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가 시작한 기업메시징… KT·LG ‘공짜망’으로 장악
공정위 처분에도 과징금 내고 사업 계속
”무려 10년이나 걸려서 통신사가 불공정행위를 했다는 최종 판결을 받았지만, 체감하는 변화는 하나도 없네요. 허탈합니다.”
한 중소 기업메시징 서비스 회사 관계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기업메시징은 신용카드 승인, 쇼핑 주문·배송 안내 등 기업이 고객에게 대량으로 문자를 전송하는 것을 말한다. 1997년 벤처회사 인포뱅크가 통신사에 제안해 본격적으로 서비스가 시작됐고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수많은 중소 사업자가 뛰어들었으나 현재는 KT와 LG유플러스가 전체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 ‘통신 공룡’ 저가 카드에 쓰러진 中企
기업메시징 서비스 업체(부가통신사업자)는 이동통신망을 보유한 통신사에 건당 9~20원(문자 길이·건수에 따라 차이)을 내고 문자를 발송한다. 망을 가진 KT와 LG유플러스는 자사 망을 공짜로 쓸 수 있어 가격을 낮춰 경쟁 업체를 내쫓을 수 있었다. SK텔레콤은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가 관련 사업을 하는데, 망 사용료를 내고 있고 시장 점유율이 2% 정도로 미미하다.
두 통신사가 기업메시징 시장에서 덩치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은 KT-KTF 합병(2009년), 데이콤·파워콤-LG텔레콤 합병(2010년)이 계기가 됐다. 이동통신사를 내재화해 자사를 제외한 타 이동통신사업자에만 망 이용료를 부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비스를 싼값에 팔 길이 열리면서 통합 KT, LG유플러스가 출범한 해인 2010년 두 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47%로 치솟았다. 현재는 점유율 70%로 중소 사업자들과의 격차를 더 벌렸다.
그 사이 중소기업들은 잇따라 쓰러졌다. 인포뱅크, 다우기술, 스탠다드네트웍스 등 상위 회사들은 기업메시징만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없어 재판매 사업을 병행했다. 케이스카이비, 아이엠오, 쏜다넷, 필링크는 사업을 접고 아예 재판매 사업자로 전환했다. 모모웹, 카이낙스 등은 폐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매 사업은 기업메시징 서비스를 구매해 메시지 발송 물량이 적은 소형 기업 고객에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묶어서 구매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사서 저렴하게 팔 수 있는 구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재판매사를 ‘통신사의 하부영업조직·대리점’ 역할로 규정했다. 재판매사로의 사업 전환을 유도해 경쟁 사업자를 사실상 퇴출시키고 이들을 하부 영업조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 공정위 과징금 부과에도 변하는 건 없어
기업메시징 중소기업은 2013년 공정거래위원회에 ‘통신사의 기업메시징 서비스 저가 판매’를 불공정행위로 신고했다. 통신사가 망 제공을 과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필수 원재료로 하는 기업메시징 서비스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출발선이 다른 경기’라는 이유에서다.
공정위는 통신사의 행위를 불공정하다고 보고 LG유플러스에 약 44억원, KT에 약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두 통신사는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를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진행했으나 최근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10년 간의 분쟁은 중소 기업메시징 사업자의 손을 들어준 공정위의 승소로 일단락됐으나 통신사가 관련 사업을 지속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을 전망이다. 통신사는 과징금을 내고 시정명령에 따라 향후 5년간 관련 회계를 분리해 연 2회 이를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자사 망 이용료도 내라는 것이다.
중소기업 업계는 이미 시장의 무게 추가 통신사로 기운 상황에서 중소 사업자들이 다시 이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올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통신 2사의 점유율이 굳어진 데다 중견·중소기업은 재판매사로 재편되는 분위기”라며 “공공재인 전파를 할당받아 사업을 하는 통신사는 수직 계열화에만 골몰할 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지키고, 공정위와 주무 부처는 공정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메시징 시장은 금융정보, 개인정보, 마케팅 문자 등을 중심으로 점점 커지고 있다. 2011년 3000억원대였던 시장 규모는 2023년 1조2000억원으로 4배 성장했다. 업계는 2025년에 시장 규모가 1조5000억원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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