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많이 때리면 이기는 권투가 아니다

이균성 논설위원 2023. 5. 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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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의 溫技] 미국 바이든 정부의 오판

(지디넷코리아=이균성 논설위원)대통령 방미 성과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쪽을 편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데, 최선을 다했으리라고, 믿고는 싶다. 그 상황이라면 누구든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일부러 망치고 싶은 사람은 드물겠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미국 대통령의 경제관이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럽다는 사실이다. 그는 진짜로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처럼 보인다.

미국 대통령은 권투 선수 같다. 권투는 더 많이 때리면 이기는 게임이다. 유효타(有效打)에 점수를 매긴 뒤 점수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점수를 매길 필요도 없이 상대를 한 방에 쓰러뜨려도 물론 이긴다. 권투는 그 점에서 개인 사이의 결투이지만 확대하면 전투나 전쟁과 흡사하다. 이것들의 특징은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다. 상대를 정신과 감정이 있는 유기체가 아니라 무기체로 보는 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AFP/뉴스1)

무기체는 충격에 약하다. 충격은 곧 크고 작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가 가해질수록 무기체는 마모되거나 균열된다.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무기체는 결국 깨지게 마련이다. 유기체는 그 점에서 무기체와는 다르다. 스트레스가 오히려 유기체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 임계치를 넘어가면 유기체 또한 견디기 쉽지 않지만 스트레스 없이 발전하는 유기체도 없다. 진화는 결국 스트레스의 산물이다.

경제는 얼핏 보기에 무기체처럼 여겨진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거기에 생명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유기체와 더 닮았다. 경제는 유리나 사기그릇이 아니다. 그보다 인간들의 정신과 감정이 뭉쳐진 총체라고 보는 게 더 옳다. 경제는 그러므로 통제하거나 깨뜨려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삶들의 한없는 연결이라고 봐야한다. 그 연결은 각각의 삶들이 스스로 알아서 체결한다.

‘경제전쟁’이라는 용어는 이 점에서 어쩌면 형용모순이다. 전쟁은 상대를 깨뜨려야 이긴다. 상대를 유리나 사기그릇으로 보는 행위다. 그런데 경제에서 상대는 유리나 사기그릇이 아니다. 인본주의 관점에서 봐도 그게 옳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봐도 그게 냉철한 인식이다. 인간사회란 유기체는 때린다고 죽지 않는다. 잔인한 전쟁 속에서도 나중에 더 굳세게 성장한 인류의 역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경제는 그래서 스포츠로 비유하면 권투라기보다 달리기와 유사하다. 상대를 깨뜨려야 이기는 게 아니라 더 오래 더 잘 달려야 이기는 게임이다. 경제는 전쟁이 아니라 경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경쟁은 때리는 행위보다 스트레스에 가깝다. 경쟁이 있어야 발전한다는 이야기는 스트레스가 발전의 요소라는 이야기다. 마라톤에서 페이스 메이커를 두는 까닭이 바로 스트레스를 발생시키는 거다.

미국이 위태로운 것은 경제 성장에 관한 이 ‘오래된 미래’를 까마득하게 잊어간다는 사실 때문이다. 미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장악했던 까닭은 세계 시장을 중국과 겨루는 ‘사각의 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모두 함께 달리면서 경쟁할 수 있는 자유로운 트랙 덕분이었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미국 기업들은 그 넓은 운동장에서야 말로 마음껏 달리고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이 이 자유롭던 운동장을 ‘사각의 링’으로 바꾸려는 건 당연히 중국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에 밀릴 수도 있다는 조바심이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정확하게는 시장과 기업에 대해 국가가 계획하고 통제하는 경제 방식에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30년 동안 미국이 얻는 것도 많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하게 됐을 수도 있다.

자격지심이다. 그런 생각이, 경쟁을 유도해야 할 경제를 너 죽고 나 살자는 전쟁터로 만드는 것이다. 자국 기업엔 온실을 만들어주고 상대기업은 유리나 사기그릇처럼 깨버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건 중국 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미 맺고 있는 세계 각지의 그 많은 기업은 결코 유리나 사기그릇이 아니다. 때린다고 죽지도 않고, 온실에서 키운다고 더 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온실은 야생에서 살 수 없는 화초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기업을 온실에 두면 좀비가 될 뿐이다. 미국의 정책은 자국 제조 기업을 온실 속 화초로 만들고 타국 기업을 야생마로 만들 수도 있다. 결과는 의도와 반대로 갈 수도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을 냉대해서도 안 되지만 미국 정책이 그럴 수 있다는 데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경제는 권투가 아니라 달리기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미국 대통령이 진짜로 경제를 잘 안다면 중국을 때리는 방법이 아니라 국가 계획 경제의 모순이 심화되게 하는 방법을 쓰고 있을 것이다. 

이균성 논설위원(sereno@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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