반도에 다시 돌아오고 싶었으나 돌아오지 못한 게 고려인 잘못이냐”면서 “홍범도 장군이 2년 전 어렵게 조국에 들어와서 이런 일을 겪게 되니 마음이 아프다. 요즘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 사이에서는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장군을 보내드리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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