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1%도 안 되는 후보가 선거운동 첫날에 한 일

5월12일, 제21대 대통령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을 하늘에서 시작한 후보가 있다. 기호 5번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61)다. 이날 오전 0시10분 권영국 후보는 서울 중구 세종호텔 인근 9m 높이의 철제 구조물에 올랐다. 호텔 주방장으로 일하다 코로나19 여파로 2021년 정리해고되어 그날까지 88일째 고공농성 중이던 고진수 민주노총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농성장에서 고진수 지부장은 권 후보를 “각종 현장에서 같이 봤던 동지”라며 환영했고, 권 후보는 “잘될 것 같다. 눈물 날 것 같다”라고 말했다. 0시50분에는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앞 30m 높이의 교통관제용 CCTV 철탑에도 올라갔다. 조선업 위기 때 깎인 임금을 원청업체가 복구하라며 58일째 고공농성 중이던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을 그곳에서 만났다. 권 후보는 해고자들이 복직하고 깎인 임금이 회복돼 이들이 내려올 수 있도록,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업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6월3일 투표일에 내려와 한 표를 행사할 수도 없는 유권자 2명을 만나기 위해, 권 후보는 4시간에 60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스카이 탑차에 올랐다. 새벽 유세를 지켜보는 사람은 민주노동당 당원과 지지자, 경찰과 기자 한 명을 포함한 20여 명, 그리고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지켜본 40여 명이 전부였다. 그는 같은 날 아침 7시30분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첫 유세를 시작하며 이렇게 말했다. “밀려나지 않기 위해 버티는 것만도 너무나 벅찬 이 사회는 정상적이지 않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세상을 만들겠다.”

정의당이 민주노동당 된 사연
지난 총선에서 0석을 얻어 원외 정당이 된 정의당은 21대 대선 대응을 위해 노동당·녹색당과 민주노총 일부 산업별 노동조합 등 진보세력이 함께하는 ‘사회대전환 연대회의’를 꾸리고 대선 기간 한시적으로 당명을 ‘민주노동당’으로 변경했다.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라는 구호로 2000년에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2004년 노회찬·심상정 등 의원 10명을 국회에 입성시키며 무상급식, 부유세 등 진보 의제를 선도했다가 내부 분열을 겪고 2011년 해산한 정당이다. 민주노동당 후신 중 하나인 정의당은 다양한 정치세력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선거인 만큼, 새롭게 통합된 이름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합의에 따라 당 내부 표결을 거쳐 민주노동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권 후보는 4월29일 입장문에서 “민주노동당 영광의 시절에 매달리자는 것이 아니다. 제가 당대표로 취임할 때 ‘다시 시작’이라는 구호를 썼다.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을 꿈꾸며 창당한 2000년의 초심은 민주노동당을 모르는 젊은 동지들의 초심과도 다르지 않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라고 밝혔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인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의 경선 끝에 민주노동당의 최종 후보가 된 권영국은 ‘거리의 변호사’라 불린다. 풍산금속에서 노조를 만들다 해직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민주노총 법률원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장을 지냈다. 지금까지 그는 용산 참사 철거민 변호인단, 민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장, 태안화력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산재로 숨진 김용균씨 사망사고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간사 등을 맡았다.

4월13일 조국혁신당은 이번 조기 대선에서 독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진보당의 김재연 예비후보는 5월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예비후보직을 사퇴했다. 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4당이 민주당 지지를 선언한 가운데, 유일하게 독자적으로 남아 대선 레이스를 이어가는 진보정당의 대선후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선거운동 첫날 대구·경북, 둘째 날 부산·울산·경남을 일제히 찾는 동안, 권영국 후보는 고공 농성자 2인, 대학본부를 상대로 장기 싸움을 이어가는 동덕여대 재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 상시 노동자가 5인 미만이어서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지 못하는 봉제 노동자들을 만나고 기후위기 토론회에 참석했다.
그런 권영국 후보의 출마에는 늘 ‘굳이, 왜?’가 따라다닌다. 대표적인 주장이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론’이다. 내란 세력 청산을 위해서는 민주당 대선후보의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한데, 민주노동당이 굳이 출마해 진보세력의 표를 빼앗을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이는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패배했을 때 2.37%를 득표한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탓했던 여론과 궤를 함께한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윤석열 탄핵을 위해 모였던 광장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정의당 깃발을 보고 ‘정의당이 여길 왜 오나. 정의당 때문에 지난 선거에서 윤석열이 당선되지 않았나’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권영국 당대표가 발언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가면 야유하는 참가자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거리의 반응도 차갑다. 5월12일 오전 7시30분 구로디지털단지에서 권영국 후보의 선거운동을 본 시민 2명은 “지난 대선처럼 한 표라도 부족해서 (이재명 후보가) 지면 어쩔 건가”라는 대화를 나누며 지나가기도 했다. 같은 날 저녁 7시 광화문에서 열린 노동선대본 발족식을 본 젊은 청년 역시 “대통령이 되겠다는 건지, 싸우자는 건지 모르겠다. 굳이 왜 나오는 거냐”라고 말하며 혀를 차고 지나갔다. 유세를 지켜보던 70대 남성은 “무작정 노조 편을 든다고 경제가 나아지냐.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노동자 권리를 지나치게 주장하는 후보는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대선 방침을 정하지 못했다. 한 전직 민주노총 지역지부 관계자는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많이 지지받지 못할 텐데 진보정당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번 대선에서 권영국 후보 득표율이 1%가 되느냐 마느냐가 관건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라고 주변 분위기를 전했다. 한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도 “중요한 건 실력이 되느냐다. 지금 한국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인 트럼프발 관세전쟁에 대응할 역량이 민주노동당에게 있나”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영국 후보의 역할이 존재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번 조기 대선에서 민주당이 ‘중도 보수’를 천명하고 여성 등 소수자 관련 언급을 자제하고 있으며,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약진이 전망되기 때문이다. 권영국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유일하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명시적으로 공약에 내걸었다. 여성가족부의 성평등부 격상, 비동의 강간죄 도입, 낙태죄 폐지에 관한 대체입법 마련 등 여성 공약도 10대 공약에 포함했다. 양당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감세 정책을 내놓을 때, 권영국 후보는 ‘부자 증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 ‘탄소배출 감소를 위한 탄소세 부과 1t당 11만원’을 공약했다.
평택항 산재 유가족이 후원회장
이번 선거에 함께하는 정의당은 2020년 총선 출마자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다가 현재 약 26억원을 빚진 상태다. 권영국 후보는 대선후보 등록에 필요한 기탁금 3억원 중 2억4000만원을 시민 약 1000명의 후원금으로 십시일반 모았다. 평택항에서 산업재해로 아들 선호군을 잃은 유가족 이재훈씨가 “권영국 변호사님에게 정말 큰 도움을 받았는데 갚을 길이 없었다”라며 그의 공동후원회장을 맡아 1000만원 후원금을 보냈다. 기탁금은 후보자의 득표율이 15%가 넘으면 보전되고, 10%에서 15% 미만이면 절반만 보전된다. 이번 대선에 나선 후보 7명 중에서 권영국 후보의 지지율은 현재까지 0.2~1%에 그친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권영국 캠프는 선거 공보물 한 장을 앞뒷면 인쇄해 모든 세대에게 보내는 데만 3억5000만원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A4 용지보다 조금 더 작은 16절지 크기의 공보물 한 장을 양면인쇄해 보낼 계획이다. 현수막을 모든 지역에 게시하는 데는 7억원이 드는데, 자금 부족으로 일부 지역에만 걸고 있다고 한다. 권영국 후보 비서실장을 맡은 이은주 전 정의당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당직자 40여 명이 하던 선거운동을 당직자 9명이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선관위에 신고된 권영국 후보의 재산은 25억193만8000원이다. 이재명 후보(30억8914만3000원)보다는 적고 김문수 후보(10억6561만5000원)보다는 많다. 이에 대해 권영국 후보는 “아내가 20대 후반부터 식당, 커피숍도 하고 직장생활도 오래 했다. 장모님이 돌아가실 때 가게를 물려받은 것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권영국 후보는 5월15일 〈시사IN〉과의 전화 통화에서 “내란 종식의 핵심은 한 사람만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김문수 후보를 압도적으로 패배시키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변절자 김문수를 노동의 이름으로 가장 잘 심판할 사람이 바로 저다.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 이상의 사회 대개혁도 이야기해야 한다. 당연히 완주할 것이다.” 권영국 후보는 5월18일, 23일, 27일 예정된 세 차례 TV 토론에 이재명·김문수·이준석 후보와 함께 출연한다.
권은혜 기자 kiki@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