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디, 푸틴 면전에서 "전쟁의 시대 아냐" 직격탄
미국 "핵 안 돼" 경고.. 러 접경도시에 전운 고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믿는 도끼에 연거푸 발등을 찍혔다. 그간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중립적 입장을 취했던 중국과 인도가 이례적으로 러시아에 ‘전쟁 종식’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최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 지역에서 패퇴한 데 이어 푸틴 대통령까지 외교 무대에서 체면을 구기면서 러시아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전쟁 출구 찾아야”… 시진핑 이어 모디도 가세
17일(현지시간) AP통신과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은 16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의 양자회담에서 뜻밖의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모디 총리는 회담 초반 방송 카메라 앞에서 “지금은 전쟁의 시대가 아니다”라며 푸틴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또 “세계를 하나로 묶는 건 민주주의와 대화”라며 외교적 해결을 촉구했다.
모디 총리의 공개 비판은 상당히 이례적일 뿐 아니라 발언 수위도 높았다. 모디 총리는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전쟁으로 촉발된) 식량 및 에너지 위기”라고 지적하며 “우리는 출구를 찾아야 하며 러시아도 이러한 노력에 기여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전쟁을 그만 끝내라’는 경고나 다름없다.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도 비공개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발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의 의문과 우려를 이해한다”며 두 정상 간 민감한 대화가 오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모디 총리에게도 “인도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는 똑같은 답변만을 되풀이했다. 예상치 못한 압박과 비판에 당혹스러워하는 속내가 읽힌다.
당초 푸틴 대통령은 SCO 정상회의를 계기로 서방에 맞서 우방국 간 결속을 다지고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려 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중국과 인도였다. 두 나라는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에 불참하고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 수입하며 암묵적으로 러시아를 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 장기화로 경제난이 심화하자 시 주석과 모디 총리도 러시아의 군사 행동을 더는 묵인하기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군의 대대적인 반격에 러시아군이 수세에 몰린 상황도 두 나라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는 하르키우주(州) 전역을 포함해 영토 8,000㎢를 수복했다. 서울의 13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CNN은 “러시아는 반(反)서방 통일 전선을 구축하기를 바랐으나 오히려 분열 조짐만 드러났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국과 인도의 회의적인 견해로 러시아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AP도 “푸틴 대통령은 SCO 정상회의에서 외교적 위상을 빛내려 했지만 국제적 고립이 더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다”고 꼬집었다.
미국 추가 군사지원… 전운 휩싸인 러 접경도시
미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러시아를 더욱 몰아붙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을 돕고자 6억 달러(약 8,340억 원) 규모 추가 군사 지원 방안도 내놨다. 궁지에 몰린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를 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CBS방송과 인터뷰에서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핵무기를 쓰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그동안 대러 제재에 미온적이었던 아프리카를 포섭하기 위해 백악관을 찾은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게 친환경 에너지 전환 비용으로 4,500만 달러(약 626억 원) 투자를 약속하기도 했다.
전장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이 루한스크주 마을 스바토베와 오스킬강 인근까지 진출하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국경과 불과 38㎞ 떨어진 러시아 벨고로드에선 하루에도 수차례 방공망이 가동되면서 공중에서 폭발음이 들려오고 있다.
무방비 상태에 놓인 러시아 주민들 사이에선 푸틴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한 주민은 지역 주지사의 소셜미디어에 “대체 우리를 보호할 군대는 어디 있는가”라고 비판하는 글을 남겼고, 친러시아 반군 지휘관 출신 이고르 기르킨도 “크렘린궁은 더 이상 벨고로드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여기지 않는 것인가”라고 규탄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우크라이나군이 국경에 가까워지면서 러시아 시민들도 전쟁의 영향을 심각하게 느끼기 시작했다”며 “푸틴 대통령에게는 또 다른 내부 압박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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