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호 타던 3000만명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하승우 2023. 9. 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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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_공공철도가 기후정의다④] 공공교통의 강화, 지방소멸과 기후위기 동시 해결법

철도노조와 923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는 철도파업과 기후정의행진을 앞두고, '공공철도가 기후정의다!'라는 기획연재(6회)를 시작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공공철도가 왜 필요한지, 철도 민영화가 왜 문제인지에 대해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한 철도노조의 파업, 그리고 9월 23일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진행될 기후정의행진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말>

[하승우]

가족과 함께 수도권을 떠나 충청북도 옥천군으로 이사를 온 뒤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서울을 오가는 무궁화호가 밤늦게까지 있었고 동서울을 오가는 시외버스도 다녔다. 충북의 도청소재지인 청주를 오가는 시외버스나 가까운 대도시권인 대전을 오가는 시외버스도 자주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무궁화호의 운행횟수와 차량수 모두 줄어들었고, 시외버스도 턱없이 줄어들었다. 신념을 품고 지방으로 내려온 사람도 버티기 어려울 정도다.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2013년에 무궁화호를 이용한 승객수는 총 6694만 명이고 고속철도를 이용한 승객수는 5409만 명, 전체 수송인원은 1억3203만 명이다. 2021년 통계를 보면 고속철도를 이용한 승객수는 KTX와 SRT를 합쳐서 7008만 명, 무궁화호 승객수는 3546만 명, 전체 수송인원은 1억1309만 명이다. 철도를 이용하던 승객수가 8년 동안 무려 1894만 명이나 줄었다. 그리고 고속철도 수송인원은 1599만명 늘어났지만 무궁화호 수송인원은 절반 정도인 3148만 명이 줄었다.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대전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 박누리
   
고속철도 흑자, 무궁화 적자라서?

한국철도공사가 고속철도 비중을 늘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존의 무궁화호 노선은 운행할수록 적자가 늘어나고, 고속철도는 흑자노선인데 그마저도 SRT도 분리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속철도만 늘리고 무궁화호를 줄이면 철도 이용객이 늘어날까? 무궁화호 노선이 미세혈관처럼 다양한 지역을 다닌다면, 고속철도는 대도시에만 정차한다. 당장 내가 사는 옥천만 해도 고속철도를 이용하려면 대전으로 나가야 하고, 환승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고속철도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철도는 불편한 교통수단이다. 전체 수송인원이 대폭 줄어든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무궁화호의 감소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낡은 무궁화호가 계속 폐차되고 있어 그 수는 더욱더 줄어들 전망이다. 노선이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차량도 줄어들어 이제 경부선 무궁화조차도 5~7량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금의 수순이라면 2027년엔 무궁화호가 완전히 사라지고, ITX-새마을과 신형 EMU-150 열차가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지금도 무궁화를 타고 있는 시민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무궁화호가 사라지면 기차가 서던 역은 어떻게 될까? 구도심이 돼 쇠락하던 역전은 새로운 개발기회를 맞을 수도 있겠지만 이동이 불편한 지역에 살려는 사람은 없다. 2020년 옥천군 사회조사보고서를 보면 이사를 하는 이유에서 '직장 및 사업상 이유로'(28.6%) 다음이 '교통 및 인근시설이 편리해서'(22.5%)다. 교통문제가 '자녀의 교육 때문에'(22.3%)나 '경제적인 이유로'(9.5%)보다 앞선다. 불편한 교통이 이주를 결심하게 만들고, 지역의 인구유출을 가속화시킨다.
 
 도색된 페인트가 떨어진 채로 운행되고 있는 무궁화호 열차. 서민들의 발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박누리
   
인구수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자동차

그도 아니면 자동차를 구입해야 한다. 시외버스가 줄어든 상황에서 철도까지 줄어들면 시민들은 자동차를 구입할 수밖에 없다. 2013년 자동차 등록대수는 1940만 대에서 2021년 2491만 대로 늘어났다. 철도이용객은 1894만 명이 줄고 자동차는 551만 대가 늘어났다. 내가 사는 충청북도의 경우도 8년 동안 약 24만 대가 늘어났다. 인구가 2만2000명 정도 늘어나는 동안 자동차는 24만 대가 늘어났다. 인구증가속도보다 자동차 증가 속도가 10배 이상 빠른 셈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면서 자가용을 늘리는 것이 올바를까?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자동차 생산과 도로 수송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14.6%에 달한다. 자동차를 줄이고 공공교통을 강화시켜 수송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주요한 방법이다.

그리고 농촌의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가용을 이용할 수 없는 약자들이다. 수도권에도 교통약자가 있겠지만 비수도권 지역의 교통약자가 느끼는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하고, 이번 여름 폭염으로 열차운행이 전면 중단돼 일을 전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비수도권에 사는 사람에게 기후위기와 지방소멸은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다. 위기가 오고 소멸이 온다고 겁을 주는 것보다 살아갈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고, 기후위기에 더 많이 노출되는 약자들의 이동권이 보장하는 것이 정부와 공기업의 몫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재공영화되면 무궁화호는? 

무궁화호를 타던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동안 무궁화호가 줄어들면 안 되고 교통의 공공성이 중요하다고 계속 주장해 왔지만, 지금도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운행중단되는 것이 무궁화호다. 그마저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SRT가 재공영화된다면 무궁화호는 계속 운행될 수 있을까? 앞으로도 철도망은 계속 확장되겠지만 무궁화호는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매진되고 가장 먼저 중단되는 무궁화호, 이보다 현실의 모순을 더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을까? 해답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미 답은 나와 있다. 문제는 답하지 않는 정치이다. 노동자와 시민들의 외침은 정치인들의 답을 끌어낼 수 있을까? 나와 가족은 계속 이곳에 살 수 있을까? 당위가 아니라 실존의 문제다.
 
 923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는 지역소멸을 막고 온실가스도 감축하는 공공철도 강화를 요구하며, 이를 위해서 파업투쟁을 준비하는 철도노조를 지지한다.
ⓒ 923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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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하승우씨는 이후연구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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