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방구석 명탐정 빙의" 어느 경찰의 '한강 사건' 분노
한강 실종 의대생 고(故) 손정민(22)씨의 사망 사건이 경찰의 책임 논란으로 비화하고 있다. 경찰이 ‘늦장 대응’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일부 경찰관들이 강한 불만을 제기하면서다. 수사 상황을 노출할 수 없다는 이들의 하소연에 다시 “불신을 자초한 게 누구냐”는 재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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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일일이 수사 상황 보고하냐”
‘늦장수사’ 논란은 정민씨와 실종 당일까지 함께 있었던 친구 A씨에 대한 조사가 늦어졌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공론화됐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정민씨가 숨진 채 발견된 지 열흘만인 9일 A씨와 그의 아버지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그 사이 A씨가 정민씨의 스마트폰을 소지했고 홀로 귀가할 때 신었던 신발을 가족이 버린 사실 등에 대한 의혹이 증폭됐다.
지방경찰청 소속의 한 경찰관은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인 블라인드에서 ‘수사 비공개 원칙’을 언급하며 “수사의 모든 것을 공개할 수 없지 않으냐”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게시글에서 “의대생 한강 실종 같은 안타까운 사건들은 매일 몇 건씩 일어난다”며 “수사는 비공개가 원칙인데 언론에 노출이 됐다고 해서 국민에게 일일이 수사 진행 상황을 보고해야 하느냐”고 주장했다.
이 경찰관의 주장은 지난 2019년 12월부터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시행되는 것에 근거한 것이다. 이 규정은 기소돼서 재판을 받기 전까지 사건 관련 내용은 언론 등을 통해 공개할 수 없다는 취지다. 기소 이후에만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한적인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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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방구석 코난에 빙의” 불만 목소리
일부 경찰관들은 “이번 사건이 국민적인 관심을 받으니 그 팀에 배정받은 다른 사건들은 기약 없이 뒤로 밀리고 있다. 뒤로 밀리는 사건들의 CCTV와 블랙박스 저장 기한이 다해 지워지는 것은 어떻게 할 거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퍼뜨릴수록 팀에 배당된 이외 사건들은 뒤로 계속 밀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서초경찰서 강력팀 7팀 전체가 정민씨 사건에 투입됐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도 지난 10일 “기초 자료가 어느 정도 확보된 상태에서 조사해야 하는데, 수사 전환 시점으로부터 (A씨 조사까지) 일주일”이라며 “(수사가) 늦었다는 부분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블라인드에서 또 다른 경찰관은 “다들 ‘방구석 (명탐정)코난’에 빙의했는데 이 사건 때문에 본인 사건이 밀린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관은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일부러 수사를 안 한다는 개소리 하는 것 보면 웃긴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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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깜깜이’가 의혹과 불신 키워
그러나, 인터넷 등에는 “경찰이 제대로 하는 건 ‘사건 공개금지’ 원칙을 지키는 것 뿐”이라는 취지의 비판이 적지 않다. 한강에서 손씨 시신을 발견한 건 경찰이 아닌 민간구조사차종욱(54)씨였다. 친구 A씨 휴대전화를 수색 중인 그는 “경찰이 A씨의 아이폰 기종이나 색상을 말해주면 특정하기 쉬울 텐데 공개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일반 시민들이 휴대전화를 찾기 위한 수색팀을 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네티즌 수사대’가 등장하게 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수사 기관이 국민적 관심이나 알 권리를 경시하고 ‘공개금지 원칙’에만 연연했다는 비판도 있다. 결과적으로 ‘깜깜이 수사’가 되면서 국민 불신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경찰이 가짜 뉴스를 사실상 방치하고 근거 없는 의심이 커지면서 오히려 사건 관련자의 인권이 침해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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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배제 말고 일찍 수사 전환했어야”
경찰 내부에서도 “‘늦장수사’가 부실 수사라는 평가를 불렀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실종 신고는 대부분 본인 스스로 나갔다가 연락 두절된 상태에서 신고가 들어오는데 20대 남성이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수 있다”며 “타살 혐의점을 배제하지 않고 일찍 수사로 전환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수사 보안과 국민 알 권리를 어떻게 조화롭게 끌고 갈지에 대한 개념 정립이 제대로 안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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