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알퍼의 영국통신] 찰스 3세를 바라보는 영국인들의 시선

2022. 10. 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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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밀라와 불륜' 호불호 있지만
1970년대부터 자연보전 강조
시대를 앞선 친환경 행보 지속
어머니만큼의 인기 어려워도
찰스가 나쁘지만 않다는 것을
영국인도 조금씩 깨닫기 시작
찰스 3세 영국 국왕. [런던AFP = 연합뉴스]
'찰스왕'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이제껏 영국인들에게 '찰스왕'은 1649년 시민혁명에 패해 참수형을 당한 비운의 찰스 1세와 1660년 영국의 짧은 공화정이 막을 내리고 다시 왕으로 부름을 받은 그의 아들 찰스 2세가 전부다.

찰스 3세에 대한 평판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그는 큰 인기를 누리며 성장하다 1981년 다이애나와 결혼하면서 인기의 정점을 맞는다. 그러나 결혼 이후 다이애나의 인기가 그의 인기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즈음 찰스는 식물과 대화를 나누는 괴짜로 여겨지면 다행이었고, 나쁜 경우에는 자신의 가정과 불륜 관계에 있었던 커밀라의 가정을 모두 파탄으로 몰고 간 부정한 바람둥이로 인식되었다.

다이애나가 사망했던 1997년, 찰스는 많은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여왕이 사망했을 때 일부 영국인들은 찰스가 아닌 윌리엄이 왕관을 물려받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떠들기도 했다.

1990년대는 찰스에게 가혹한 시기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상황은 조금씩 나아졌다. 아직도 영국인들에게 '국민 왕세자비'로 기억되는 다이애나에게 찰스가 불성실한 배우자였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커밀라에 대한 사랑이 일시적인 바람기는 아니었다. 찰스와 커밀라는 1965년에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찰스는 아버지에 의해 다이애나와의 결혼을 강요받았고, 결국 둘 다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지만, 그들의 사랑은 평생 지속되었다. 추문으로 얼룩진 왕실의 바람둥이를 찾고 있다면 후보자는 수두룩하겠지만 찰스는 대상이 아니다.

찰스는 환경문제가 대두되던 초창기부터 환경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이미 자연보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는 사람들이 아직 기후변화가 환경에 미치는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2007년에는 자신의 탄소발자국을 추적하고 자신의 집에 친환경 에너지원인 바이오매스 보일러와 솔라패널을 설치했다. 심지어는 치즈와 와인 생산에서 발생되는 찌꺼기로 움직일 수 있도록 자신의 차를 개조하기도 했다. 자신이 기르는 식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이 심은 모든 나무들과 악수를 한다는 찰스의 발언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던 1980년대에 찰스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또한 찰스는 현대건축을 비난하며 영국의 건축 회사들에 보다 더 전통적인 건물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당시 이런 의견은 현실감 없는 상류층의 트위터처럼 들렸지만 이제 이런 의견은 그를 선견지명 있는 안목을 가진 젊은 CEO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그의 튀어나온 귀와 단조로운 목소리는 많은 코미디언들에 의해 개그 소재로 사용되며 조롱을 받아온 반면 그의 어머니는 현대 영국 역사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군주였다. 찰스 자신도 모친과 필적하는 인기를 결코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인들도 마침내 찰스가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는 듯하다.

[팀 알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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