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말고 다른 프로는 없는 거니?
[오마이뉴스 김혜원 기자] 월드컵이 개막한 지 불과 3일이 지났다. 그런데 요즘 텔레비전을 켜고 있으면 '사커홀릭의 나라 대한축구공화국'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밤을 새워 축구중계를 한 방송사들은 아침방송마저도 지난밤 혹은 새벽까지 있었던 축구 중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마다 질세라 독일 현지 특파원들을 연결해 월드컵 관련 현지소식을 전한다.
처음에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독일의 문화와 음식, 사람들의 소식이 신선하고 반가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단 하루 만에 KBS1·2, MBC, SBS 등 공중파 채널에서 쏟아내는 독일 소식이 모두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만 질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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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방송사의 축구중계표.(중복중계도 적지 않다) |
ⓒ2006 김혜원 |
방송사들이 보여주는 월드컵 특집방송의 아이템은 모두 유사하다. 한국팀의 숙소와 독일의 유명한 호프집, 누구나 알 만한 독일의 명소, 유명한 퇴역축구선수들, 응원단과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등등.
듣기 좋은 노랫가락도 한두 번이라고, 아무리 좋은 정보와 신선한 화면이라 하더라도 방송 3사 화면에서 모두 유사한 내용이 방송된다면 시청자로서는 당연히 질리지 않을 수 없다. 방송아이템이 중복되다 보니 방송사별 특이점 역시 찾아볼 수 없다.
오후가 되면 새벽에 있었던 중계를 주로 재방송한다. 한국전과 별 관계없는 나라의 중계 역시 방송사마다 최선을 다한다. 중간 중간에 보고 또 보았던 월드컵 특집 다큐멘터리도 끼워 넣어준다. 심지어 어떤 프로그램은 채널을 돌리면서도 세 번이나 볼 수 있어 내레이션까지 외울 수 있을 정도다.
저녁 뉴스 역시 월드컵으로 시작한다. 지난밤 뉴스는 우리와 한판 결전을 치를 토고대표팀 감독이 감독직을 사임했다는 것이다. 왜 사임했는지, 토고의 간판선수 아데바요르 선수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추측성 보도가 난무한다.
다음으로 다른 나라들의 경기 분석과 관전평, 앞으로 있을 한국전에 대한 분석과 전망 보도가 이어진다. 자사 월드컵 중계해설자의 평도 끼워 넣는다. 월드컵 중계해설을 맡은 해설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보여준다. 또 월드컵 해설자와 중계아나운서들에 대한 홍보도 잊지 않는다. 대놓고 월드컵 장사를 해보겠다는 속셈이 드러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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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0일 KBS 편성표. |
ⓒ2006 김혜원 |
밤 10시 또다시 중계 시작이다. 밤 10시 이후에는 오직 축구만 보아야 한다. 공중파 3사는 당연히 축구만을 방송한다. 유선 수십 개의 채널 중에도 몇몇 전문 채널과 홈쇼핑을 제외하고는 축구로 도배가 되어있다.
남편과 아이들은 밤새워 축구경기를 관전하고, 아침엔 언제나 토끼눈이다. 지난 며칠 밤새 축구를 보는 남편과 아이들의 함성에 시달리다 보니, 다음날 아침 텔레비전에 축구장을 연상케 하는 초록색만 나와도, 월드컵이라는 '월'자만 들어도, 붉은악마를 연상시키는 빨간 행주만 보아도 혈압이 오른다. 도대체 다들 왜 이렇게 축구에만 매달려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6월 12일 오전 9시. 지금도 텔레비전은 온통 월드컵뿐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축구를 싫어할 권리도 없는 것인가? 축구를 싫어하는 시청자의 시청권은 무시해도 된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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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0일 SBS 편성표. |
ⓒ2006 김혜원 |
어느 보도를 보니, KBS와 MBC, SBS 등 지상파 3사가 공동으로 FIFA(국제축구연맹)에서 지정한 마케팅 대행회사 '인프론트'에 지급한 독일월드컵 중계권료가 총 2500만 달러(약 237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독일월드컵 중계로 각 방송사 당 약 120∼150억원 정도가 지출될 예정이라니, 나처럼 축구 프로그램을 싫어하는 시청자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엄청난 비용을 감당하면서 까지 이처럼 지나친 친절까지 베풀어가며 월드컵 중계에 매달리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궁금증은 나의 순진(?)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월드컵관련 특별 방송의 이면에서 방송사들의 적지 않은 장삿속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월드컵 관련 방송은 방송사들의 광고판매 시장이다. 한 예로 토고 전을 들 수 있다. 광고단가가 가장 높게 책정되었다는 토고전의 경우 MBC와 SBS는 12억원 정도를 벌어들일 예정이라니 어느 누가 이처럼 눈앞에 보이는 엄청난 수익에 배팅을 하지 않을까 싶다(KBS는 1TV에서 중계를 할 예정이므로 광고 수입이 없다).
방송 3사가 월드컵 64개 전 경기 생중계와 재방송, 특집 프로그램의 광고가 모두 팔릴 경우 한 방송사에서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 올리게 될 예상 수익은 각 방송사 당 약 280억(KOBACO 추산)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방송사들이 모든 프로그램을 월드컵에 올인하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열혈 축구팬들'마저 식상하게 하는 월드컵 특집 방송은 시청자를 위한 배려나 시청자들의 요구에 의한 편성이라기보다는 광고수익 올리기에만 열중하는 방송사의 장삿속이었던 것이다.
광고를 팔기 위해서는 공중파 3사가 모두 같은 경기를 중계하는 전파낭비마저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월드컵방송을 하는 방송사의 기본적인 생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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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0일 MBC 편성표. |
ⓒ2006 김혜원 |
엄청난 광고수익을 알고 난 후 텔레비전 화면을 보니까 화면을 가득 채운 붉은 물결과 푸른 그라운드가 모두 세종대왕이 그려진 만원짜리 지폐로 보인다. 방송사는 TV를 틀면 틀수록 엄청난 돈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월드컵 방송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과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삼시 세 때 같은 밥과 반찬이라면 질려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독일월드컵을 맞은 방송사들의 월드컵 중복편성은 누가 봐도 지나치다. 아직 월드컵 기간이 남아있는 지금, 양식과 양심이 있는 방송사라면 광고 판매에 올인한 나머지 소수 시청자들의 시청권을 무시하는 일방적인 편성에 대해 한 번쯤 반성을 하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월드컵 기간 중 시청자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고 돈벌이에만 치중하는 편성을 했다는 시청자들의 냉혹한 비판이 가해질 날이 머지않아 꼭 올 것이기 때문이다.
/김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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