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걸렸어" 13억 주고 풀려나…알고보니 골프모임 사기극

장서윤 2023. 9. 2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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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성매매 범죄에 연루돼 체포되는 것처럼 연출해 13억원을 갈취한 일당이 지난 7월 3일 피해자 A씨를 데리고 저녁에 방문했던 현지 로컬 술집. 구글맵 캡처

A씨는 6월 30일 골프 여행으로 캄보디아 시엠립에 방문했다. 10여 년 전부터 골프 연습장에서 알게 된 골프 모임 회장 등 회원 5명과 함께였다. 여행 닷새째인 7월 4일에도 A씨는 골프모임 회원들과 오전 라운딩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주유를 위해 들른 가스 충전소에서 갑자기 6명의 경찰이 들이닥쳤다. 캄보디아 경찰 제복을 입은 이가 여권 사본을 내밀더니 “현행범으로 긴급 체포한다”며 차에 태워 경찰서로 향했다.

한 회원이 “성매매 때문 아니냐”고 물었다. 전날 A씨는 회원들과 함께 로컬 술집에 갔다가 옆 테이블 여성들과 합석을 했다. 회장 박모(62)씨가 현지 여성에게 100달러를 쥐여주며 A씨를 호텔로 보냈던 게 화근이었다. A씨는 “(박씨가) 억지로 들여보내 호텔에 같이 들어가긴 했지만 곧 그 여자를 내보냈다”며 성매매 혐의를 부인했다.

캄보디아 언어를 전혀 못하는 A씨는 현지에 능통한 회장 박씨와 동행한 통역밖에 믿을 구석이 없었다. 박씨는 “성매매면 현지에서 5~10년 동안 징역살이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를 도와주러 온 통역가 역시 “해결이 안 될 것 같다”고 말할 뿐이었다.

경찰서에 온지 5시간쯤 지나자 통역가가 “합의가 될 것 같다. 100만불(한화 약 13억원)이 있느냐”고 물었다. 캄보디아는 경찰에게 합의금을 주면 면책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A씨는 믿기 어려웠지만, 함께 체포된 회원 권씨(57)가 100만불을 주고 풀려났다는 소식에 결국 돈을 주기로 결심했다. 회원 김모(65)씨는 “돈을 바로 주면 걸리니까 한국에 있는 내 동생 계좌로 보내라. 환치기해서 캄보디아 경찰한테 보내줄 것이다”라고 거들었다. A씨는 결국 세 번에 나눠서 김씨 동생에게 13억원을 송금하고 경찰서에서 풀려났다.


4월부터 범행 작전…현지 경찰 섭외도

모든 일은 사실 골프모임 회장 박씨의 소행이었다. 박씨는 지난 4월부터 돈이 많아 보이는 사업가 A씨를 상대로 ‘13억원 갈취 작전’을 치밀하게 계획했다. 자금 세탁 관리, 경비 조달, 바람잡이 등 5명을 포섭하고, 피해자 A씨에겐 “여름에 공 치러 해외 한 번 가자”며 유인했다. 성매매 범행에 연루된 것도 경찰서로 연행해 합의금을 뜯은 것도 다 계획된 일이었다. 캄보디아 현지 브로커 주모(51)씨를 통해 현지 경찰관까지 미리 섭외했다. 주씨는 캄보디아에서 마사지샵 등을 운영 중인 한국인으로, 이번 조력의 대가로 박씨로부터 8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국제범죄수사1계(계장 장보은 경정)는 경찰 단속을 가장해 수사 무마 명목으로 13억원을 갈취한 총책 박씨 등 7명을 검거해 4명을 구속했다고 20일 밝혔다. 박씨와 함께 골프 여행을 떠나 A씨의 돈을 갈취한 4명에게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공갈 혐의를, 이후 귀국해 이들의 범죄수익금을 세탁한 김모(50)씨 등 3명에게는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브로커 주씨에 대해서는 여권을 무효화하고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다.

은행에서 범죄수익금 중 일부를 현금으로 송금하는 피의자.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제공

박씨를 총책으로 한 공갈 협박단은 귀국 이후 은행 43곳을 돌아다니며 13억원을 쪼개 전부 인출해 나눠 가졌다. A씨가 의심하자 “(A씨가) 너무 많은 피해를 봤다. 같이 부담하자”며 5억원을 돌려주고 신고를 막으려 하기도 했다. A씨는 5억원을 돌려받았지만, 남은 돈은 박씨 일당이 도박, 유흥비 등으로 모두 써버려 돌려받지 못했다.

경찰은 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간 뒤, 돈을 뜯어내는 전형적 ‘셋업(set up) 범죄’로 봤다. 경찰 관계자는 “셋업 범죄는 피해자 본인도 범죄에 연루됐다고 생각해 피해 신고를 꺼린다는 점을 노리는 유형”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이전에도 마약 등으로 함정을 판 뒤 피해자를 범행에 빠뜨리는 등 유사 범죄를 저질러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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