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대통령경호처에 군 지휘권 부여한 시행령 개정, 법적근거 없다?
같은 법 조항은 경호처장 지휘 대상을 '소속 공무원'으로 한정
'유신시절 경호처 부활하나' '합참의장의 군 작전권과 충돌'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대통령경호처(이하 경호처)가 경호구역에서 경호업무를 수행하는 군·경찰 등을 지휘·감독할 수 있게 관련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경호처가 지난 9일 입법예고를 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이하 대통령경호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 "(경호)처장은 경호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경호구역에서 경호활동을 수행하는 군·경찰 등 관계기관의 공무원 등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고 돼 있다.
'경호구역에서 경호활동을 수행하는'이라는 제한을 뒀지만 경호처가 군·경을 '지휘·감독'한다는 것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로 이례적인 상황이다. 언론들은 경호처의 군·경 지휘권 확보를 우려했다.
경호처는 논란이 일자 지난 15일 해명자료를 통해 "대통령 경호에 투입된 군·경 등 관계기관의 경호 인력에 대해 새로이 지휘권을 갖게 된다는 취지의 언론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기존에도 (중략) 군·경 등 관계기관의 경호활동을 지휘·감독해왔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내부지침 등의 형식으로 규정돼 있던 내용을 시행령으로 명확히 한 것일 뿐 기관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16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시행령은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니고 근거 법률이 있어야 된다"며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을 근거로 시행령을 만들어야지, 내부 사무처리 기준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시행령으로 만드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경호처가 입법예고한 시행령 개정안은 얼마나 타당한 법적 근거를 갖고 있을까?
경호처 "경호처장에 지휘권 위임한 군·경찰 내부지침을 명문화하려는 것"
경호처는 해명자료에서 언급한 '내부지침 등의 형식'은 군과 경찰 등 관계기관의 내부지침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경찰은 내부규정을, 군은 명령서를 통해 파견 공무원의 지휘를 경호처장에 위임한다고 돼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는 지침을 일원화해서 시행령으로 법제화한다는 것이 이번 개정의 의미라는 것이다.
개정의 구체적인 근거 법률 조항으로는 모법인 대통령경호법 제3조와 제5조 3항을 들었다.
제3조에선 경호처장이 경호처의 업무를 총괄한다고 돼 있고, 제5조 3항에선 경호처 소속 공무원뿐만 아니라 경호업무를 지원하는 관계기관의 공무원도 경호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
결국 경호업무를 지원하는 관계기관이 하는 경호활동이 경호 업무의 일환이니 이에 대해서 경호처장에게 포괄적인 권한이 부여됐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법조계선 "시행령 개정안, 모법의 위임 범위 벗어나" 지적도
하지만 총괄과 지휘·감독은 엄연히 다른 용어다. 총괄은 '모든 일을 한데 묶어 관할한다'는 뜻으로, 직접적인 지휘·감독과 거리가 먼 개념이다.
게다가 대통령경호법 제3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호처장은 "경호처의 업무를 총괄하며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해 지휘·감독의 권한을 경호처 소속 공무원으로 한정했다.
또한 제15조에선 직무상 필요할 경우 다른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장에게 공무원 또는 직원의 파견이나 그 밖에 필요한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16조에선 관계기관의 책임을 명확하게 하고 협조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대통령경호안전대책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대통령경호법 조항의 명시적 내용과 입법 취지를 보면 경호처장이 소속 공무원의 범위를 넘어서 관계기관의 공무원까지 지휘·감독할 권한을 지녔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법률사무소 휴먼의 김종보 변호사는 "경호처의 시행령 개정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며 "모법은 분명 지휘·감독을 소속 공무원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시행령으로 파견 공무원까지 지휘·감독하도록 확장하는 것은 모법의 한계를 벗어난다"고 말했다.
경호처가 전 정권인 문재인 정부 시절 개정을 추진했던 시행령 조문과 비교하면 경호처의 '저의'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된다.
지난 4월 15일에도 동일한 시행령 조항이 입법예고된 적 있는데 여기엔 "처장은 (중략) 법 제15조(국가기관 등에 대한 협조 요청 조항)에 따라 배치된 인력·장비 등에 대한 운용을 총괄한다"며 "단, 그 구체적인 사항은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해 정할 수 있다"고 돼 있었다.
이번 개정안에 쓰인 '지휘·감독'이라는 용어 대신 '총괄', '협의'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이다.
대통령경호처의 군 지휘·감독은 유신시절의 유산
경호처가 과거에도 군을 지휘·감독한 적이 있을까?
있다. 박정희 유신체제 시절 '정권 실세'였던 고(故) 차지철 씨가 실장으로 있었던 '대통령 경호실' 당시의 일이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1974년 11월 당시 '대통령경호실법 시행령' 개정으로 경호실에 차장과 행정차장보, 작전차장보를 두도록 직제가 개편된 데 이어 1976년 2월 다시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작전차장보가 다른 기관으로부터 파견된 작전부대에 대한 지휘·감독을 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1978년 12월엔 대통령령인 '수도경비사령부(이하 수경사) 설치령'이 개정돼 당시 수도 방위를 담당한 수경사가 특정경비구역(대통령이 있는 곳으로서 경호가 필요한 지역)과 관련된 작전활동을 할 때 대통령 경호실장의 '통제'를 받게 됐다. 경호실장이 사실상 수경사의 작전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경호실의 군 지휘·감독 권한은 12·12 군사반란 직후인 1979년 12월 27일에 시행령에서 삭제된다. 또 경호실장의 통제를 규정한 수경사 설치령은 1980년 5월에 '대통령 경호실장과 협의한다'로 개정된다.
"경호처의 군 지휘권, 합참의장의 작전지휘권과 충돌" 지적도
경호처의 군 지휘·감독권은 군 지휘권을 규정한 '국군조직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헌법과 국군조직법은 대통령이 국군을 통수하고,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군사 사항을 관장하게 돼 있다.
이때 군 통수권은 군의 작전을 지휘·감독하는 권한인 군령권(軍令權)과 군사 행정에 관한 권한인 군정권(軍政權)으로 나뉜다.
국군조직법에선 군령권의 경우 합동참모의장을, 군정권은 각 군 참모총장을 통해 발휘하게 돼 있다.
즉, 군의 작전지휘권은 합참의장에게 있는 것이다. 단, 경호처에 파견된 군인의 경우 경호처의 설명과 같이 그런 지휘권을 경호처에 위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경호처장이 합참의장의 이런 권한을 위임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런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정의당 김종대 전 의원은 "경호처장이 군을 지휘·감독하겠다는 것은 군의 고유기능 일부를 자기가 가지고 가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불법적"이라며 "시행령으로 할 것이 아니라 국군조직법을 개정해 대통령의 경호와 관련된 사안을 예외로 한다는 식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의원은 "(시행령이 그대로 개정되면) 군·경찰·경호처 협력체제로 운영되던 대통령실 체제가 경호처 일원적인 권한 독점의 시대로 바뀌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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