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에 비난 쏟은 이란…‘8조원 대금·이태원 참사’ 경색 뇌관되나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적은 이란' 발언 파장이 커지면서 긴장감이 돌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이란에 지급해야 하는 8조원대 원유 대금 압박과 함께 향후 우리 교민이나 기업·선박을 겨냥한 보복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자국민 5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 당시 한국 정부를 비난했던 이란은 이번 윤 대통령 발언으로 그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우리 정부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 '갈등의 불씨'를 꺼야하는 난제를 맞닥뜨렸다.
18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이란으로 송금해야 하는 70억 달러(현재 환율 기준 약 8조7000억원) 규모의 원유 대금이 묶여 있다. 이란이 국제사회로부터 지급받지 못한 자금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뇌관이 된 '70억 달러 미지급 사태' 출발점은 지난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행동계획)를 일방 파기하면서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가 복원됐고,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도 제재에 동참하면서 이란과의 돈 거래가 원천 차단됐다.
당초 한국은 핵 개발에 따른 제재로 이란과 달러화 결제 방식의 무역 거래가 불가능해지자 2010년부터 한국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원화 계좌를 개설해 원유 대금을 지급해 왔는데 이마저 불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란을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이라고 표현한 데 대해 이란 정부가 반발과 함께 항의성 경고를 던지면서 향후 대금 송금 압박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진화에 나선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아크부대 독려 차원의 발언'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란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차 '정확한 입장'을 요구한 것도 전략적 압박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이란 정부는 수 차례 한국 정부에 대금 지급을 강도 높게 요구해왔다. 이로 인해 양국 관계가 경색되던 2021년 1월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한국 선박을 나포, 3개월 간 억류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표면적 이유는 해당 선박이 여러번 해양 환경규제를 위반했다는 것이었지만 전문가들은 이란이 자금 송금을 압박하기 위해 한국 선박에 대한 '기획 나포'를 감행한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해결해야 할 현안이 있는 이란이 윤 대통령의 발언을 빌미로 거센 자금 압박과 함께 우리 교민이나 한국 기업, 선박 등에 대한 보복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이란 현지 언론에서는 한국 선박에 대한 호르무즈 해협 진출입 차단 등 강경한 조치가 취해질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란 정부는 지난해 10월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로 자국민 5명이 희생됐을 때도 한국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해 10월31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에서 이태원에서 이란인 5명이 사망한 점을 공개 거론하며 한국 정부를 질타했다. 그는 "한국 정부의 잘못된 관리와 의사 결정으로 200명 가까이 희생됐다"며 참사 책임을 따져 물었다.
이란 국영통신 IRNA에 따르면, 칸아니 대변인은 이번 윤 대통령 발언을 '비외교적' '간섭 행위'로 규정하고 윤 대통령이 외교에 "무지하다"고 비난 수위를 더 끌어올렸다.
전문가들은 수교 60년이 넘은 중동 외교의 핵심 국가인 이란과의 갈등과 마찰이 장기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조속한 외교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강석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는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은 UAE와 이란의 역사성, 최근의 화해 무드 등을 고려하지 않은 신중하지 못한 표현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란의 서울거리, 한국의 테헤란로(이란의 수도) 등 과거에 상당히 우호적인 분위기가 있었지만 미국 경제 제재 속에서 한국에 자금이 동결된 부분 등 (이란의) 누적된 불만들이 이런 사태가 있을 때마다 터져 나오는 것"이라며 사태 장기화를 막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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