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인력증원 필요’ 보고서 지워라”... 용산署, 증거인멸 정황

이해인 기자 2022. 11. 7.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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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과장, 부하에 “경찰 인력증원 보고서 원본 지워라” 지시
최초 보고서엔 ‘인력지원 필요’
정보과장, 문구 빼고 상부에 보고
참사터지자 “보고서 아예 없애라”
서장은 뒷짐진 채 현장으로
직선거리 740m, 걸어 13분 거리를
차량 이동 고집하다 55분 날려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일대가 시민들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숨진 사람들을 애도하기 위한 꽃과 메모로 가득 차 있다. 지난 5일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났지만, 6일에도 시민들의 애도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장련성 기자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을 관할하는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사고 전후 늑장·부실 대응 의혹에 이어 증거인멸 정황까지 발견됐다.

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용산서 정보과 한 정보관은 핼러윈 참사 며칠 전 작성한 보고서 중 일부에 “코로나 이후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니 별도의 경찰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아 정보과장과 정보계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문서를 본 과장은 ‘인력 지원’과 관련된 내용을 빼고 보고서를 내부망에 올리라고 지시했다. 결과적으로 핼러윈 시기에 현장에 경찰 인력이 추가로 더 필요하다는 의견은 상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156명이 숨지는 참사가 난 직후, 두 사람은 이 보고를 올린 정보관에게 ‘인력 지원 필요’ 내용이 들어있는 보고서 원본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이 보고서 원본은 실제 삭제된 상태였다.

경찰청 특별감찰팀은 내부 감찰을 통해 이런 정황과 근거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찰팀은 정보과장 등이 참사 전에 “인력 배치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았으면서도 자신이 묵살했다는 지적을 받을까봐 이런 일을 벌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도 지난 2일 용산서 압수수색과 관계자 조사를 통해 참사 이후 사전에 작성됐던 보고서가 정보과장과 계장의 지시에 의해 삭제된 정황을 확인했다 특수본은 두 사람에 대해 직권남용 및 증거인멸 혐의 적용이 가능한지 수사 중이다. 용산서 정보과장은 이 혐의에 대해 “감찰 및 조사 등에 성실히 임하겠다”고만 했다.

특수본은 용산경찰서장의 사고 전후 행적과 부실 대응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용산서는 참사 당일 상황보고에 ‘용산서장 오후 10시 20분 현장 도착해 지휘 시작’이라고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총경)은 참사 당시 오후 11시 5분에 참사 현장 앞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애초 보고가 허위로 드러난 것이다. 고의로 잘못된 기록을 남긴 것인지, 이 총경이 이날 제대로 현장을 지휘했는지 등은 현재 특수본 핵심 수사 대상이다.

특히 이 총경이 지난달 29일 참사가 발생하기 15분 전 현장에서 740m 떨어진 곳에서 뒷짐을 진 채 여유 있는 모습으로 현장까지 걸어오는 장면이 한 가게 CCTV에 포착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경찰청 특별감사팀에 따르면 이 총경은 지난달 29일 이태원 인근에서 집회 지휘를 하다 이날 오후 9시 24분쯤 용산서 주변 설렁탕집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9시 47분쯤 그는 관용차를 이용해 이태원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13분 뒤인 오후 10시쯤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인근에 도착했다. 사고 현장에서 직선 거리 740m로, 걸어서 13분쯤 걸린다. 여기서 내려 걸었다면 참사 전에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단 얘기다.

하지만 그는 내리지 않았고, 그가 탄 차는 이태원 파출소로 가기 위해 이후 55분 동안 이 일대를 맴돌았다. 이 총경은 오후 10시 55분에야 현장에서 도보로 10분쯤 떨어진 이태원 엔틱가구거리에 내렸고, 10분쯤 걸어 참사 현장에 도착했다. 이때 걷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됐다.

그가 녹사평역 인근에 도착한 뒤 차에서 머문 시간은 55분. 이때는 용산경찰서 상황실에 “압사당할 것 같다”는 취지의 신고가 잇따라 들어오고 있을 때였다. 경찰 관계자는 “CCTV 장면을 보면 전혀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모습”이라며 “보고가 제대로 안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감찰팀은 그가 차 안에 머물거나, 걸어오는 동안 일선 경찰들에게 어떤 지휘를 내렸는지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감찰팀은 당시 관용차를 몬 경찰과 차량 블랙박스 등도 분석 중이다.

현장 총책임자인 용산서장이 현장의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파악하는 게 늦어지면서 현장 대응도 늦어졌고, 서울청, 경찰청으로 보고하는 게 줄줄이 밀렸다. 실제 참사 이후 경찰 기동대가 처음으로 현장에 배치된 것은 오후 11시 40분쯤이다. 오후 11시 17분 용산서장의 지시를 받아 용산 대통령실 근처에 있던 기동대가 이 일대로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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