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기술간첩 키우는 셈"…기밀 빼간 그놈들, 무슨 판결 받았나

박다영 기자 2024. 1. 2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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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구속피의자 0명, 처벌이 우스운 기술도둑②
[편집자주] 산업에 미치는 피해는 막대하지만 처벌은 미약하다. 기술유출 사범 얘기다. 지난해 경찰이 검찰에 넘긴 기술유출 사건 중 구속영장이 발부된 사례는 0건이었다. 기소돼도 대부분 집행유예 판결이 떨어지거나 실형인 경우에도 많아야 징역3년이었다. 기술유출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더이상의 '솜방망이' 처벌은 없어야 한다.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국내 사법 체계의 현실은 그동안의 법원 판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형량이 '3년 이상의 징역', 일반산업기술의 경우엔 '15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 수위가 결코 낮지 않지만 실제 법원에서 선고되는 형량은 입증 부족이나 이익 미실현, 초범 등의 감경사유로 법정형에 비해 매우 낮게 결정되는 사례가 태반이다. "법원이 '기술간첩'을 키우는 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게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8년부터 최근 6년 동안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 97건(155명) 가운데 징역형이 선고된 사건은 9건(9명)에 불과하다. 바꿔 말하면 기술유출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은 10명 중 감옥에 간 사람이 1명도 안 된다는 얘기다.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집행유예(36건)나 벌금형(7건)에 그친 사례가 절반에 달한다.

대학교수의 자율주행차 관련 핵심기술 유출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2021년 판결이 대표적이다. 대전지법은 2017년 중국의 해외 고급인재 유치 계획에 선발된 뒤 2021년 2월까지 자율주행차 라이다(자율주행차의 눈 역할을 하는 센서) 기술자료 등을 중국 대학의 연구원 등에게 누설한 혐의를 받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A 교수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유출 연구자료 덕분에 중국 연구원들의 지식이 급속도로 올라간 정황이 인정되고 엄격히 보호해야 할 산업기술을 국외로 유출한 죄질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021년 2월에는 포스코의 핵심설비 도면을 빼돌린 납품업체 대표 B씨와 C씨에 대해서도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가 나왔다. 이들은 도금강판 두께를 조절해 품질을 좌우하는 설비를 납품하면서 해당 기술을 중국과 미국 철강사 등에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대구지법 포항지원에서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나마 징역형 실형이 선고된 경우도 1~2년 수준의 처벌에 그치는 사례가 다수다. 이른바 '3나노 반도체 생산기술 유출' 혐의로 2018년 구속 기소됐던 삼성전자 전직 부장급 엔지니어 D씨에 대해 1심에서 집행유예형이 선고되고 여론이 들끓자 2심 재판부가 형량을 높였지만 선고형량은 징역 1년 6개월에 그쳤다.

2021년 6월 같은 업종의 중국회사로 이직하면서 보건복지부장관 '산업기술' 인증을 받은 3종류의 의료기기 설계도면을 이동식 저장장치에 담아 중국회사로 빼돌린 A씨에 대한 창원지법의 선고 형량도 징역 1년에 불과했다. 1·2심 재판부는 "E씨가 빼돌린 도면이 중국회사에서 사용돼 특허등록에 활용됐고 단숨에 국내업계와의 기술격차를 좁히는 데 쓰였다", "국가경쟁력에 대한 위협을 가한 전형적인 기술탈취 행위"라고 질타하면서도 엄벌을 촉구하는 여론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판결만 문제는 아니다. 기술을 빼돌린 이들을 수사해 재판에 넘기는 과정도 험난하다. 대부분이 기술을 유출한 뒤 해외기업으로 이직해 숨어버리면 수사당국이 수사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검찰이 지난해 10월 최소 3000억원대 가치를 지닌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제조 관련 기술을 유출한 혐의를 받은 전직 삼성 수석연구원을 구속 기소하는 데는 3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당시 중국으로 도주한 연구원은 지난해 5월 자진 입국해서야 수사를 받았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국내 기업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기술유출 사례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데 이를 막거나 사후 엄정 처벌하는 데 대한 제도적 인식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며 "뒤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강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다영 기자 allzer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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