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이재명 숙주 삼아 부활 노리는 한총련
핵심 당사자들 다시 정치권에… 李는 공천 보장 특보로 임명
1997년 5월은 한총련 주사파 운동이 몰락하는 분기점이었다. 열흘 남짓한 기간에 한총련 폭력에 민간인 두 명이 죽었다. 학생운동이 공권력 같은 외부 충격이 아닌 이념과 폭력이라는 요인으로 내파(內破·implosion)를 겪었다. 5월 26일, 전남대에서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 때려 숨지게 한 ‘이종권 사건’이 벌어졌다. 사법 처리된 18명 중에는 한총련 산하 남총련(광주·전남 지역 총학생회연합) 의장이었던 정의찬도 있었다. 그는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사면 복권됐다. 지금은 이재명 대표 측근이다. 당시 사건 관련자 중에는 복역 이후 강도, 성폭력, 살인까지 저지른 사람도 있다.
‘이종권 사건’이 있었지만 한총련은 5기 출범식을 예정대로 준비했다. 수만 명이 횃불을 들고 20대 젊은이를 의장으로, 지도자로 떠받드는 기괴한 행사였다. 지금 북한을 보면 유사한 구석이 많다. 출범식을 준비하던 6월 3일, 한양대에서 선반 기능공이 한총련 간부들에게 몽둥이로 맞고 물고문을 받다 죽었다. ‘이석 사건’으로 모두 22명이 입건됐다. 무고한 시민 2명이 연속해 죽었지만, 한총련은 얼마 뒤 강위원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한총련 5기 의장으로 ‘옹립’했다. 강위원은 사건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지만 국보법 위반으로 한 달 뒤 구속됐다. 1년 뒤 대법원은 한총련을 이적 단체로 규정하고 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 역시 김대중 정부에서 사면됐다.
피해자 유족이 있는 사건 당사자라면 정치 영역에 들어오면 안 된다. 설령 그들의 선배인 전대협 정치인들이 30대에 배지를 달고 20년 이상 군림하는 모습을 봤더라도 참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망각의 힘을 믿었고, 기어코 정치 무대에 올라왔다. 정의찬은 2021년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경기도 수원월드컵관리재단 사무총장에 임명했지만, 과거 이력이 불거지며 사퇴했다. 앞서 강위원은 2018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다 2003년의 성희롱 사건이 불거져 출마를 포기했다. 그는 “피해자의 상처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1년 뒤 경기도 농수산진흥위원장이 됐다. 이재명이라는 숙주를 잡은 것 같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정의찬, 강위원에게 특보 임명장까지 줬다. 특보 이력은 내년 총선에서 ‘이재명 측근’임을 증명할 마패다. 이들은 공천이 곧 당선인 광주·전남의 지역구에서 총선 준비에 들어갔다.
이대로면 한총련 주역들이 다음 국회에 들어오게 된다. 이념과 폭력으로 얼룩진 시대를 주도한 사람들을 다시 보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강위원은 이 대표 단식이 시작되자 “독립군의 심정으로 국민 항쟁에 나선다” “무능 폭력 정권 윤석열은 퇴진하라”고 주장했다. 한총련 의장 때 김영삼 정권 퇴진과 민중 항쟁을 외치던 그 모습 그대로다. 정의찬의 이력이 문제가 되자 그의 모교 ‘민주동문회’ 조직은 “시대적 비극을 정략적 공격에 이용하지 말라”는 성명을 냈다. 민간인 치사 사건을 “공안 탄압과 민주화운동의 대결이 초래한 시대적 아픔”이라고 했다. 학생들 폭력이 있었지만 국가 폭력이 그 원인이라는 취지의 유시민 항소 이유서의 궤변을 40년 뒤 또 듣게 될 줄 몰랐다.
한총련이 이 대표를 숙주 삼아 부활을 노리고 있다. 한총련이라는 오명에 대한 역사 물타기도 시도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왜 한총련 핵심 인사들을 성남시와 경기도 시절부터 중용했고 지금도 그 뒷배가 되고 있는지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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