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일 관계, 미국이 움직여야 뚫린다

2023. 4. 18.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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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지 한 달이 지났지만 한·일 관계 개선은 당초 기대에 못 미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6일 박진 외교부 장관이 삼자 대위변제 방식의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한 열흘 뒤 일본으로 날아가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텄다. 적잖은 성과가 있었지만 한국이 양보한 만큼 일본의 호응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했다며 여론이 냉담하다. 한·일 협력으로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려던 정부의 당초 구상이 적잖은 난관에 봉착한 모양새다.

하지만 윤 정부의 이번 조치는 강제징용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로 안보 위협에 공동으로 노출된 한·일 양국의 입장을 고려하면 다른 현실적 대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일본을 안보와 경제의 파트너로 규정하고 내린 결단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타성적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어떠한 해결 노력도 수포가 될 수 있다.

「 정상회담 성과 갈수록 빛바래
하루가 위태로운 동북아 정세
윤 대통령이 바이든 설득해야

시론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한·일 협상의 근거가 된 대일 청구 8개 항목에는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보상금 및 청구권’이 명시돼 있다. 미국의 중개로 7000만 달러로 시작된 청구권 금액은 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로 최종 결정됐고, 청구권협정에 양국의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규정됐다.

한국 정부는 1974년 ‘민간 청구권 보상법’으로 8만3519명의 피해자와 유족에게 91억8700만원을 지급했고, 2007년 특별법으로 7만2631명에게 6184억원을 지급했다. 강제징용 문제는 그렇게 일단락됐지만, 개인의 청구권이 존속한다고 본 2012년과 2018년의 대법원 판결로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 상태가 됐다. 일본은 국제법 위반이라 비난했고, 한국은 수세에 몰렸다.

사실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여러 번 사과했다. 총리와 일왕의 사과를 모두 합치면 53회나 된다. 일본은 한국 침략, 창씨개명, 위안부, 강제징용 등 식민지배 문제를 모두 사과했다. 승전국도 패전국에 사죄를 강요하지 않는다. 한국은 승전국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당사국도 아니었다. ‘일본에서 분리된 지역’으로 평화조약에 규정됐을 뿐이다.

이달 말에 지방선거와 의회 보궐선거가 끝나고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안정되면 일본이 윤 정부의 결정에 상응하는 조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협조할 수 있도록 미국을 움직여야 한다. 26일 한·미 정상회담과 5월에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좋은 기회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부통령으로서 아베 총리를 설득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윤 대통령이 잘 설득해야 한다.

미·중 대결의 신냉전 구도에서 한·미·일 3국 공조는 미국에도 아주 중요하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전략은 동북아에 한·미·일 동맹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전문에는 ‘태평양 지역에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 안보 조직이 발달할 때까지’ 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희망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한·일 양국은 한·미·일 지역 안보협력 체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갈등에서 벗어나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동북아의 안보 지형은 급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의 결과와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따라 한반도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은 안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규범과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의 맥락에서 한·일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북한 핵·미사일의 실존적 위협 앞에서 한·일 양국은 과거사 문제에만 매달려 있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지금의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일본이 아니다. 패전 후 국제사회에 복귀한 일본은 정치 체제와 지향하는 가치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단순 명쾌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양국의 갈등을 해결 못 할 이유가 없다. 미래로 한 걸음 내딛기는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망설이고 있기에는 한반도의 안보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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