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가 문제다①] 이호진 '경영 복귀' 산 넘어 산...태광 오너리스크 재부각
10년 넘은 태광 오너리스크 아직도 진행형
우리나라 대기업은 대부분 오너 일가가 직접 경영에 개입하는 '재벌 경영'을 하고 있다. 이는 최고경영자(CEO)가 하기 어려운 중대한 기업의 의사결정을 신속히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굴곡이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성장세를 이어가는 대기업들이 오너 경영의 긍정적 사례다. 하지만 오너가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거나 퇴행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오너 리스크'가 있는 기업을 차례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19개 계열사를 거느린 한국의 대기업집단(재벌) 중 하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2023년 기준 대기업집단 순위는 52위로 전년 대비 4단계 하락했다. 총수가 없는 포스코, 농협, KT 등 상위 대기업집단을 제외하면 이 회사의 실질적 재계 순위는 44위다. 한때는 29위까지 순위가 올라간 적도 있다. 하지만 2011년부터 현재까지 오너 리스크가 지속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회사 자금 421억 원을 횡령하고, 법인세 9억 원을 포탈한 혐의 등으로 이호진 전 회장이 2011년 법정 구속된 이후 10년 이상 쇠퇴한 태광그룹 이야기다. 지난해 태광그룹의 주력 기업인 태광산업의 매출액은 2조7038억 원, 영업손실 1220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매출액 1조1175억 원, 영업손실 531억 원으로 부진이 지속됐다.
이호진 전 회장이 구속되기 직전 해인 2010년 태광산업의 매출액은 3조2694억 원, 영업이익은 4713억 원이었다. 당시 계열사는 50개였다. 오너 리스크가 기업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태광이다. 이 전 회장은 8년가량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징역 3년 실형이 확정됐고, 2021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그 사이에 간암 3기 투병, 병보석 중 음주·흡연으로 논란이 된 '황제 보석' 등 여러 악재도 있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억 원 이상의 횡령·배임을 저지르면 관련 기업에 5년간 취업이 제한되는 만큼 이 전 회장은 당초 2026년 말쯤에야 경영 복귀가 가능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광복절 특사로 이 전 회장을 복권시키면서 경영 복귀가 가능해졌다. 이에 재계 안팎에선 조만간 이 전 회장이 경영에 복귀해 쇠락의 길을 걷던 태광을 직접 이끌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 태광은 이 전 회장 사면 후 그룹 경영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특별 감사를 실시했고, 지난 16일엔 그룹의 비전 및 사업전략 수립을 위해 '미래위원회'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는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해석됐다.
이런 예상은 이 전 회장이 지난 24일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으면서 또다시 미뤄지게 됐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이날 업무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이 전 회장 자택,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 빌딩 소재 태광그룹 경영협의회 사무실, 경기도 용인 태광CC 등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계열사를 동원해 비자금 20억 원 이상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계열사 임원들에게 불법 겸직을 시켜 양쪽에서 급여를 받게 한 뒤 일부를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룹 소유 골프장인 태광CC가 다른 계열사가 짓는 골프연습장 공사비를 부당하게 지원하게 한 것으로 경찰은 의심하고 있다.
이 전 회장 복권 두 달 만에 태광의 오너 리스크가 재부각된 것이다. 태광은 이번 경찰 수사에 대해 전 경영진이 벌인 전횡으로 이 전 회장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태광 관계자는 통화에서 "8월부터 내부 감사를 하고 있는데, 그룹 내 부동산 관리 및 건설·레저(골프장) 사업 등을 담당하는 계열사 '티시스'의 비위 행위를 적발하고, 김기유 티시스 대표를 해임했다"며 "이번 경찰 수사는 전 경영진의 비위 행위가 이 전 회장의 횡령·배임 의혹으로 둔갑해 경찰에 제보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원이 이 전 회장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면서,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는 경찰 수사에서 무혐의가 나오거나, 재판에서 무죄를 입증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시점을 예상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경찰 수사, 재판이라는 난관을 넘어도 또다른 난관이 있다. 이 전 회장 개인이 가진 '비리 총수' 이미지, 실추된 태광그룹 이미지를 반전시킬 묘안을 찾는 것과 기업 인수합병(M&A)나 신경영 구상 등 대내외적으로 공표할 사안에 대한 준비를 마쳐야 경영에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다면 그간의 논란을 만회하기 위해 큰 선물을 준비해서 오지 않겠냐"며 "과거 회장 재임 시절 기업 인수합병(M&A)을 잘하는 총수로 꼽혔는데, 그게 어디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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