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은 2000여년전 동아시아의 '홍콩'이었다

2016. 9. 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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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옛 국제교역항 늑도 재조명한 국립진주박물관의 특별전
늑도에서 나온 한·중·일 교류 유물들 처음 한자리에
성장 배경과 쇠락 이유 등은 여전히 안갯속

늑도 전경. 사천시와 창선도 사이에 있는 섬으로 지금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꿈의 섬이었습니다.”

김두철 부산대 고고학과 교수가 떠올린 ‘그 섬’은 경남 사천시(옛 삼천포시) 앞에 있는 작은 섬 늑도다. 1985~86년 그를 포함한 부산대 조사팀은 섬을 발굴하는 기간 내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방신문 기자의 제보를 듣고 찾아간 늑도는 조개무지(패총)와 고분, 집터 등으로 가득했다. 유적들에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토기조각과 동물뼈, 공예품, 생활도구 등이 쏟아져 나왔다. 김 교수는 “해변에 토기조각들이 모래처럼 깔려 있었고 집들도 토기조각들로 담벽을 쌓을 정도였다. 유물 밀집도가 이렇게 높은 유적들을 평생 본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늑도에서 출토된 일본 야요이계 토기들이 전시장에 다수 나왔다. 항아리의 모양이나 붙임띠 장식 등이 한반도 토기와 다르다.

80년대 발굴에 이어 1998~2003년 추가 조사 결과 늑도에서는 기원전 3~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때까지 토기와 철기, 동전, 공예품 등 각종 유물 수만점이 출토됐고 섬 전체가 패총(조개무지)과 무덤, 건물터로 뒤덮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놀라운 건 토기 등의 출토품 상당수가 당대 중국과 한반도, 일본 각지에서 온 다국적 유물이란 점이었다. 2000여년 전 늑도가 홍콩처럼 동아시아 굴지의 국제교역항이었다는 사실이 명확히 밝혀진 것이다.

국립진주박물관에서 7월부터 열리고 있는 특별전 ‘국제무역항 늑도와 하루노쓰지’(10월16일까지)는 국내 고고학사상 획기적인 발견 가운데 하나인 늑도 유적과 유물에 얽힌 역사의 뒤안길을 추적한다. 경내 두암관 전시장에는 늑도에서 30년 사이 발굴한 다양한 유물 1000여점과 동시대 비슷한 교역항이던 일본 이키섬 하루노쓰지 유물 168점이 관객을 맞고 있다.

늑도 유적에서 나온 토제 국자들.

늑도에서 나온 사람 가면 토제품으로 시작되는 전시 감상의 고갱이는 고대 한·중·일의 토기 삼국지를 둘러보는 것이다. 한반도 동남부의 전형적 토기인 삼각형점토대 토기(아가리에 점토띠를 두른 뒤 삼각모양으로 눌러 마무리한 용기)를 비롯해 풍만한 모양이 특징인 중국 낙랑계 토기들, 허리 부근에 두 줄의 점토대를 두른 일본 야요이계 항아리 등이 각각의 진열장에 무더기로 쌓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늑도에서 함께 나온 고대 중국 화폐 반량전, 오수전과 저울추, 거래 기록에 쓰였을 석제 벼루 등도 전시해 기원 전후 국제교역의 실상을 일러주고 있다. 고분 옆에 나란히 묻혔던 온전한 개뼈와 점을 치는 복골로 쓰인 사슴뼈 조각, 인골, 그리고 토제 국자 같은 생활 유물들도 내놓아 애완용 개를 키우며 사슴고기를 즐겨 먹은 늑도인들의 삶도 짐작하게 된다.

늑도 발굴 유물들은 30년 만에 처음 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늑도 역사에 얽힌 학계 논의를 재조명한다는 의미도 크다. 두차례 대규모 발굴을 벌였지만, 전모를 밝히는 보고서가 제대로 발간되지 않아 섬의 역사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도 별로 없었다. 늑도 해상교역 세력의 실체는 무엇인지, 교역항으로 번성한 시기가 낙랑군 성립 이후인지, 늑도는 왜 기원후 1세기 갑자기 쇠락했는지 등은 여태껏 안개에 싸여 있다. 이런 사정 탓인지 박물관이 지난 27일 연 늑도유적 학술대회 분위기는 뜨거웠다. 낙랑군 성립 이전에 늑도가 이미 고조선과 일본을 잇는 철 산물의 교역항으로 번영했다는 일부 소장학자들의 주장이 제기돼 낙랑군 이후 교역거점설을 고수해온 주류 연구자들과 모처럼 논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진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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